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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의문투성이었다. 

신의주-단둥-베이징 루트가 아닌 자강도 만포-지안-창춘 루트를 이용해 중국에 입국한 것은 처음이었다.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의 동행 여부도 불투명하다. 44년만의 당대표자회, 1980년의 6차 당대회를 기준으로 해도 30년만에 열리는 최대 정치이벤트를 코앞에 두고서 최고지도자가 중국으로 간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더욱이 1994년에 부친인 고 김일성 주석이 극진히 대접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가 평양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늦게 평양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안 돼 김 위원장은 평양을 떠났다.

가장 큰 의문점은 지난 5월 3~7일에 방중해서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최고지도부를 모두 만났던 그가 불과 4개월도 안 돼 왜 다시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느냐는 점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변방인 지린(길림)성의 창춘(장춘)까지 찾아온 것 역시 그렇다. 후진타오 주석이 동북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지만, 국가 간 정상회담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준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은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두 사람이 급하게 만나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국, 한반도에 34년만에 최대전력 배치... 중국 "20분 내 항모 격침 가능" 대응

천안함 침몰 29일째인 4월 24일 오전 백령도 장촌포 함수 인양작업 해역에서 침몰한 천안함 함수가 물 위로 들어올려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 29일째인 4월 24일 오전 백령도 장촌포 함수 인양작업 해역에서 침몰한 천안함 함수가 물 위로 들어올려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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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동해에서는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라는 이름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열렸다. 중국의 반대로 훈련장소가 서해에서 동해로 바뀌었지만 미국은 작전반경 1천km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9만 7000톤급)와 현존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고 있는 F-22를 출진시키는 등,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최대의 전력을 한반도에 배치시켰다.

중국은 격하게 반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미국과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암흑가는 아니지만 원수는 언젠가는 서로 보복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은 잠시 분노를 참겠지만 보복은 시간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의 후속편이었을까.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국제선구도보>는 '항공모함에 맞서는 중국의 3대 무기를 공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이 비밀리에 개발한 둥펑(東風)-21C는 4000명의 승조원과 80대의 함재기를 태운 항공모함을 20분 내에 격침시킬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친강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5차례에 걸쳐 한미훈련 반대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이 방어 훈련이라고 강조했지만, 중국은 항공모함이 참여하는 이번 훈련이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연말까지 서해와 동해상에서 계속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물론 이 갈등의 기저에는 천안함 사건이 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천안함 사건을 "냉전종료 후 과도기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신질서를 가속화한 사건"(세종연구소 발간 <정세와 정책> 8월호 '천안함 사건과 동아시아 신질서의 형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동아시아에서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의 힘의 전환이 이뤄지는 가운데 발생했으며, 천안함 사건의 후속조치로 미국이 군사훈련을 택한 것은 중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에 군사안보조치로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은 6자회담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안보문제에 대해 협력해왔으나, 미국이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을 연계시키면서 안보분야의 공통분모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정일 방중이 북한 국내용?... "중국의 국제정치적 과시용 성격"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7일 첫 방문지인 지린성 지린시의 우쑹호텔을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 일본 NHK의 카메라에 잡혔다.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7일 첫 방문지인 지린성 지린시의 우쑹호텔을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 일본 NHK의 카메라에 잡혔다.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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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수석연구위원은 이 연장선상에서 이번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중국과 북한이 미국과 한국, 특히 미국에 대해 '군사적으로 압박하지 말라,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면서 "중국의 국제정치적인 과시용의 성격이 크며, 중국입장에서 이번 회담이 필요했던 이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후 주석이 창춘까지 온 것은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에 대한 의지를 미국과 한국에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외면하고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러 가고 이에 화답해 후진타오 주석이 창춘까지 와서 김 위원장을 만남으로써 주목도는 더욱 높아졌고,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도 더욱 강력해졌다.

이렇게 보면, 김 위원장의 방중이 "후계세습과정에서 혁명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북한 국내용"이라는 청와대의 분석은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해석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있음에도 김 위원장이 후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는 것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경고성 메시지이며, 북중 간 연대의 공고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며 "북한과 중국의 당대당 결속이 최고조로 올라와 있는데, 이는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한미공조와 군사훈련에 자극받은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북중 경제협력 및 중국에 대한 개방의사를 강하게 나타냈다는 점이다. 

북중 간 경제협력은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북한의 협력이 그 핵심이고, 그중에서도 창지투(창춘, 지린, 투먼)사업이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창지투의 핵심이자 지린성 성도인 창춘과 지린시를 시찰했고, 이어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과 석유의 핵심 공급창고인 헤이룽장성을 방문했다. 지난 5월 랴오닝성의 다롄시 방문까지 포함하면 동북3성을 모두 방문한 셈이다.

지린시와 하얼빈시 방문은 세습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활동을 되새기는 '성지순례'의 성격도 있겠지만, 양국 경협과 중국의 대북지원이 더 커 보인다. 후계세습 과정에 있는 북한이 고질적인 경제난과 식량난에 대홍수가 겹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북중 간의 밀착이 더욱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명박은 미국으로, 김정일은 중국으로

이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남한은 미국에 의존하고 북한은 툭하면 중국으로 달려가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맺은 동맹을 '가치동맹'으로 '승격'시키면서 미국 품안으로 뛰어들자, 이에 반발한 중국은 북한을 '한미동맹'에 맞선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약해진 북한도 이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한 자체의 역할은 급속도로 축소됐을 뿐 아니라,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의 대결이 심화되면서 물리적 충돌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다.


태그:#김정일, #후진타오, #창지투, #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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