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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사망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10일 오전 사망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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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87)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가 남한으로 망명한 지 13년 만에 사망했다. 경찰은 그의 사망 시점을 10일 오전 9시 30분쯤으로 보고 있다. 그가 활동했던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이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리기 직전이었다.

그는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한국 전쟁 중에 북한의 첫 러시아 유학생으로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귀국해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당비서 등으로 활동한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 정립에 큰 역할을 해, 그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망명'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망명뒤 김정일 체제를 극력비판해온 그는 공교롭게도 '김정은 후계제체'가 공식화된 직후 세상을 떠났다. 탈북자들의 '상징적 지도자'로 평가받아온 그가 국내 입국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사망했다는 점 역시 공교롭다.

그의 최근 일상은 평소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매주 한 번 정도 황 전 비서를 만나왔고, 지난 수요일(6일)에도 그를 만났다는 안찬일(56)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은 "(건강과 관련해) 이전과 표나게 이상한 것은 없었다"면서 "워낙에 연세가 있으니까 최근에 허리가 굽고 귀가 많이 어두워져서 앞에서 크게 얘기해도 못 알아듣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대세습이 정신적 충격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최근에 별로 희망적인 소식이 없으니까 우울해 하시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1호박사'로, 최근 황 전 비서와 탈북자 조직 통합 문제에 대해 논의해 왔다는 안 소장은 "선생님은 김정은 얘기만 나오면 불쾌감을 크게 나타내면서 '그런 철부지 같은 놈 얘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황 전 비서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망원인은 계속 조사해야겠지만,  경호가 잘 돼 있기때문에 외부소행이나 그런 허점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음은 안 소장과의 전화 인터뷰 전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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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전 비서와 자주 만났나.
"보통 매주 한 번 정도는 만났고, 최근에는 지난 수요일(6일)에 뵀다."

- 최근 건강상태는 어떻게 보였나.
"이전과 달리 표가 나게 이상한 것은 없었다. 원래 아침은 조금 드시고, 점심은 잘 안드시고 오후 4시 정도 식사를 했다. 소식주의자다.

워낙에 연세가 있으시니까 최근에 쇠약해지시기는 했다. 허리가 굽고 귀가 많이 어두워져서 크게 얘기해도 못 알아들기도 하셨다. 내 생각으로는 '김정은 3대세습'도 정신적 충격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최근에 별로 희망적인 소식이 없으니까 우울해 하시는 것 같았다."

- 김정은에 대해 말한 게 있다면.
"후계나 김정은 얘기만 나오면 불쾌감이 크셨다. 북한 체제가 자꾸 봉건체제로 가니까 말이다. 김정은 얘기 나오면 '그런 철부지 같은 놈 얘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했었다."

- 만났을 때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눴나.
"지난 번에 뵀을 때 탈북자 조직 통합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조만간 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됐다. 지난 주 목요일에 선생님이 위원장인 북한 민주화위원회가 종각에서 북한의 '3대세습 규탄'행사를 했는데, 직접  나오지는 못했고 규탄 성명서는 직접 쓰셨다."

- 최근 주력하던 일이 어떤 것인가.
"기왕의 활동을 계속 하고 계셨다. 인간 중심 철학 강좌를 꾸준히 하고, 북한 체제전환에 대한 구상도 했는데 연로하시니까 직접 나서기보다는 주변사람들을 격려하셨다."

- 망명 13년째인데, 고향이나 가족 얘기한 것은 없나.
"그런 얘기는 거의 안했다. 가족들이 수용소로 잡혀갔다고 알려지면서,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본인도 거의 안하셨다."

"가족 얘기 안 해... 경호원 3, 4명 늘 함께 했다"

- 경호원과 늘 같이 지냈나.
"같이 자는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경호원 3, 4명이 늘 함께 했다. 행사 있을 때는 인원이 더 증원된다. 확실한 사망 원인은 계속 조사해야겠지만, 경호가 잘 돼 있기때문에 외부소행이나 그런 허점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 후계' 상황이라는 타이밍상 암살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상상력의 영역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명백해지지 않겠나."

- 최근에 북한에서 암살지령을 내렸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본인이 어떤 말을 한 게 있나.
"그 때문에 경호가 더 철저해졌는데 불편해 하지 않아 했다. '생에 대한 애착은 별로 없다. 암살조가 내려와도 두렵지 않다'고 하셨다."

- 탈북자들 사이에서 '권력 누리다가 소외되니까 망명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동시에 '상징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탈북자 사회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보나.
"김정일 정권에 큰 타격을 줘 온 분이고, 일부 논란도 있지만 탈북자 사회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슬픔이 클 것이다. 선생님은 탈북자 조직화 이런 면보다는 상징적 역할이 크셨다. 공교롭게도 탈북자 2만 명 시대에 돌아가셨는데, 탈북자 사회를 조직적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할 상황으로 본다."


태그:#황장엽, #안찬일,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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