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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규방칠우전
 제4회 규방칠우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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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일요일(8월 15일) 친정 언니와 인사동에 갔다. '제4회 규방칠우전(인사아트플라자/2010.8.11~8.16)'에 몇 년째 한복을 비롯한 전통공예를 배우고 있는 친정 동생이 조각보 몇 점을 출품했기 때문이다.

"언니, 저기 저 공들 말이야. 어떤 느낌이 나? 언니는 우리나라 공예 같단 생각이 들어? 그냥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솔직히 좀 말해줘 봐."

우선 대충 작품 전체를 돌아보고 섰는데 동생이 여러 개의 알록달록한 공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동생이 가리킨 공들은 조금 전, 별다른 느낌도 생각도 없이 그냥 스치듯 본 것이었다. 작품이란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저것도 전시 작품이야? 그냥 다른 작품 돋보이라고 걸어 놓은 장식물이려니 별 생각 없이 봤는데? 글쎄? 일부러 따져보라면 일본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별 의미 없이 본 공이었지만, 동생의 말에 다시 보니 너무나 쉽게, 어딘지 모르게 일본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5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봤는데도 말이다. 공에 대한 첫인상을 솔직하게 말해주자 동생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언니가 봐도 그래? 그렇지? 일본 냄새가 나긴 좀 나지? 손공 자수라고도 하고 그냥 공 자수라고도 불러. 원래는 우리나라 전통공예인데 지금은 일본 공예로 더 많이 알려졌다네. 그런데 참 아쉽게도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손공 자수를 거의 모른대. 우리나라 전통 공예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제4회 규방칠우전-손공 자수
 제4회 규방칠우전-손공 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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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규방칠우전-흰색의 공에 실을 촘촘하게 감은 다음 색색의 실로 수를 놓은 손공 자수
 제4회 규방칠우전-흰색의 공에 실을 촘촘하게 감은 다음 색색의 실로 수를 놓은 손공 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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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말? 동생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 앞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무늬가 새겨진 천을 씌운 정도로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공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다. 한눈에도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평평한 사각 천에도 선과 여백을 일정하게 나눠 수를 놓는 것이 힘들텐데, 어떻게 이런 둥근 공에 이처럼 섬세하게 수를 놓을 수 있을까?'

마침 손공 자수를 만든 작가(송선희씨)가 가까이에 있어 물어보자 작품과정을 설명해 줬다. 솜을 뭉쳐 만든 공에 실을 감아 바탕색을 만든 후 지정된 색실로 문양대로 수를 놓는단다.

그런데 공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게 실을 균일하게 감아야 하고, 선 한 줄이 아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전체 문양이 틀려지기 때문에 계산기로 0.1cm단위까지 계산해야 할 정도란다.

"옛날 반가에서 이 손공 자수를 예물 속에 넣어 보냈다고 합니다. 공처럼 원만하게 살아라. 둥글둥글 끝이 없는 공처럼 원만하게 백년해로 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일종의 부적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일본이 일제강점기 무렵에 가져가 발전시켜 자기네 공예로 만들어 버린 거지요."

그는 이어 손공 자수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덧붙이자면, 집에 돌아와 손공 자수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2007년 손공 자수 책이 한 권 나오면서 최근 국내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손공 자수의 유래와 수많은 문양 설명,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1960년대,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에서 공에 수를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나라 한 단청 연구가가 '일본에서 테마리(手まり)라는 공예품을 보고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을 가미해 손공 자수라는 새로운 자수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글쎄 어느 쪽이 진실일까? 여하간 작품을 만든 작가에 의하면 '옛날 옛적 우리 어머니들의 손공 자수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갔을 거라 추정'하나 아직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다고 한다.

손공 자수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눈은 자꾸 나도 모르게 저마다 문양이 다른 공을 훑고 있었다. 저마다 색도 다르고 문양이 다른, 색색의 가느다란 실로 섬세하게 수놓은 공들을 바라볼수록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감탄만 일었다.

제4회 규방칠우전-조각보를 만든 후 매화를 수놓은 작품
 제4회 규방칠우전-조각보를 만든 후 매화를 수놓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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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공예인데도 우리는 이미 까맣게 잊고 묻혀버린 것이 아쉽고 안타까워 지난 전시부터 꾸준하게 출품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전은 물론 지금 현재 세계인들에게 일본 공예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손공 자수가 실은 옛날 옛적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정성을 쏟던 것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덧붙인다. 일본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전시마다 이 손공 자수 작품을 꼭 함께 둔다고. 심지어는 자수와 전혀 상관없는 음식관련 전시에도 이 손공 자수를 함께 둠으로써 세계인들에게 은연중 '일본 전통공예'임을 인식시키고 있노라고.

덧붙이면, 현재 이 손공 자수 재료 대부분 일본 것을 쓰게 되어 있단다. 도안 자체부터 일본 것들인지라 나머지 재료들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것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그는 이번에 출품한 공 대부분은 우리의 재료들로 만들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작품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보니 별 생각 없이 보고 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손공 자수가 전시되고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손공 자수를 보러 오는 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많아요."

그는 덧붙였다. "그들은 또한 손공 자수 자격증까지 만들어버린지라 우리 공예인들이 일본으로 가서 자격증을 따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리는 대체 무엇들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긴 걸까? 하필 광복절에 일본에게 빼앗겨 버린 손공 자수를 만났기 때문일까? 전시장을 나와 인사동 거리를 거닐며 수많은 전통 공예들을 바라보는 곳마다 전시에서 만난 손공들이 아른거렸다.

'제4회 규방칠우전'의 이번 주제는 '자연으로 물들여 빛으로 수놓다'이다. 한복을 비롯한 조각보와 가리개, 천연염색을 한 후 한땀 한땀 손바느질한, 다양한 우리의 전통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신라대학교 전통 염색연구소의 작품들도 여러 점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카페회원들과 그 주변 사람들만 찾는 전시회였으나 점점 갈수록 많이 알려지고 일반 관람자들이 늘고 있어 기분 좋습니다. 우리의 한땀 한땀이 우리의 전통공예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요. 벌써 내년 전시(2011.8.17~)까지 정해진 상태입니다."

참여 작가들은 다음 카페 '규방칠우-보자기를 연구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들, 전시를 주관하는 카페지기는 이렇게 전시 소감을 말했다. 햇수로 10년째인 이 카페 회원들은 첨단문명 속에 자칫 사라지기 쉬운 우리의 전통공예를 알리고 지켜내는데 한몫 해내는 사람들이다.

제4회 규방칠우전-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천연염색천과 한복천으로 만든 공기돌
 제4회 규방칠우전-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천연염색천과 한복천으로 만든 공기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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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규방칠우전-동생의 조각보
 제4회 규방칠우전-동생의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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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천이나 천연 염색 천으로 바느질해 만든 공기돌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특히 많았다. 종종 인체에 해로운 독성 논란이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공기돌보다 천으로 만든 이 공기돌이 아이들에게 훨씬 좋을 것 같다.

10여 년 전 동생이 바느질을 시작했을 때 "젊은 애가 고리타분하게 바느질이나"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동생의 묵묵한 바느질 덕분에 이젠 대부분 동생이 바느질한 우리의 전통 공예 작품들에 감탄하고 있다. 각각 다른 색감의 천연염색 조각보를 창에 걸어 조각보를 통해 스미는 햇빛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생 덕분에 우리의 전통 공예에 대한 매력도 안목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동생, 참 대견하고 예쁘다.


태그:#전텅 공예, #손공 자수, #규방칠우, #인사동,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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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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