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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남산만했다. 임신한 우리 외숙모의 그것처럼 뽀얗지도 탱탱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배는 거무스름하고 거죽은 주글주글거렸지만 크기는 남산만했다. 위암 선고를 받고 복수가 차오른 할아버지는 곧 다가올 임종을 준비하시러 집으로 오셨고, 할아버지 방 보료 위에 자리를 잡고 미라처럼 움직이지 않고 낮과 밤을 지냈다.

 

세 손녀를 불러 앉혀 일본어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할아버지도 동생들과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척 안겨주시던 할아버지도 아니었다. 그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떨리는 마른 손가락으로 말을 대신하였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있을 때면 나던 포마드 기름 냄새도 더 이상 없었다. 베개의 말라버린 눈물자국에서 누룩냄새가 났다. 그의 보료에서는 시금털털하고 골골한 냄새가 풍겨 고물고물한 손녀들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열 두 살이었던 나는 분명 할아버지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 사랑이 죽어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지를 주무르고 다정한 말을 건 낼 만큼 크지 못했나보다. 나는 두려웠다. 그의 생김새와 냄새가 싫다기보다는 두려웠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과는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 그의 모습이 무서웠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다가가지 못할 검은 구덩이가 존재하는 듯했다.

 

나의 바로 아래 동생은 나와 두 살터울이지만 나보다 성숙하고 심성이 고왔다. 동생은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하고 물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몸을 닦아내는 일도 도맡아했다.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가서 무언가를 가져다드리기도 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그에게 무어라고 대꾸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할아버지 방 문 밖에서 귀를 대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린 막내 동생을 돌봐야한다는 핑계로 그렇게 나는 그를 외면했다.

 

주말이면 서울에 사는 친척들이 할아버지를 보러 내려왔다. 고모와 작은아버지, 큰아버지들은 모두 할아버지에게 무어라고 큰소리로 말을 건네고 손을 쓰다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매주 비슷한 의식을 치렀다. 의식이 끝나면 거실에 모여 앉아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말들을 꺼냈다. 엄마가 내온 먹을거리를 보고 몰려온 나와 동생들을 보고 친척들이 한 마디씩 했다.

 

"우리 둘째는 천국 갈 거야. 할아버지한테 잘 해서 천국 갈 거야. 할아버지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흑흑흑."

 

동생은 칭찬에 쑥스러워하면서도 힘들지 않느냐는 친척들의 말에 괜찮다며 웃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과상에 있는 먹을거리를 들추며 일부러 소리 내어 먹었다. 천국행 티켓을 거머쥔 동생이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매일 밤 지옥 불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나와 할아버지 사이의 구덩이를 메우지는 못했다. 나는 겨우 열 두 살이었으니까… 열 두 살 어린애였으니까….

 

어느 날, 동생이 집을 비운 사이 할아버지가 일을 치르셨는지 누군가를 부르셨다. 몇 번이고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누군가를 부르시더니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조용해졌다. 그는 분명 오물을 묻히고 스스로를 혐오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동생은 없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문 바로 건너에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려웠던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용기를 내어 방문을 열고 내가 사랑했던 할아버지를 보았다. 마침내….

 

그는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고, 아랫도리는 반쯤 내려져있었다. 아랫도리 사이 대변기에는 그의 잔해가 잔뜩 들어있었고 온 방은 잔해의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대변기를 걷어내고 뒤를 씻고, 몸을 닦았다. 늙은 할아버지의 뒤를 보았다. 지옥의 문처럼 시커멓고 소름 돋는 그의 뒤를 닦아내면서 나의 두려움도 닦아냈다. 변기를 비우고 환기를 시키고 속옷을 갈아입혀드렸다. 잠드신 할아버지의 편안한 표정을 보니 나의 지옥불은 더 이상 뜨겁지 않을 것 같았다.

 

밤이 되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이것저것 집안을 점검하시고 할아버지 뒤를 누가 닦아드렸는지 물었다. 나는 창피했다. 겨우 한 번인 게 창피했고, 할아버지를 두려워했던 게 창피했고, 생색내 듯 나라고 말하기가 창피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큰 딸이 정말 착했구나. 할아버지도 챙겨드리고…… 우리 큰 딸 천국 가겠다."

 

'천국 가겠다, 천국 가겠다, 천국 가겠다….' 엄마의 말이 가슴 속에 메아리쳤다.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다가가지 못했던 죄책감, 나의 일을 대신한 동생에 대한 미안함, 어쩌면 천국은커녕 지옥 불에 떨어질 것 같음 불안감, 어쩌면 열한 살 아이의 가슴에 담기엔 너무 큰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한꺼번에 씻어낼 것처럼 울었다. 지금껏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나의 가슴도 시원하게 뚫렸다.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했고, 동생에 대한 미안함을 덜었고, 지옥에 갈 것 같은 불안감에서 해방된 기쁨과 안도와 깨달음에서 나오는 나의 눈물이 그렇게 내 볼을 타고 떨어져 방바닥에 스몄다. 어린 떼를 벗어버리고 어른이 되려는 것처럼….

엄마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내 등을 쓰다듬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 20년. 이제는 삶도 죽음도 어느 정도 익숙할 나이가 되었고, 할아버지의 기억은 내 의식 저편의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사는 게 바빠서인지 감정의 굴곡에 무뎌져서인지 더 이상 뜨거운 감정도, 가슴 벅찬 눈물도 말라버린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읽어주시던 동화책을 우연히 발견한 오늘, 나에게 삶과 죽음과 사랑을 일깨워 준 그가 그립다.


태그:#성장통,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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