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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호주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시내에 볼 일을 보러 나가던 오후 3시 무렵의 한가로운 열차(한국의 지하철) 안. 텅텅 빈 객석에 앉은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젊은 한국 남녀가 '끝말 잇기'를 하며 갑니다. 요즘에는 어른도 아이도 '아이폰'을 가지고 주로 혼자 노는데, 젊은 사람들이 '살이 아닌 말을 섞으며' 놀고 있는 자체가 기특해서 일부러 귀를 기울였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단어를 이어가다가 '절'자로 끝나는 말에서 여자 쪽이 '절편'하고 받았습니다.

 

"그런 말이 어딨어?" 남학생이 괜한 억지소리 말라며 퉁을 줍니다. "그런 말이 왜 없어? 있단 말이야. 니가 무식해서 모르는 거지." 억울해진 여학생이 항변했지만 실상 본인도 '절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듯합니다.

 

'떡 종류 중 하나'라고 대번에 반박하면 될 것을 자꾸만 그런 말이 있다고만 하니 아마 그냥 어디서 들어보기만 했나 봅니다. 남자애는 빈정빈정 웃기만 할 뿐 그런 말 없다고 계속 우깁니다. 결국 둘이는 돈 100달러를 걸고 나중에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합의한 후 놀이를 계속합니다. 

 

'그래, 떡을 안 좋아하면 절편을 모를 수도 있지, 젊은 사람들은 더욱이나 떡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 공연히 듣는 제가 애석해서 이렇게 제 자신을 위로합니다.

 

몇 번 돌아가다가 또 '절'자에서 여자애가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별 망설임 없이 '절기'라고 대꾸하자 남자애가 또 딴지를 겁니다. "절기란 말이 어딨냐?" "왜 없어, 왜 없어?"

 

'옳거니, 이번엔 제대로 설명하겠지. 여자라 아무래도 언어 감각이 낫기는 낫네.' 어느 결에 저도 함께 말 이어가기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무식한' 사내를 한 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여자 쪽을 응원합니다.

 

"일절기 이절기, 이런 말이 있단 말이야."

 

두둥~. 순간 제 가슴을 두드리는 북소리가 들립니다. 이 무슨 망언인가요? 남자애의 말처럼 그런 말이 어딨냐며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집니다. 둘이서 또 옥신각신하더니 이번에도 100달러를 걸기로 합니다. 단어 놀이 자체로만 본다면 여자애가 200달러를 벌었지만 제 눈에는 두 사람 다 한심해 보였습니다.

 

제 추측에는 여자애가 '환절기'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긴 했는데 그 말을 '한절기'라고 잘못 듣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추측입니다만 '한'을 '하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는 '하나'는 곧 '일(1)'이니까 '한절기'나 '일절기'나 그게 그거고, '일절기'가 있으면 '이절기'도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게 아닐까요.

 

이 지경이 되니 말놀이를 하는 것이 기특하다 싶던 처음 생각이 짜증으로 변했습니다. 걔네들이 혹시 우리말이 서툰 이민 2세대가 아니었냐고요? 호주에 산 지 이 정도 되면 비슷한 애들도 교민 자녀인지, 유학생인지, '워킹 홀리데이' 중인지, 단순 여행객인지 거의 구분할 줄 압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언어 수준이 이 정도라면 정말이지 걱정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아무리 책을 안 읽는다지만 일상 쓰는 말을 이렇게까지 모른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연령대의 어휘력이 심하게 말해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인 데다 말은 또 얼마나 제멋대로 합니까. 

 

"입장료는 10달러세요, 거스름 돈 여기 있으시구요, 표가 모두 매진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금액은 적립이 안 되십니다, 기한이 만료 되신 것 같은데요."

 

들을 때마다 거슬리는 엉터리 존대법이지만 어차피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닐 바에야 '나 하나 참으면 모두 편하지'하고 꾹꾹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애들만 잘못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목사가 자기 교회 교인들 앞에서 '저희 교회'하는 것도 '우리 교회'가 맞다고 냉큼 지적해 주고 싶지만, 입만 열면 남자는 죄다 '사장님'이고 여자는 '사모님'인 것도 딱 듣기 싫지만 역시나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꾹 참고 지냅니다.

"엄마가 신문지에 쓴 아줌마 글 잘 읽으셨대요." 며칠 전, 한 동네 사는 친구의 딸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제 딴에는 '엄마의 신문쟁이 친구'의 안부를 살갑게 챙긴다고 한 말인데 '신문'에 쓴 글과 '신문지'에 쓴 글의 묘한 뉘앙스 차가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한 우리말 실수치고는 애교스럽지 않나요?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말을 배우려는 교민 2세들의 노력은 정말이지 가상합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풍성한 어휘와 옳은 어법, 정확한 문법을 구사하려는 긴장감과 순수함이 한결같습니다.

 

말 한마디 꺼내기가 저어될 정도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업수이 여기는 마음은 없어야 제대로 된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될 터인데, 우리말의 저질화와 혼탁화가 심각해진 요즘 세태가 자못 걱정스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자유칼럼그룹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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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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