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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총액 4억 5000만 원의 대규모 공모전으로 오는 12월 결과가 발표된다.
▲ '신화창조 프로젝트' 홈페이지 상금총액 4억 5000만 원의 대규모 공모전으로 오는 12월 결과가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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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창조 프로젝트'라고 들어보셨나요? 문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고 있는 역점 사업입니다.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 건 없습니다. '2010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10월26일~29일 접수)'이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일종의 스토리텔링 공모전입니다.

그런데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공모전에 할당된 예산이 9억 2000만 원이고, 상금으로만 4억 5000만 원(총액 기준)이 책정돼 있다고 합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무려 1억 5000만 원이 주어진다고 하네요.

지난 몇 달간 전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슈퍼스타K2>의 최고상금이 2억 원이니까, 상금 규모만 보면, 총액으로는 앞서고 대상 수상금으로는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보통은 공모전 수상작의 저작권을 주최 측이 갖는데, 이번 공모전은 100% 창작자에게 준다고 합니다.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상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기관이 앞장 서서 제작지원은 물론 국내외 마케팅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제작지원의 경우 이미 콘텐츠진흥원 내에 다양한 제작지원 사업이 있는데, 신화창조 프로젝트 수상작들을 우대해서 뽑겠다는 말입니다. 마케팅지원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케팅의 경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이라는 타이틀로 수상작에게 투자하고 제작도 해줄 기업을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진흥원이 갖고 있는 해외 지사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 등의 세계 시장 진출도 노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따져볼 때 공모전을 주로 하는 신화창조 프로젝트 예산은 9억 2000만 원이지만, 이후에 따라올 제작 지원과 마케팅 지원 금액까지 합쳐지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수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프로젝트가 이번 정권 들어 새로 기관장을 맡은 이재웅 원장이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핵심 사업이라고 하니 이 정도의 규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진흥원 내부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코드명 해리포터 프로젝트'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해리포터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죠?

'한 방'을 위해 세금을 물쓰듯 하겠다?

이재웅 원장은 '스토리만 좋다면 위험(Risk)은 정부가 감수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문화콘텐츠 창작에 붐을 일으키고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판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박세리가 등장해 골프 붐을 일으켰고, 김연아가 등장해 피겨 붐을 일으킨 것처럼 스타 콘텐츠 하나만 등장한다면 자연스럽게 문화콘텐츠의 창작토양은 정착될 거라는 겁니다. '인생 한 방'이라는 시쳇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타당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계에 '열 작품 중에 하나만 터져도 나머지를 벌충하고도 남는다'는 말이 있듯 엔터테인먼트가 워낙 '흥행'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흥행실패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과정이야 어찌됐든 우수한 결과만 하나 얻어낸다면 모든 과거가 용서되는 구조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흥행몰이의 주체가 과연 세금을 예산으로 쓰는 정부여야 하느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흥행판에 정부 예산을 대거 투입하는 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수백억을 날렸을 때 여론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죠? 물론 성격은 좀 다릅니다만, 성패가 불투명한, 아니 실패하기가 훨씬 쉬운 판에다가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 아닐까요?

콘텐츠진흥원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해리포터' 사례만 봐도 이번 사업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앤 롤링은 영국 정부가 마련한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작가가 아닙니다. 해리포터 또한 정부의 제작과 마케팅 지원을 받아가며 만든 작품이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조앤은 이혼의 아픔을 딛고 자녀를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에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열광하기 시작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거대 자본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글로벌 프로젝트로 성장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 신화창조 프로젝트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거금을 걸고 한국의 조앤 롤링을 한 번 발굴해 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해리포터 같은 작품 쓰게 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또 세계 시장에 배급하는 것까지 정부가 앞장 서서 일일이 챙기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인 일종의 '원스톱 지원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에 간택될 작가가 누구일지는 몰라도 억세게 큰 행운을 거머쥔 셈이 될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원스톱 시스템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한 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성공한 콘텐츠는 시스템이 아닌 소비자가 만든다

제작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만들면 콘텐츠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신화가 세계를 풍미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좀 전문적으로 표현한다면 '컨버전스'(Convergence)와 '시너지'(Synergy)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 전도 아닌 2000년대 중반까지 그랬습니다. 물론 그 시발은 미국이었습니다. 여기서 책 <구글드>의 한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비아콤, AOL, 디즈니, 타임워너 같은 공룡기업들이 그러듯 아이디어 단계부터 제작과 배포까지 전 과정을 총괄할 수 있는 회사가 유리하다고 믿었다. 시너지란 다른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보유하고 배포하는 수단을 독점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생겨난다고 여겼다. 이 신념을 깊이 새긴 미디어 업체들은 전통적인 업계 구분을 흐리기 시작했다. 방송사가 케이블 채널을 인수했고, 전화 회사가 케이블망 회사를 인수했으며, 케이블TV 사장이 콘텐츠 분야나 전화서비스에 투자했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방송국이나 음반, 게임, 출판회사를 사들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요? 콘텐츠시장의 주도권은 이들 공룡기업이 아닌 애플과 구글, 요즘은 페이스북 쪽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콘텐츠의 수직적인 유통구조를 장악한 기업이 아닌 소비자가 콘텐츠를 접하는 유통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이 주도권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간단합니다. '기업이 앞장서서 선택을 강요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굴드>의 한 문단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그들 스스로가 콘텐츠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구글의 컴퓨터는 콘텐츠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콘텐츠를 처리하고 순위를 매김으로써 수많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죠. 바로 그게 우리의 강점입니다.'"

콘텐츠사업의 핵심은 소비 대중의 '감정이입'

2003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
 2003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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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대중들은 분명히 공급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공급자들이 막대한 물량을 동원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면 소비자들도 그만큼의 반응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나름 날고 긴다는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여론몰이를 하면 그 또한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마케팅 비용을 10억 들였으면 10억만큼만, 100억을 들였으면 100억 만큼만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공급자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 나머지 영역을 좌우하는 건 바로 '소비 대중의 감정이입'입니다. 대중들이 콘텐츠가 하는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몰입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가 판가름 납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스토리 자체도 참 중요하겠지만, 시대적인 상황과 문화적인 맥락과도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는 '흥행 공식'이라는 게 돌아다닙니다. 어떤 스토리, 어떤 작가, 어떤 감독, 어떤 배우를 쓰느냐에 따라 흥행이 될지 말지가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지금 시중에 나온 콘텐츠들은 나름대로는 이런 공식을 충실히 따른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 때문에 성공률이 크게 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수현처럼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 작가는 있을지 몰라도, <대장금> 같은 공전의 히트작을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흥행공식이란 것도 한계가 분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부 개입이 소비자 감정이입에 도움 될까?

그런데 이런 답답한 사정을 보다보다 못한 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내가 아이디어도 발굴해주고, 제작도 해주고 마케팅도 해줄게!"하며 큰 형님처럼 씩씩하게 나서고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창작계를 보는 답답한 마음은 백번 이해해줄 만합니다. 그 마음에 대한 진정성도, 뭐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정부 행동이 정말 콘텐츠사업에 도움이 될까요?

가장 크게 걱정되는 건 소비자들의 감정이입을 처음부터 방해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조앤 롤링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해리포터가 나오기까지 조앤은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신화창조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프로젝트는 어떨까요? 정부가 거액을 걸고 마련한 공모전에 당선된 스토리? 물론 그 자체로는 훌륭한 스토리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밖에는 없는, 맥락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스토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다음으로 걱정되는 건 '비즈니스 세계의 선입견'입니다. 자고로 콘텐츠 사업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려면 사업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 정도가 돼야 합니다. 권리자는 하기 싫다 하더라도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산간 벽지를 직접 찾아 가서라도 설득해서 사업권을 따내게 만들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앞장 서서 콘텐츠를 홍보하고 나섭니다. 이 콘텐츠, 이 스토리가 훌륭하니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서 신화창조 프로젝트를 했다고 칩시다. 그들이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다 끌어모아서 세계적인 스토리 일곱 토막을 장만했다고 칩시다. 그 나라 정부가 저를 바이어로 초청했습니다.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놨으니 와서 보고 투자를 고려해 달라고 합니다. 내 돈 안 드니 가보기로 했습니다. 뭐 들인 돈 만큼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그 나라에서도 흥행에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쳤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면 과연 회사를 설득해 투자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이렇게 앞장 서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바로 조급증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빠른 시일 내에(기왕이면 임기 내에) 뭔가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태릉선수촌처럼 스포츠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높은 성과'를 내는 경험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 부문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대로만 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스포츠와 문화가 엄연히 다른데 어찌 같은 논리로 성공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는 객관적인 데이터만 달성하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변덕스럽기까지 한 소비 대중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힌트를 앞서 인용한 래리 페이지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콘텐츠를 발굴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 시장에서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는 대신 창작자와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거기에서 나오는 평가와 가치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수월하게 비즈니스로 전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창작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도보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한국콘텐츠진흥원, #신화창조 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사업,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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