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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기획-르포기사 공모전> 여행스토리텔링 분야 우수작입니다. [편집자말]
▲ 진도장례식 진도장례식 모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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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비통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 앉아있는 여느 곳의 장례식과는 달리 언뜻 보기에 마당놀이나 잔치마당처럼 펼쳐지는 진도에서의 장례문화를 꼭 한 번은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들이 슬픔을 달래는 방법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습니다. 

축제 때 찾아가면 좀 더 화려하고, 좀 더 그럴싸한 모습으로 연출되고 있는 상여놀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싫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준비되거나 철저하게 연습된 산물의 일부이니 본래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기초화장 같은 기획, 성형수술 같은 연출이 덧대어져 과포장 될 수밖에 없는 축제에서의 모습보다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처럼 본래의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놓은 장례식 모습. 진도에 사는 어느 분이 돌아가셨을 때 진도사람들이 치르는 날 것 그대로의 장례식이 궁금했습니다.

아쉽게 변형된 부분이 있는 상황이라면 모자라거나 아쉽더라도 진도 사람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진도사람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장례식 모습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진도를 찾아가 며칠이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밀린 숙제처럼 '꼭 한 번은 직접 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진도 사람들이 펼치는 장례식

지난 6월 4일이었습니다. 고향 친구인 김종구(51)의 처가가 진도인데, 진도에 살고 계시는 장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소식과 함께 문상(問喪)을 가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85년 평생을 진도에서 사셨고, 그렇게 사시던 고향마을에서 돌아가셨으니 마을 풍습대로 장례를 치를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문상길이었지만 진도사람들이 펼치는 장례식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돼 1박 2일의 여정으로 대전에서 천 리가 넘는 진도를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만 필자 역시 지근의 거리를 이동할 때도 거반 차를 가지고 다닙니다. 하지만 이번에 진도를 다녀오는 길에는 비디오카메라가 담김 큼지막한 가방을 챙겨야 했음에도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차를 운전하고 갔다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싶어하는 역마살이 꿈틀거려 온전하게 장례식만을 구경하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릴 게 분명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딴 곳으로 빠지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예 차 없이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진도로 들어갈 때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시간이 더 걸리고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초행길이 아닌데도 대전서 네 시간 가까이를 달려야할 정도로 진도는 참 멀었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이었다면 힘들고 지루할 수도 있었겠지만 차를 얻어 타고 가니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행하는 친구들이 차 안에 그득하니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아서 좋았습니다. 

목포를 지나서 진도대교를 건너서니 진도입니다. 그 옛날에는 유배지였다는 섬의 땅 진도. 남해바다의 청정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진도의 공기를 가르며 빈소가 차려진 곳으로 갔습니다. 예상밖으로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사시던 집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빈소가 차려진 곳은 요즘의 여느 상가들처럼 작은 병원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윷놀이 소리 시끌벅적한 장례식장

저녁시간이 다 돼서야 도착한 장례식장은 번잡하지 않았습니다. 주차 하는데 신경 쓰이고, 복작거리는 사람들로 저절로 머리가 띵해지는 도심 속의 장례식장들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3개의 분향소 중 한 곳만 사용 중이라서 그런지 시설이나 공간, 시간까지도 넉넉합니다. 정자나무 그늘 같은 편안함과 실개천을 흐르는 물줄기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진도 상가에서는 고스톱이나 카드 대신 '종재기 윷놀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진도 상가에서는 고스톱이나 카드 대신 '종재기 윷놀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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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가 차려진 상가에서라면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스톱이나 카드 대신 그 빈소에서는 '종재기 윷놀이'가 한참이었습니다. 장례식장 한구석에 윷판이 그려진 멍석이 깔려있습니다. 멍석 둘레를 에워싸고 앉은 사람들이 뭣이든 한 숟가락만 넣으면 가득 채워질 것 같은 크기의 작은 그릇에 담긴 윷가락으로 윷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깁기까지 한 낡은 멍석, 채색을 읽어버려 희미해진 말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멍석을 윷판으로 사용했는지를 저절로 어림하게 했습니다. 얼마간의 돈을 걸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윷놀이에 참석하지 않으니 금액이나 세부 규칙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 판의 환호성과 아쉬움의 탄성이 되돌림 노래처럼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조전례를 올리는 장면
 조전례를 올리는 장면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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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하려고 분향소로 들어가니 거친 삼베로 짠 누런 상복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상주들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 상가에서의 곡소리입니다.

지금까지 다녀 본 여느 상가에서와는 달리 호상(護喪)이 나와 문상하는 절차를 안내합니다. 친구들을 대표해 제단 앞으로 나가 향로에 향을 피워 올리니 제단에 있는 술잔을 내리라고 하더니 반 잔 정도만을 따라 주며 제단에 올리라고 합니다. 술잔을 올릴 때는 뒤에 서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술잔을 올리듯이 동작을 같이 하도록 안내합니다.

전례가 끝난 후 분향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상주들.
 전례가 끝난 후 분향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상주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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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받는 조문 안내라서 조금은 어설프게 느껴졌지만 이 시간 현재 이곳, 진도사람들의 삶 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장례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는 출발의 시작인 셈입니다. 한 구석에서 왁자지껄하게 펼쳐지고 있는 윷놀이 소리, 시다림을 하는 스님의 독경소리, 독경소리에 맞춰 딸랑거리며 흔들어 대는 요령소리가 어우러지는 묘한 리듬감을 느끼며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밥상에 올라온 삭힌 홍어와 회가 눈에 띕니다. 접시 바닥이 드러나기도 전에 전문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야만 먹을 수 있던 삭힌 홍어와 두툼하게 썬 회가 연거푸 차려집니다. 콧구멍을 톡 쏠 정도로 알싸하게 삭힌 홍어, 씹는 맛이 툭툭 느껴지는 싱싱한 회가 상가의 밥상에 차려지는 건 남도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장례 문화입니다.   

밤새도록 펼쳐질 거라는 윷놀이를 뒤로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며 모텔을 찾아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부터 보고 맞이하게 될 진도 사람들의 장례문화, 맨 얼굴의 모습으로 보게 될 장례행렬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영안실에 모셔져 있던 관을 이운하기 위해 도열한 상주들.
 영안실에 모셔져 있던 관을 이운하기 위해 도열한 상주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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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가 나가는 발인날인 6월 5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자 영원히 떠남을 행하겠다며 '오래 머무실 수 없기에 상여를 모시고자 하오니 아침 길을 인도하여 달라'는 내용으로 조전례를 갖춥니다. 오전 9시가 되니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던 고인을 흰색 캐딜락으로 이운합니다.

운구차량인 캐딜락이 제일 앞장서고, 상주들이 나눠 탄 몇 대의 차량이 이어 서자 그 뒤로 방송시설이 돼 있는 소형 승합차량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더니 진도 특유의 상여소리를 쩌렁쩌렁한 크기로 방송합니다. 장례식장을 떠나 운구차량의 목적지가 되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 마을회관 앞마당에 도착할 때까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진도 상여소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10분 쯤이면 충분한 거리였다고 하는데, 구불구불한 고갯길은 조심조심 넘고, 노랗게 익은 보리밭을 지날 때는 아픈 허리를 토닥거리듯 잠시 주춤거립니다. 하얗게 피어있는 찔레꽃을 만나면 구경이라도 하듯 느릿느릿한 속도로 아주 천천히 이운을 하다 보니 30분이 조금 넘게 걸려서야 꽃상여가 꾸며질 동네 마을회관 앞마당에 도착했습니다.

방송차량에서 울려나오는 진도 상여소리가 30여 가구의 시골마을 골목과 둥그스름한 뒷산등성이를 한 바퀴 휘감아 돕니다. 영가가 되어서 돌아오는 이웃, 이제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이웃사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는 듯 동네사람들은 이미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습니다.


태그:#진도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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