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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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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장애등급 심사에 의하면 1등급이던 내 장애등급이 2~3등급으로 떨어질 예정이에요.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해요. 옷 단추도 못 채우고, 머리도 못 묶고, 칼질도 못하는 난 더 이상 자립생활을 못하게 될 겁니다. 마흔도 넘은 내가 팔순 어머님께 의지해서 살 순 없지 않나요. 그렇기에 부당한 장애등급 심사를 그만두라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어요."

지체 1급 장애인 양영희(44)씨의 말이다. 양씨는 13일 오전 11시부터 장애인 20명, 장애인단체 활동가 10명과 함께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제한 폐지, 장애등급 심사로 인한 피해자 대책 마련,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된 장애등급 기준으로 1등급 장애인 37%가 등급 하락

보건복지부가 올해 전면적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는 장애등급심사로 인해 장애인들은 의학적 판단으로만 장애등급을 받고 있다. 개정된 1등급 기준을 보면 '보행과 모든 일상생활의 수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매우 엄격하게 했다.

이 때문에 약간의 보행이 가능해도 1등급 판정을 받았던 장애인의 37%가량이 2~3등급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문제는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1등급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활동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은 35만 명에 달하지만 현재도 3만 명만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 혜택 규모가 더 축소되어 장애인의 활동이 더욱 제한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7일부터 길거리 노숙농성을 벌이던 전장연과 30여 명의 장애인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점거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들 '장애등급심사 중단' 요구하며 센터 점거농성 돌입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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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당일 오후에 찾아간 농성장, 입구부터 녹록하지 않았다. 운영 중인 네 대의 엘리베이터 앞에 농성에 참가한 이들이 한 명씩 서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경찰의 강제진압을 막기 위함이다. 농성 참가자들은 출입하려는 이가 신분을 밝히고 나서야 휠체어를 움직여 길을 열어주었다. 신분확인을 마치고 들어선 장애등급심사센터, "이명박 정부는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죽이지 말라"는 걸개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걸개 양쪽 벽에는 '이런 처우를 받을 바에야 장애인이기를 포기하겠다'며 복지카드를 반납한 이들의 복지카드 확대본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우리 몸에 점수 매기지 말고 서비스별 판정체계 마련하라!!!'는 절규가 담긴 플래카드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벽을 등지고 앉은 농성자들은 앞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남병준 전장연 활동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거 인원 30명 중 19명이 단식을 결심한 상황. 남 활동가는 "한 명씩 쓰러져도 20일은 간다"며 "마지막 동지가 포기할 때 그만 두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농성장에서 만난 양영희씨는 "장애가 심해서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고 하던 정부가 갑자기 나를 경증 장애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활동 보조 없이 혼자 생활하다보면 몸의 근육을 더 많이 쓰게 될 텐데, 의사가 무리하면 전신마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양씨 역시 단식을 결심한 상태다.

양씨는 "장애인에게 주는 서비스를 한정하기 위해 등급 매기는 것 같다"며 "부정 장애인을 솎아내기 위해 심사를 한다는데, 한 사람의 부정사례를 발견해 내는 것보다 한 사람의 낙오자를 막는 정책을 펴야지 않겠나"고 성토했다.

그는 "나에게 1급을 달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달라는 것"이라며 "활동 보조가 없으면 사회생활도 쉽지 않은데 이러다 직장을 잃게 되면 우리 같은 중증 장애인들은 그대로 수급자로 전락하게 된다, 오히려 그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등급센터 관계자 "업무 전혀 못해 갑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등급제심사 철회와 등급기준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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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인등급제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반납한 장애인 복지카드 복사본을 벽에 붙여놓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중증장애인들이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점거해 장애인등급제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반납한 장애인 복지카드 복사본을 벽에 붙여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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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지켜보던 장애등급센터 관계자는 "업무를 전혀 못하고 있어 갑갑하다"며 "힘 없는 하부기관, 실무기관에서 업무방해를 하고 있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개인이 의사를 찾아가면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는 기존 시스템에서는 의사가 허위적으로 등급을 판정하는 일들이 발생해왔다"며 "장애인등급심사는 정부 차원에서 검증을 해 허위 장애인을 가려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는 "피해 입는 장애인들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한다"며 "국가에서 피해 장애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여러 사업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단식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센터 건물 1층에서는 기자회견이 한창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단식·점거 농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갖고 있는 장애로 큰 소리를 낼 수도, 힘찬 팔뚝질을 할 수도 없는 30여 명의 장애인들은 있는 힘껏 소리치고 팔을 뻗었다. 이들의 목소리도 하나였다.

"등급제 폐기하고 권리를 보장하라!"


태그:#장애인 등급, #점거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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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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