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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살 난 (생후 28개월)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지 2주가 지났습니다. 제 형처럼 다섯 살 되는 해 봄에 보내려고 애초에 계획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일찍 보내게 됐습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 하던 모습에서 차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참 엄마 아빠 정을 알아갈 시기, 최대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었지만 아내가 젊었을 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찍 보내게 됐습니다.

둘째 아이를 보내놓고 며칠동안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 때문이었죠. 낮이고 밤이고 늘 두 녀석을 끼고 사니 숙면 한번 제대로 취한적도 없는 지난 5년.  낮잠도 자고 지역 엄마들 까페 모임에도 나가보라고 했지요. 하지만 성격상 그런 여유를 부릴 아내는 아니었습니다. 또 살림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냥 적당히 해도 될 일을 아내는 너무 꼼꼼하게 하니까요.

세상에는 육아와 살림만이 있는 줄 아는 아내. 그것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어도 말뚝이 뽑혀도 멀리 가지 못하는  암소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육아와 살림만이 있는 줄 아는 아내. 그것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어도 말뚝이 뽑혀도 멀리 가지 못하는 암소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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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살림에 찌들어 사는 생활,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되는대로 아내가 바깥 활동을 통해 그것을 잠시나마 잊게 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을 만나는 날이면 늦도록 맥주 한잔 하고 노래방이나 나이트 같은데 가서 스트레스를 풀라고 얘기해줍니다. 당구도 좀 배우고 운전도 배워 직접 운전하는 즐거움도 가져보라고 권유합니다. 여하튼 아내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저는 적극 지원을 합니다. 아이들 열심히 보고 있을테니 최대한 많이, 오래토록 놀다 오라고요.

둘째 보내놓고 며칠동안 아내는 계속 밖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다고 놀 거리를 찾아 다닌건 아닙니다. 지인 보험 언니 통해 보험 교육도 듣고 왔습니다. 10여년 전부터 같이 보험하자고 권유하고 있는 언니입니다.

저와 고용안정센터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학력과 경력면에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식당일은 가능했지만 저녁 장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보니 그 일도 불가했습니다. 제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편이니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었지요.

지난 5년간의 직장 공백기 때문에 아내는 자신감도 잃은 듯 했습니다. 결혼전까지 조그만 건설회사 경리(보조)로 일했지만 손을 놓은지 벌써 다섯해나 지났습니다. 이젠 다 잊어버려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들어갈 곳도 마땅치 않구요.

결국 아내는 미용예술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전액 국비 지원으로 4개월 과정인데 물론 정해진 출석일수를 채워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내 성격상 단 한번도 결석할 사람은 아닙니다. 이 학교에 입학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 때문에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네 식구가 한꺼번에 나가니까요. 오전 10시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아내는 9시부터 서두릅니다. 일찍 가야 앞자리에 앉을 수 있고 그래야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락 싸들고 제가 출근할 때 같이 나갑니다. 제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미용학교가 있거든요.

지난 일주일동안 머리 마는 것을 실습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서서 하는 것이죠. 아내는 잘 안 말아진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손재주는 자타가 공인(?)할 만큼 뛰어난 편인데 잘 안되니 스스로도 실망한 듯 했습니다.

약간만 서 있어도 종아리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가 하루 종일 서서 미용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왜 하필 그토록 힘든 미용일을 하냐고 하더군요. 뭐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자정이 넘어 아이를 대상으로 파마 실습을 하고 있는 아내. 대단한 열정입니다.
 자정이 넘어 아이를 대상으로 파마 실습을 하고 있는 아내. 대단한 열정입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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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학교에서 가져온 파마 도구를 이용해 잠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하고 있더군요. 연습용 가발이 10만원대라 따로 구입해서 집에서 연습하는 것 또한 쉽지 않으니까요. 아침에 일찍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조금이나마 더 마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의 소박한 바람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제 머리를 직접 손질하고 싶어하는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미장원에서 머리 깎는 것이 무척 아깝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어쩌면 미용 학교를 다니면서 공백기 기간 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장 맞벌이를 하든 안하든, 미용실을 차리던 아니면 보조로 일을 하든 지금 당장은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거나 키워서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론과 실습에서 한꺼번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태그:#미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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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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