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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멀리서 보았을 때랑 그 안에서 경험했을 때랑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푸름이 주는 시각의 청량감은 어느덧 온몸이 느끼는 오감체험으로 바뀌게 된다. 


아이들과 숲을 이어주는 숲해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천천히 걸으며 한숨 내쉴 틈을 주고 잠시 멈추어 서서 숲의 지극히 일부인 한 나무가 인간과 어떤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약간 알려줄 뿐이다. 정보는 대부분 지나치게 학술적이다. 잎 모양이 어떻고 껍질과 꽃의 암술 수술이 어떻고 하는….고루하고 딱딱한 강의는 인기가 없기 마련이다.


이럴 땐 좋은 방법이 있다. 아이들을 주저 앉혀서 흙속의 곤충과 벌레를 관찰하거나, 나뭇잎을 떼어내어 돋보기로 들여다보거나, 열매를 주워 보여주며 관찰하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면 직접 만져보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끔 맛도 보면서 흥미가 높아진다. 이때부터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아이들도 많아지게 된다.


대중의 일반적인 인지와 지각의 세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행하는 지식 전달 방법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곧게 들이대는 것보다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고 크게 보는 것보다 작고 세밀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가 좋을 때가 많다.

 

경제, 사회, 정치 분야에서 통찰력 있고 감탄을 자아내는 세계적인 명저들이 일반대중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이를 좀 더 널리 알려서 공감하고 이를 통해 운동으로 이끄는 것은 지식인들의 역할이나 실상이 아니다.

 

생활과 현실에서 몸소 경험하고 억압과 고통이 무엇인지 몸으로 깨닫는 이들이다. 이들의 한마디가 수십만 수백만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 지난 정권의 최초의 촛불시위가 이름 없는 네티즌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번 정권엔 교복 입은 여고생들이 주도하지 않았던가. 지금 청소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통계와 분석자료를 제시하는 것보다 그들의 삶에 공감할 문학작품 한권이 논문 수십 권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작가 최규석이 한국의 현재를 사는 십대들이 겪는 고통을 널리 알리고자 지은 작품이다. 한국의 십대에 돋보기를 들이대어 서울 어느곳의 작은 학원을, 그 속에서 입시를 목표로 아웅 대는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을 그렸다.

 

그들은 88만 원세대라고 하는 20대보다 미래에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될 평범한 '십대의 일부'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중 절반은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가난하고 가정엔 문제가 있고 돈은 없고 멸시의 대상이다. 주인공은 별로 잘나지도 못한 외모(작가는 '미안할 정도'라고 말한다)의 소유자다. '원빈'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연히) 주변의 놀림을 당한다. 하지만 쾌활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젊은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고3학생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지향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엄마 혼자 김밥집 '김밥극락'을 해서 가까스로 살아가는 형편 때문에 학원 다니고 싶다는 소리도 못한다. 이혼한 아버지는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다. 돈 벌기위해 외국에서 들어와 일하는, "착한사람을 위해 하는 고생이면 안 힘들다"는 종업원의 말을 듣고 엄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낼 것을 결심한다. 
 

미술입시의 변방인 만화반은 미대 입시 경쟁에서도 이미 밀린 곳이다.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돈 없고 빽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난방비가 없어서 끓인 물 부은 페트병을 안고 자봤다는 자랑질(?)과 참치 먹고 남은 국물에 밥 비벼서 삼일을 버텼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별로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고아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닌, 그렇다고 화를 내고 싶어도 화낼 대상도 없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그들은 겨우 버틸만한 돈을 벌며 작지만 알찬 미래를 꿈꾼다.


작가 최규석

1977년생. 스스로가 작품들의 배경인 만화를 그려서 먹고 사는 어려운 세계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돈이 더 된다는 연재가 아닌 단행본으로 작품을 내는 것도 스스로가 택한 대중과의 소통방식이다. 또, 어렵게 일일이 그려서 본인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은 수채화 방식에 도전한 작품이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80년대를 그린, 보면서 펑펑 울게 만들었던 <100℃ >에 이은작품.

주인공이 학원비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 했던 헌책방 주인은 정의와 개혁을 입에 달고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돈 없고 어려운 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만화반 선생의 제보로 자신의 알바비를 떼어먹고 이사 가려는 사장에게 그동안의 알바비를 요구하나, 일장 연설만 하고 이삿짐 내리는 것까지 도와달라는 요구에 지갑 밖으로 살짝 나왔던 돈을 낚아채 도망친다. 이 사회는 약자에겐 가차 없는 곳이다. 당연히 받아야할 급여도 강도처럼 강요해서 받게 만드는 비열함을 조장한다.

 

꾸준히 그리고 나날이 실력이 좋아지지만 학원에서 수시를 쓰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돈이 좀 있는 부모가 학원에 와서 청탁을 했던 것. 원빈의 그림, 학원선생의 그림들이 그 학생의 포트폴리오에 들어가고 같은 학교에 수시를 넣으려 했던 아이들은 분노한다. 하지만 제들끼리의 다툼이다. 그 이면의 더 힘센 누군가가 행사했던 실력엔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하는 늦겨울의 풍경. 마지막이 너무 쓸쓸하고 아프다.

덧붙이는 글 |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13800원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글.그림, 사계절(2010)


태그:#울기엔좀애매한, #미대입시, #만화가지망, #10대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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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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