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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교양인의 액세서리 정도가 된 것 같다. 라캉, 데리다, 알튀세르, 발리바르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만큼이나 생경한 용어들을 내뱉어줘야 짐짓 '철학'하는 느낌이 난다고들 한다. 이렇게 철학은 교양인의 지식자랑 수단이 되는 바로 그만큼씩 대중과 멀어져 간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시공간을 평하기를, '철학'이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표지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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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의 저자 임승수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는 '철학'이 없다는 이 시대에 오히려 '철학'을 강렬히 경험하고 온 일화를 책의 서문에서 소개하고 있다.

미술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1년 전 유럽 여행을 다녀온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박물관에서 깜짝 놀란 경험을 한다. 14세기, 15세기 무렵의 작품들을 전시한 방에 들어갔더니 거기 전시돼 있는 모든 작품의 소재가 똑같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 순교성인 등등 기독교 소재 일색. 사람 사는 세상에는 그릴 것도 많을 텐데 그 시대 서양에서는 거의 모든 예술가가 기독교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거다. 여기서 저자는 뜬금없이(?) '철학'을 느낀다.

철학은 세계관(世界觀), 곧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이나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결국 14~15세기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다는 셈이 된다. 그것이 당시의 세계관, 곧 철학이었다.

기독교가 아래로부터 위로, 옆에서 옆으로 퍼져나갈 때는 사랑과 평화의 종교였지만, 14~15세기 유럽의 기독교는 위로부터 내리누르는 권위였다. 그 권위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도 저지르고, 지혜로운 여성을 마녀로 낙인찍어 고문하고 죽이는 일이 가능했다. 이것이 세계관, 곧 철학의 위력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흔히 '철학'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철학이 없을까?

저자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는 철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에게, 판단을 좌우하는 기준은 이윤과 효율이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이면 괜찮고, 그렇지 않은 것은 쓸모없는 짓이 된다. 돈 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멀쩡히 일하던 수많은 사람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당장 효율적으로 돈 버는 데 쓸모 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많은 청년 학생이 실업자로 지낸다.

예전에는 하느님의 뜻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선악이 갈렸다면, 지금은 돈을 버는 데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선악이 갈린다. 감히 단언컨대, 하느님의 자리를 돈이 대신한 것이다. 맹목적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던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맹목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관을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카를 마르크스는 무려 100년도 더 전에 죽은 사람이다. 한때 이 사람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사람들조차 구닥다리 취급을 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마르크스가 최근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분위기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엄청나게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임승수의 전작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내서 큰 인기를 얻지 않았나.

마르크스의 철학에는 돈 중심 철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어떻게 세상을 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하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내용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만큼' 쉽게 풀어 낸 이 책이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돈 중심 세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더 이상 교양인의 액세서리 정도로 남아서는 안 된다. 철학의 빈곤시대라는 요즈음, 마르크스가 한 다음의 말이 더욱 절실하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 마르크스 세계관의 핵심을 찌르는

임승수 지음, 시대의창(2010)


태그:#마르크스, #철학, #임승수, #변증법,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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