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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은 가라, 민주노총이 뜬다'

 

지금은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에서 일하는 고경태 기자는 <한겨레21>(1995년 11월 16일자)에 제목을 이렇게 화끈하게 뽑았다가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집단항의를 받고 그 다음호에 사과문을 실었다. 그리고 작년에 펴낸 책 <유혹하는 에디터 -고경태 기자의 색깔있는 편집노하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정말 반성해서 쓰는" 반성문을 썼다.

 

 

"변명할 여지없이 편파적인 제목이다. <한겨레21>이 민주노총 기관지도 아닌데 말이다. 그때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달걀을 던진 분들에게 사과드린다. 그 달걀에 맞아 옷이라도 버렸어야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씻겨졌을 텐데…."

 

"그 달걀에 맞았어야 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열받게 만든 헤드라인을 뽑았던 고 기자는 15년 만에 지난 8월 27일  한국노총 홍보실무자들 앞에 섰다. 이번에는 '제목달기' 등의 편집노하우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강의 첫머리에서 다시 한번 "그 달걀에 맞았어야 했다"며 심심한 유감을 표했지만 과제물로 제출한 수강생들의 제목달기를 평가할 때는 따가운 질타의 잽과 훅을 수시로 날렸다.

 

"주제, 부제, 중제가 연결성이 없고 횡설수설이네요."

"계속 도시락 타령만 하네요.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같은 말 반복하지 마세요."

"사랑, 기쁨, 보람 같은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여러분의 글은 권위적인 목석과 같고, 권위에 도전하지만 권위적입니다."

 

고 기자는 수강생들에게 <유혹하는 에디터>에 나오는 '메마른 투사여, 새로운 단어를 갖자'라는 제목의 글을 복사해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얼마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선전학교에서 한 강의 경험담을 적은 이 글에서 '유혹하는 에디터'는 금속노조에서 발행하는 매체들에 대해 다섯 가지의 종합 진단을 내렸다.

 

첫째. 제발 무엇을 전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전할 것인지를 고민하자.

둘째. 선전 선동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자.

셋째. 각자 색깔 좀 내자.

넷째. 구호가 아니라 이야기를 쓰자.

다섯째. 유머를 갖자.

 

웃음을 정치적 깃발로

 

"웃음이야말로 정치적 깃발이 되어야 한다"는 미국 반전운동가 제리 루빈의 말을 즐겨 인용하는 고 기자는 <한겨레21> 편집장 시절에도 재미, 재미, 재미를 강조했다. 12년 동안 <한겨레21>의 표지 제목과 광고카피를 담당했던 그는 "미사일은 월요일에 쏘지 마!" "차라리 바람둥이 대통령이 좋다"처럼 인상적인 카피를 숱하게 만들었는데 그 첫 번째 기준은 재미였다.

 

"한겨레21 독자들은 전쟁과 침략을 일삼는 미국과 부시가 나쁘다는 사실은 다 알잖아요. 그런 말을 또 반복하는 것보다 기자들 힘드니까 잡지 마감일인 '월요일에 쏘지 마!'라고 하는 것이 독자들의 시선을 잡지 않을까요?"

 

그는 <유혹하는 에디터> 곳곳에서 재미없는 글에 대해서 비판을 쏟아 붓는다.

 

"세상엔 하나마나 뻔한 말들이 참 많다. 제목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결론이 쫙 보이는 그런 글들도 참 많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하지 말아야지'가 정답이다. 입만 아프고, 자판 두드린 손가락 지문만 닳는다는 거."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글쓰기강좌에 참석한 한국노총 홍보일꾼들에게도 재미없는 제목과 글쓰기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재미있고, 창의적인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고 기자는 "당근 옳은 말씀, 당위적인 논리를 의심하라" "뻔한 결론, 뻔한 형식에 빠지지 마라" "엄숙주의와 진정성의 과잉에 관해 의심해봐라" 등의 열 가지 조언을 제시했다.

 

"잘난 척 하거나 가르치려 할 때, 비장한 척 폼 잡을 때, 눈 씻고 봐도 유머가 없는 글을 쓸 때 독자들은 속으로 '메롱' 하죠. 글 쓸 때 메롱 당하지 않으려면 흥분해서 목소리 높여 주장하지 말고, 좀 더 쿨하게 그냥 진술하고, 피력하는 게 좋습니다."

 

글은 똥이다

 

강의를 듣고 나니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수강생도 있다. 첫 문장을 쓸 때는 "때로는 단도직입적인 훅, 때로는 가볍게 잽을 던져라" 하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제대로 훅이나 잽을 날릴 수 있는 것인지, 마지막 문장에서는 "모범답안을 꺼내거나 일반적 이야기로 끝내지 말고 쿨하게 끝내라"하는데 어떻게 써야 쿨하게 끝맺는 것인지. 이렇게 고민이 늘어난 홍보 일꾼들에게 고 기자는 마지막 잽을 날린다.

 

"글은 똥이다. 끙끙대다 보면 결국 나온다. 쾌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오면, 어쨌든 기분은 좋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에서 일하는 고경태 기자의 강의를 오마이스쿨 시민기자강좌(9월 17~19일)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시민기자학교 수강신청 하기


태그:#고경태, #한국노총,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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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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