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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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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지만 여름은 지치지 않고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아열대 기후로 변한 한반도의 날씨는 가늠하기 어려운 장대비를 수시로 퍼붓고는 한다. 해마다 겪는 수해가 또 재발할까 걱정되는 계절이다.

국보 285호 울산광역시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 역사의 첫 장을 채워주는 소중한 기록이자, 한국인이 만들어 낸 조형예술의 정수 가운데 가장 맏형이다. 그런데 이 반구대 암각화도 이 계절이면 수해를 입으며 지금도 물에 잠겨 있다.

최근 울산광역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 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 여럿이고, 얼마 전 안동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등재에 성공하여 그 지역주민은 물론 그랬겠지만 필자도 한국인으로서 드높아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사는 고장이 혹은 내 고장에 있는 문화유산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인류 유산이 되는 것은 여간 큰 기쁨이 아니다.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함께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니 이것이 성공하면 울산시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자랑이 될 것이요, 한국인에게는 자부심을 다시 한 번 드높이는 동기가 될 것이다.

둘러싼 자연환경까지도 원형보존해야 등재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의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원형보존'이다. 이 조건은 등재 대상 자체뿐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은 물론이요, 그 주위의 환경의 상태까지 고려하여 조금도 인위적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조건은 해당 문화유산이 있는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있다. 즉, 지자체가 원형보존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해당지역 시민들과의 합의에 의해 힘을 받기 마련이다.

이를 반구대 암각화에 대입해 보면, 반구대 암각화는 물론이고 그 주변의 대곡천 일대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 따라서 해마다 물에 잠겨 8개월 동안 볼 수 없는 상태에서는 세계유산 등재는 언감생심인 셈이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원하고 추진한다면 물에 잠기는 8개월의 기간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사연댐 수위 낮추면 물 걱정... 울산시민에게 뜻 물어야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를 8개월 동안 물 속에 가두고 있는 원인은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이다. 이 댐의 수위는 60m인데, 암각화가 연중 물 밖에 있으려면 이 수위가 52m 정도로 낮아져야 한다.

울산시는 이때 생기는 8m 만큼의 수원손실을 걱정한다. 국토부의 통계에 의하면 수위를 52m로 낮추더라도 울산시의 용수공급에는 문제가 없고, 낙동강에서 대체 수원을 끌어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수질은 현재보다 낮아진다고 한다. 비용도 더 들기 때문에 울산시로서도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울산시가 내려야 할 결정은 분명하다. 이 딜레마를 다른 지역 사람이 아닌 울산시민과 논의하는 것이다. 울산시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기회인데, 거기에는 용수에 관련된 양보가 필요함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설명하고 의사를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울산시가 지금까지 이 과정을 밟아 왔는지 모르지만, 없었다면 이는 빨리 갖추어야 할 절차라고 본다.

필자가 아는 울산시민은 자부심이 강하다. 울산은 한국의 산업수도라고도 한다. 그곳의 산천은 아름다우며, 한국의 정신사에서도 제외할 수 없는 학문과 예술의 고장이다. 그곳에 인류의 유산이 있다. 울산시민은 현재 자기 고장에 있는 위대한 유산이 처한 상황을 바르게 알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판단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울산시가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솔직하고 대승적으로 논의하고자 할 때 이루어질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우리 한국인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 꼭 기억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울산 경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유네스코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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