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17일 오후 5시 30분. 독도에서 돌아와 다시 도동항에 내렸다. 아침 9시 40분부터 8시간 동안 배를 탔다. 피곤은 쏟아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일부터 울릉도 도보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뭉친 근육을 풀지 않고서는 울릉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해식동굴 사이로 보이는 옥빛 바다
 해식동굴 사이로 보이는 옥빛 바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도동항 터미널 뒤로 난 길을 접어들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니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이 길은 바다로 가는 길이다. 아니 바다 옆 벼랑을 타고 가는 길이다.

울릉도에 오기 전부터 이 산책로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산책로라고 저마다 소리를 내었다. 설마, 그런가. 속단을 내리지 않고 언젠가 가 보면 알겠지 하며 자위하였다. 떠돈 지 오래,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대개의 경우 여행자의 눈에는 흔하고 고만고만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의 초입에서 나는 잠시 멈추었다.

 해안산책로의 낚시꾼들
 해안산책로의 낚시꾼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해는 이미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산 삼각대를 설치하고 걸음을 내디뎠다. 해식동굴 안에 커피나 음료를 파는 간이 상점이 있었다. 그대로 쭉 나아간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바다와 맞닿은 천길 벼랑 아래로 간신히 매달린 산책로가 보였다. 

 해안산책로를 걷다 보면 들머리에서 두 개의 거대한 해식동굴을 만나게 된다.
 해안산책로를 걷다 보면 들머리에서 두 개의 거대한 해식동굴을 만나게 된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이 산책로를 흔히 '행남해안산책로'라 한다. 여객터미널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도동 행남 등대, 촛대바위까지 이어진다. 울릉도의 해안비경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해안길이다. 행(杏)남. 마을 입구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살구나무 때문에 울릉도에서는 이 마을을 '살구남'이라고 부른다.

 행남해안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만한 명품 산책길이다.
 행남해안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만한 명품 산책길이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건 거대한 해식동굴이다. 두 개의 동굴이 있는데,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와 있어 동굴과 동굴 사이에는 다리를 놓았다. 깊게 울리는 파도소리는 소름마저 끼친다. 시커먼 화산석과 대비되는 짙은 옥빛 바다는 시리도록 푸르다.

동굴을 지나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을의 문턱인데다 어둠이 내렸는데도 날씨는 여전히 무덥다. 땀을 식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백 미터의 거대한 암반이 바다 위로 솟아 있고 저마다 다른 형상을 하여 기묘한 풍광을 연출한다. 벼랑에 매달인 나무는 위태로이 녹색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산책로는 때론 고요하고 때론 깊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산책로는 때론 고요하고 때론 깊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어스름이 내려서인지 걷는 이는 별로 없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바다도 더욱 깊어졌다. 낚시하는 이들도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오징어 배들이 불을 밝히고 항구를 드나든다. 이맘때쯤 울릉도 오징어잡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길은 드라마틱하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가 싶으면 어느새 벼랑 위로 솟구친다. 아래가 까마득하다 싶으면 어느새 파도가 일렁이는 해안길이다. 하늘이 붉어져 오기 시작했다. 해안 길의 끝에 있는 두 번째 휴게소를 지나니 오솔길이 이어진다. 등대가는 길이다.

 산책로에서 올려다 본 시리도록 푸른 하늘
 산책로에서 올려다 본 시리도록 푸른 하늘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해송이 밤 바닷바람에 쏴아쏴아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숲은 이미 어두웠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잎이 있어 지나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머위'란다. 울릉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육지의 것과는 다른 개머위로 식용으로는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부지깽이라는 나물을 즐겨먹는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자는 울릉도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 끼니마다 부지깽이 나물을 맛보았다.

 붉게 물든 산책로의 노을
 붉게 물든 산책로의 노을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등대는 깔끔했다. 등대지기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잠시 눈인사를 하고 등대에 올랐다. 하늘은 온통 붉었다. 등대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보였다. 일출로 유명한 촛대바위가 저동항 들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행남해안산책로는 도동항에서 행남등대까지 왕복 1시간 정도, 촛대바위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행남해안산책로는 도동항에서 행남등대까지 왕복 1시간 정도, 촛대바위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의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다. 특히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9월에서 11월 사이에는 항구 전체가 활기가 넘친다. 울릉팔경 중의 하나인 '저동어화'로 유명하다. 오징어를 유인하기 위해 켜는 집어등의 불빛이 칠흑 같은 바다를 환하게 밝히면 마치 은하수가 빛나는 듯하다.

저동항 전경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의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다. 울릉팔경 중의 하나인 <저동어화>로 유명하다.
▲ 저동항 전경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의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다. 울릉팔경 중의 하나인 <저동어화>로 유명하다.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저동항에 뾰족하게 솟은 촛대바위에는 이야기 한 자락이 담겨 있다. 옛날 저동항에 살던 노인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며칠을 기다리던 딸이 바닷가로 나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바다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이 바위를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

나의 울릉도 첫날 여행은 등대에서 끝이 났다. 촛대바위까지 걸어볼 요량이었으나 이미 어두워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였다.

 행남해안산책로의 야경
 행남해안산책로의 야경
ⓒ 김종길

관련사진보기


☞ 여행팁: 행남산책로는 도동항 여객선터미널 뒤쪽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시작된다. 도동 행남등대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이고, 촛대바위코스는 왕복 1시간 20분 정도이다. 어린아이들이 있어 왕복으로 걷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도동항에서 출발하여 촛대바위까지는 도보로 하고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돌아올 때는 마을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버스 요금은 1500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