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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당 국장

사  진 : 유성호 기자

정  리 : 황방열 차장

 

주소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82-1. 지상 8층 건물에 연면적은 9871.12㎡. 미국 국제개발청(USAID)의 지원금(230만 달러)을 받아 미국 태평양건축엔지니어사(PA&E)의 설계와 미국 빈넬(Vinnel)사의 시공으로 1961년 10월 1일 준공.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와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빌딩'인 주한 미국대사관 청사에 대한 설명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치외법권' 지역이자, 광화문 광장에 면한 대한민국 최고의 '철옹성'이다.

 

영화를 통해서도 제법 알려졌지만,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미국대사관은 어느 나라를 가든 미 해병대(USMC, United States Marine Corps)가 지킨다. 대사관에 들어가려면 3중 보안안전장치를 통과해야 한다. 전대미문의 9.11테러를 경험한 '세계의 경찰' 국가를 방문할 때 감수해야 하는 통과의례다.

 

'언론 자유' 미국과 '언론 제한' 북한의 공통점은 '검열'이라는 아이러니

 

정문에서는 항공기 탑승 때보다 더 엄격한 보안검색을 통과해야 방문증을 받게 된다. 노트북과 녹음기, 그리고 휴대폰 등이 제한된다. 대사관 건물 현관으로 들어서면 다시 해병대원으로부터 청사 출입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한국인 직원들도 보안과가 있는 5층 이상은 미국인 직원과 동행해야 출입할 수 있다. 특히 8층에 자리한 대사 집무실에 들어가려면 미국인 직원들도 휴대폰을 밖에 두고 가야 한다.

 

이와 같은 사생활의 제약을 직원들은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대사 인터뷰를 마친 뒤에 국무부 외교안전국 소속으로, 주한 미국대사관의 인적·물적자원에 대한 총괄적인 보안책임을 맡고 있는 5층 보안과(Regional Security Office)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검열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국이 취재를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 취재 때 말고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수정헌법 제1조에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언론 자유 국가와 세계에서 가장 언론 자유가 제한된 국가가 '검열'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것은 아이러니다.

 

취재진은 미리 대사 인터뷰 방문이 예정돼 있음에도 20분간에 걸친 보안검색과 수속 끝에 8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접견 대기실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빨간색 반팔 상의에 감청색 치마를 입은 여성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했다.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 주한미국특명전권대사 인터뷰는 12일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남짓 그의 집무실에서 이렇게 이뤄졌다. 배석한 대사관의 앤디 제이(Andy Jay) 부대변인은 "대사가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고 귀띔했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 세 가지

 

 

먼저 그의 하나뿐인 아들 이야기로 인터뷰 말문을 열었다.

 

- 대사께서 'Cafe USA'(주한미국대사관 블로그)에 연재한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를 재밌게 봤다. 아들 제임스와 함께 한국에서 템플 스테이도 하고, 백범기념관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아들은 대학 졸업하고 어떻게 지내나? 한국에선 대졸 청년실업이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어떤가?

"아들은 작년에 졸업했고, 올해 보스톤에서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지금은 전 세계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경제회복이 더디다. 양국의 고용문제는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아들이 대학을 갓 졸업했고, 아들의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청년들과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제 아들은 졸업하고 1년 동안 다른 일을 했는데, 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적절한 일자리를 찾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대사관에는 인턴들이 많은데 물론 인턴십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지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한미 간 웨스트 프로그램(미국 대학생 연수취업 프로그램)이 있고,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한 봉사활동도 있다.

 

제가 그렇다고 취업문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 친구들 중에 인문학을 전공한 친구들은 특히 고용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현재 취업문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9월이면 부임 2년이 되는 그는 클린턴 국무장관 방한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과 나눈 대화,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그리고 매일 만나는 한국 국민들, 이 세 가지를 가장 인상적인 경험으로 꼽았다.

 

- 9월이면 부임한 지 2년이 된다. 대사께서는 그동안 도봉산, 무등산, 광화문 월드컵 응원 현장 등 많은 곳을 방문했다. 예전의 다방이 없어지고 커피숍이 많이 생겼다는 글도 올리셨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 세 가지를 뽑는다면?

"(웃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부임 이후 매일 매일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미관계를 새롭게 보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서 대사로 일하게 된 것은 특권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9년 2월에 클린턴 국무장관께서 첫 해외순방 때 한국에 왔는데 장관이나 저나 이화여대에 간 경험이 참 특별했다. 5000명의 관객들, 주로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이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들의 세계관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고,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참석은 내게 감동적 경험"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책장에 있는,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조문단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1980년대에 제가 김 전 대통령을 알았고, 다시 대사로 돌아온 뒤에도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서거 당시 한국과 한미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외국인사들뿐 아니라 조문현장에 있던 한국의 각계 각층인사들을 보면서 참 감동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늘 이것을 기억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제가 매일 만나는 한국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집밖에 나갈 때, 자전거 타고 가다가 잠시 멈췄을 때, 산에 갈 때 만나는 사람들은 제가 대사라는 것을 알든 모르든 모두 저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것이야말로 저의 한국 근무 시절을 기억에 남을 만한 시기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 농담이지만, 지난해 전직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셨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만 인상적인 경험으로 언급해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운해 할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년에 비극적으로 서거하셨지만,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도 미국의 좋은 친구였다.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셨고 믿음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FTA를 비롯해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 시작한 한미 간 현안이 많다. 한국의 민주화뿐 아니라 한미 양국 관계를 더욱 폭넓게 하는 데 기여하신 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 최근 <김대중 자서전>이 출간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백범 김구를 가장 존경한 인물로 꼽았는데, 대사께서는 김 전 대통령을 만나고 백범기념관도 방문했다. 두 사람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시는지 궁금하다.

"(책장에 있는 <김대중 자서전>을 가리키면서) 어제(11일) 책을 받아서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강인하고 결의가 있는 정치가로, 한국 민주화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1980년대에 직접 목격했다. 1985년 2월에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가 한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꺾이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대통령 재임 때는 한국 역사에 남을 일들을 많이 하셨고, 세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미국의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의 경우, 그의 아드님과 손자분을 만났다. 기념관도 갔었고 자서전도 읽었다. 저는 한국과 한국어에 대해 오래 공부해왔지만, 최근에 와서야 그 역사시기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있다. 한 가지 감동적인 게 있다면, 제 관저에 김구 선생이 직접 쓰신 서예 글이 있다. 1949년에 미국 외교관에게 선물로 써준 것인데, 한미 우호 협력 평등에 대한 글귀다. 한미 양국관계를 잘 정리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1940년대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김구 선생이 양국 관계를 그렇게 보셨는데, 우리 세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물게 EQ(감성지수)와 NQ(공존지수) 높은 직업외교관

 

 

그의 성품과 언행을 보면 직업외교관으로서는 드물게 EQ(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와 NQ(Network Quotient, 공존지수)가 남다르게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월 미대사관 건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담은 현수막을 '심은경'이라는 도장글씨와 함께 내걸어 시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심은경'은 스티븐스의 한국 이름이다.

 

그는 이처럼 한국어 실력과 친화력을 무기로 역대 미국대사들이 만난 한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을 만난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냥 기본적인 업무다"며 겸손해 했다.

 

- 매일같이 한국인들을 만나신다고 했는데, 통계는 없겠지만 혹시 역대 대사들이 만난 한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사람을 만나는 것 아닌가요?

"(웃음) 한국어를 조금 하니까 사람들을 만나기가 조금 쉬운 것 같다."

 

- 아무튼 이전 대사들에 비하면 한국민들과 접촉이 대단히 활발하다. 그래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던데,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저는 이것을 '공공외교'가 아니라 그냥 외교라고 생각한다. 한국이든 아니든, 늘 하는 일이다. 30년 이상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첫째로 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이것을 정책 입안가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기본적인 업무다.

 

두 번째는 미국 정부의 행동이나 관점을 그 국가에 설명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양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에서 근무할 때도 정부 인사나 관계 전문가들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로서는 늘 하던 일을 할 뿐이다.

 

제가 이전에 한국에 근무했고 한국어를 조금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고, 제가 하는 일을 즐기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외교관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외교관이 됐다.

 

한국에 대해 더 열정을 갖고 바라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의 하나는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은 경제적인 큰 변화를 겪고 있었지만, 사회에 여전히 권위주의적 색채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제가 직접 목격한 정치적 운동이 있었다. 지금 다시 와서 보면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에 열정을 갖고 있다. 저는 지난 50년간 한국인들이 겪어온 무용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 관심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강인하고 결의가 있는 정치가"라고 평가한 그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과 느낌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 한국에서 만난 그 많은 사람 중에 이명박 대통령도 포함돼 있나? 이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어떤 느낌이었나.

"미국 관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함께 이 대통령을 뵌 적이 있다. 한국의 국제적 역할이 커지면서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 사람들과도 만나는 것에 시간 등 여러 면에서 관대했다. 한국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는) 꾸밈없고, 솔직하고,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즉 주고받는 것에 관심이 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미국인들도 그분과 대화하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늘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귀를 기울이고 사적인 대화에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스 대사의 집무실에는 충남 예산중학교 영어교사 시절 학생들과 찍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1978년 외교관으로 첫발을 내딛기에 앞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충남 예산에서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국어 실력은 그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다. 대사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 역대 주한미대사들 사진이 걸려 있는 복도에서 추가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사진기자의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주한 미대사 존 무초(John J. Muccio)를 시작으로 스티븐스까지 20명의 대사가 부임했다. 그에 앞서 한미 수교가 이뤄진 1883년 5월에 부임한 초대 주한미국공사 루시우스 푸트(Lucius H. Foote) 이후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사절을 철수할 때까지 10명의 미국공사가 파견됐다. 스티븐스 대사는 30명의 역대 공사와 대사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전권대사이자 유일한 '홍일점' 대사이다.

 

한미FTA 같은 남은 현안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한미동맹이 강력하다"고 평가할 만큼 한미관계는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EQ와 NQ를 겸비한 '심은경'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뒤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외교관답게 그는 공식 인터뷰가 끝난 뒤의 마지막 질문답변을 <오마이뉴스>에 대한 '칭찬'으로 마쳤다. 심 대사는 "한국말로 하면 오마이뉴스를 어떻게 말해요?"라고 한국말로 묻고는, 기자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역시 한국말로 "우리 소식? 그래요?"라고 되물었다. 그러곤 자답했다.

 

"오마이뉴스, 클레버(clever : 기발한, 재치 있는) 하고 듣기 좋아요."


태그:#스티븐스, #주한미대사, #심은경, #김대중,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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