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추가 있어야 할 남양농협 수라청김치공장 저장 창고는 텅 비어 있다.
 배추가 있어야 할 남양농협 수라청김치공장 저장 창고는 텅 비어 있다.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자,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치 공장에 배추가 없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최병국 경기도 화성 남양농협 수라청김치 생산팀장은 저온 저장창고의 문을 '휙' 열었다. 30평은 족히 돼 보이는 저온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배추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할 곳에 배춧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저온 창고는 밖보다 따뜻했다.

"도대체 배추를 구할 수 있어야 저장을 하지요. 저장할 게 없어서 냉장 전원도 꺼버렸어요. 전기라도 아껴야죠. 언제 다시 이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을지…."

최 팀장은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표정은 어두웠다. 무심하게도 화창한 가을 햇살이 최 팀장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는 눈을 찡그리며 다시 텅 빈 창고를 바라봤다.

텅 빈 배추 저장창고, 김치생산 라인에는 단 세 명 뿐

배추가 부족해 노동자 단 세명만 김치생산 라인에서 일을 하고 있다. 9월 3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남양농협 수라청김치공장 모습.
 배추가 부족해 노동자 단 세명만 김치생산 라인에서 일을 하고 있다. 9월 3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남양농협 수라청김치공장 모습.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9월 30일 오후 찾은 남양농협 수라청김치 생산공장은 더없이 고요했다. 덜커덩 거리는 기계 소리가 없는 김치공장이라지만 너무 조용했다. 이유는 텅 빈 저온창고가 보여줬다. 김치의 핵심인 배추가 없으니 공장이 조용한 건 당연했다.

최 팀장은 "평소에 비하면 공장 가동률은 5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배추값 폭등 이전, 남양공장은 하루 평균 약 10톤의 김치를 생산했다. 여기서 만들어진 김치는 군대, 식자재 매장, 학교 등으로 나갔다.

하지만 최근 이 공장은 하루 약 5톤의 김치만을 생산한다. 적게 생산하니 판매도 적다. 김치와 배추를 바쁘게 실어 나르던 물류 차량은 일광욕이라도 하듯 공장에 세워져 있다. 김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배추 세척 기계는 멈춰 있다. 절임배추에 양념을 묻혀 김치를 완성하는 생산라인에는 단 세 명의 노동자만 일을 하고 있다. 이 공장 전체 노동자는 50명이 넘는다.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있지만, 고작(?) 한 포기의 김치를 나르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다시 최 팀장이 한 숨을 쉰다.

"도대체 배추가 있어야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죠! 김치 만드는 분들에게 청소일 시킬 판입니다."

최 팀장은 다소 과정을 섞으며 "배추 10㎏ 한 망에 2만 원을 넘은 적은 유사이래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9월 29일 기준 4만5000원까지 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수치를 이야기하며 "지금은 생산을 해도 적자"라고 덧붙였다.

"배추를 5톤 트럭에 사오면 약 3톤의 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치 1kg을 3000원에 판매하면 9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지금은 배추를 산지에서 5톤 트럭에 가득 담으면 2500만 원을 줘야 합니다. 결국 그 김치 다 팔아도 1600만 원이 적자입니다."

최 팀장은 "평소 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면 김치를 판매하면 할수록 적자는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배추를 구하기 위해 직접 강원도 태백까지 갔다. 하지만 필요한 양의 배추를 구하지 못했다.

최 팀장은 "지금 출하되는 것들은 강원도 고랭지 배추인데, 올 여름 너무 더워 많은 배추들이 녹아 내렸고 추석 전후에는 비까지 많이 내려 생산량이 적다"며 "김장철까지도 '배추 대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그는 "농협은 그래도 규모가 있으니 지금의 적자 구조를 버틸 수 있지만, 영세한 김치 공장은 문 닫은 곳이 수두룩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추김치 5톤 만들면 1600만 원 적자"

최 팀장의 말은 맞았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A김치 공장 강모 사장은 "김치 1㎏ 판매하면 2~3만 원 적자를 보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공장 가동을 멈췄다"며 "배춧값이 떨어지면 다시 운영을 해야 할텐데, 올해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강 사장은 "날씨가 안 좋아 생산량이 적기도 하지만 4대강 사업 때문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 일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던 배추가 사라졌다"며 "우리 같이 영세한 공장은 이제 국산 배추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재난'을 피한 중소기업도 있다. 1일 찾은 경기도 화성의 무지개식품은 준비를 잘해 지금도 배추김치를 무리없이 생산하고 있다. 비싼 값이지만 배추 물량을 확보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지개식품이 적자를 안 보는 건 아니다.

전은희 무지개식품 대표는 "현재 배추김치 1㎏ 만드는데 약 5500원이 드는데, 판매가는 4500~5000원이라며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를 본다고 생산을 멈출 순 없다. 가동을 멈추면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무지개식품은 국산 재료를 쓴다. 배추김치가 귀하다 보니 거래처에서 "김치 좀 달라"고 찾아오는 진풍경도 벌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값이 비싸다 보니 무지개식품 역시 전체 배추김치 주문량은 줄었다.

배추값이 올라 많은 김치공장은 배추김치 대신 무를 이용해 깍두기 등을 만들고 있다. 무지개공장 내부 모습.
 배추값이 올라 많은 김치공장은 배추김치 대신 무를 이용해 깍두기 등을 만들고 있다. 무지개공장 내부 모습.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무지개식품은 평소 하루 평균 약 13톤의 김치를 생산했다. 대부분 배추김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50%는 깍두기나 총각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배추 가격에 놀라 무 소비가 늘다보니 덩달아 무 가격도 폭등했다.

전 대표는 "1㎏에 비싸야 500원 하던 무가 이젠 1200원 정도 한다"며 "야채 값은 앞으로 한동안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안은 전 대표의 말대로 그야말로 무 천국이었다. '귀한' 배추김치 생산라인도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미 공장 한 쪽은 무가 차지했다. 큰 무를 집어삼킨 기계는 쉼 없이 깍두기 모양의 무를 토해냈다.

전 대표는 "그래도 얘네들(깍두기, 총각김치)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고마운 듯 무를 바라봤다. 그는 한동안 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학교, 기업체 등에 국산 김치를 공급하는 업체는 많기 때문에 김치 사업체의 어려움은 한동안 계속 될 것"이라며 "이미 도산하는 업체가 많아 배추 등을 공급하는 유통업자들이 외상으로 물건을 주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치공장 망할까봐 외상으로 물건도 안 준다"

소금에 절이기 전 두 조각으로 나뉜 배추.
 소금에 절이기 전 두 조각으로 나뉜 배추.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전 대표는 16년 동안 김치공장을 운영했다. 그래서 김치에 관한 숫자에 밝다. 그는 "우리나라 김치 가격이 너무 싸다"고 했다.

"배추 가격이 오르기 전 국산 김치 10㎏은 2만원이었습니다. 성인 1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양입니다. 즉 1인당 200원으로 김치를 먹는 셈이죠. 보통 담배 한 값이 2500원데, 농민들이 고생해서 키우는 배추, 무 하나에 500원이 말이 됩니까? 이번 기회에 농민-유통업자-김치 생산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태그:#배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