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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뵌 천운 큰스님
 생전에 뵌 천운 큰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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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천운큰스님으로부터 들었던 첫 법문은 '조계종 참 옹졸하다'는 말이었습니다. 2006년 11월 23일, 석주당 정일 대종사 2주기 추모제와 사리탑 준공법회에서 '석주큰스님 정도면 한 번쯤은 종정으로 추대했어야 하는데 선학원 이사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대들보 같은 스님을 외면하였다'며 '조계종 참 옹졸하다'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하던 말씀을 들은 게 처음이었습니다.

풍채도 좋고, 정정해 보이셨는데 입적에 드셨다는 소식이 들려와 영결식이 치러진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엘 다녀왔습니다. 대흥사로 가는 새벽길 하늘엔 별이 총총합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남부지역 일부에선 관측 이래 최대의 폭우가 내렸다는 소식에 은근히 걱정이 됐는데 영결식이 치러지는 18일 새벽엔 비가 언제 내렸나는 듯 맑기만 하였습니다. 

대흥사 새벽
 대흥사 새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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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4시간쯤 달려 대흥사 입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입니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는 길, 산사 가는 길에서는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합니다. 간식이라도 먹듯 아침 공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걸어가던 발길이 전혀 예기치 못한 광경에 우두커니 서야 했습니다.

당연히 열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흥사로 들어가는 길이 철문으로 철컥 닫혀 있었습니다. 장례식 때면 속가에서도 문을 열어 놓는 게 보통인데 큰스님의 영결식이 있는 날 철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야박해 보이고,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절 인심이 야박한 것인지,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황당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한참을 서성이다 밤하늘을 울리던 범종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쯤 안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내 초소에는 오가는 사람들을 밤새 지키거나 제지하고 있었을 종무원 2분이 있었습니다. 천운큰스님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라 왔고, 좀 더 사실적인 글을 쓰기 위해 새벽 분위기 좀 보려고 들어가려 한다고 전후 사정을 설명했지만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7시가 넘어야 출입이 가능한데 선심을 쓰듯 5시 30분쯤 오면 들여보내 주겠다고 합니다.

대흥사 새벽
 대흥사 새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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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큰스님들의 영결식에 18번이나 참석해 봤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절이고 항상 열려 있었고, 어느 절이고 오는 사람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총무스님의 근무지시가 있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종무원들에게 자꾸 이야기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싶어 몇 번이나 종무소로 전화를 했지만 아예 받지를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차해 놓았던 차로 내려와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있으려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해 다시 안내소로 올라갔습니다.

큰스님의 다비식 이야기를 담은 책 <스님 불 들어갑니다>까지 보여주고, 그동안 18군데 영결식장에 다녀온 이야기까지 하며 큰 스님의 영결식이 있는 날 절을 찾아오는 사람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마침 다비를 주관하실 범혜스님이 들어가시는 길이라 함께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북대서 내려 다 본 대흥사
 북대서 내려 다 본 대흥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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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처럼 드리웠던 철문을 지나긴 했지만 법당을 향하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절 인심이 야박해진 것인지, 대흥사만의 남다른 관리법인지는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천운큰스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절을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대접이 그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대흥사 경내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군데군데 내걸린 현수막, 거의 다 준비해 놓은 영결식단만 없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야 알 수 있을 만큼 조용하기만 합니다. 들려오는 독경소리, 뻗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섰지만 대웅전엔 새벽 예불을 올리는 스님 한 분과 기도에 동참 중인 두 명의 보살이 전부입니다.

평소에 보았던 어느 절의 새벽예불,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북적대던 여느 절의 새벽 예불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광경입니다. 하지만 앞길을 가로 막던 철책을 떠올리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됐습니다.     

영결식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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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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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준비하는 곳에서만 벅적거리는 인적이 들릴 뿐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인 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경내를 몇 바퀴나 돌며, 이삭을 줍 듯 어떤 분위기라도 주으려 노력했지만 분위기조차도 철문에 막혀 있는지 그동안 다녀왔던 어떤 큰스님들의 영결식 날 새벽에 비해 훨씬 쓸쓸하고 한적하기만 한 새벽입니다.

넉살 좋게 아침으로 비빔밥 한 그릇까지 얻어먹었지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 뒤틀린 부아는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기웃거려도 철문이 열리는 시간까지는 분위기가 느껴질 낌새도 아니고, 영결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4시간은 기다려야 하니 뒤틀린 마음도 달랠 겸 대흥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일 만한 곳을 향해 등산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눈에 내려다 본 대흥사

대흥사 마당에서 전각이 보이는 일지암엘 올라가면 대흥사가 한 눈에 보일 것 같아 비탈진 산길을 끄덕끄덕 올라갔지만 지붕에나 올라서면 보일까 바닥에서는 대흥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헛걸음 쳤구나 하며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는데 하루 전에 와 묵고 있다는 분이 나오기에 '대흥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만한 곳이 어디인 줄 아느냐'고 여쭈니 30분 정도 올라가면 되는 북대쯤 가면 보일 거라고 합니다.

대흥사 연화대
 대흥사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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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없이 아침 운동 겸 같이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하니 그러겠노라며 동행을 해 주었습니다. 두륜산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북대에 올라가니 정말 대흥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탁 터지는 시야에 뒤틀렸던 심사까지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고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오니 올라가기 전까지는 적막하기까지 했던 경내가 조문객들로 북적댑니다.

그사이 천운큰스님의 법구도 영결식장 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1시간 30여 분쯤을 인파에 어울려 서성이다 보니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300여 분의 스님들과 1200여 명의 재가 불자 등 1500여 명의 추도 속에 영결식이 진행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영결사와 법어 그리고 추도사와 조사로 천운큰스님의 생전과 구도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천운큰스님께서 펼치신 포교를 말하고, 천운큰스님께서 실천하신 자비를 소개합니다. 천운큰스님은 스님을 만드는 스님공장 공장장이라는 말도 있었다는 말로 큰스님의 인재육성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운행렬
 이운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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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행렬
 이운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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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던 날씨는 참기가 힘들 정도로 태양이 작렬합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식장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아름아름 그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삼삼오오 무더기 무더기 모여 서서 합장을 하고 반배를 올리며 영결식에 동참합니다.

작열하는 직사광선, 고랑을 이루는 땀줄기에 많이 힘드셨겠지만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계시던 원로큰스님들께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시니 스님과 내빈들이 주를 이루었던 영결식장은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비장으로 가는 운구행렬

식순에 따른 영결식이 끝나니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옮기는 이운을 합니다. 의식에 꼭 필요한 몇몇 번(깃발)만 만들었을 뿐 별도로 만들어진 만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흰색 종이 연꽃잎만을 붙여 장식을 한 관을 한쪽에 7사람씩, 14명이 메는 상여에 올려 놓은 형태의 상여입니다. 영결식장을 출발한 상여 행렬은 흐르는 물처럼 연하대가 마련되어 있는 다비장을 향해 훠이훠이 걸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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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 갑니다.
 스님 불 들어 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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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장은 들어서는 일주문 좌측, 대흥사에서 구도자의 삶을 사셨던 고승들의 영혼과 수행흔적이 군집해 있는 부도전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천운큰스님의 법구를 다비할 연화대는 상좌인 범해스님이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백양사의 서옹큰스님, 문수사의 정천큰스님을 다비하셨던 다비 전문가(?)인 범해스님이 제자된 도리로로 어버이를 모시듯 은사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를 꾸렸습니다.

대흥사의 연화대는 땅바닥을 파 고랑을 만들어 불쏘시개와 숯을 넣어 생나무를 쌓고, 그 위에 멍석과 흰색 천을 차례로 덮어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생나무더미에는 서랍장처럼 관을 밀어 넣을 공간이 있어 이운된 관을 그곳에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형태였습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흰색 헝겊과 멍석을 옆으로 제치고, 천운큰스님이 법구를 모신 관을 연화대에 서랍장을 밀어 넣듯 모시고는 제쳤던 멍석과 헝겊을 다시 덮었습니다. 연화대를 빙 둘러선 사람들에게 횃불처럼 기름 먹인 솜방망이가 달린 기다란 대나무를 하나씩 나누어 줍니다. 솜방망이에 불을 붙이니 누군가가 '거화'하고 외치니 솜방망이를 든 모든 사람들이 외마디 외치듯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며 연화대에 불을 붙입니다.

부도전과 연화대
 부도전과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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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를 들었던 사람들만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친 게 아니라 연화대 주변을 에워 쌓던 모든 사람들도 탄식이라도 하듯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풀풀 솟는가 했더니 범해 스님이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의 의아해 합니다.

부채질이라도 해 불길을 활활 살려도 모자랄 판에 불이 채 붙기도 전에 호스로 물을 뿌려대고 있으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멍석이 마를 만하면 계속 물을 뿌려대니 그동안 흔하게 봐왔던 연화대의 불꽃은 보이지 않고 뽀얀 연기만 다비장에 드리웁니다.

끊이지 않는 '나무아미타불' 정근

세속인들의 장례식에서 곡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졌듯이 언제부터인가 큰스님들의 다비식에서도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CD나 테이프를 트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지만 솜털구름 뭉그러지듯이 들리지 않았는데 대흥사 다비장에선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는 스님들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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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젊은 스님 2분이 조를 이뤄 한 분은 목탁을 치며, 또 한 분은 요령을 흔들며 조화로운 목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있으니 잃어버린 전통을 되찾은 듯한 분위기며 느낌이었습니다.

다비장이 처음인 사람, 한두 번 봤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두 스님이 내는 나무아미타불 정근 소리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필자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라져 가던 뭔가가 복원된 기분이고, 행사 정도로만 의미가 퇴색하였던 다비식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흰색 연기나 화염을 20시간쯤은 내뿜어야 다비를 마친 거라는 연화대를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매표소를 막 지나오는 순간 매표를 하는 손길에 눈길이 멈춰 섭니다. 오전에는 매표를 하지 않았으나 영결식을 마친 오후부터는 다시 매표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하루쯤, 천운큰스님의 영결식이 있었고, 스님의 법구가 다비되고 있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산문을 활짝 열수 없을 만큼 야박해야만 했나 하는 아쉬움이 가슴 끝에 매달립니다. 


태그:#대흥사, #다비, #연화대, #천운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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