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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미신적인 구석이 많다. 어제는 저녁시간에 집 옆 공원을 산책하면서 며칠 전에 용하다는 점집에 들러 들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당신의 주님은 누구냐며 나물하면서도 나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에게는 간 기능이 좋지 않으니 술을 삼가하고, 아내에게는 혈액이 부족하니 보충해야 한다'는 내용과, '큰 아이는 입대를 조금 늦춰도 좋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로 주로 가족의 건강문제와 아이들 진로문제가 대부분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아내는 종종 몇몇 지인들과 점집에 들러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모양이다. 연초에 한해의 운세를 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몇 해 전에 작은 아이가 사춘기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갔을 때도 점집을 먼저 찾은 것이 아내였다.

몸이 아프면 병원엘 가야 하는데 무당을 모셔다 굿을 하는 꼴이다. 그래서 복사(卜師)가 시키는 대로 아이를 위해 백일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 덕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바로 집으로 들어와 제자리를 찾았다. 아내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런 일까지 미신적인 것에 의존해야 하는 아내를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는 생각에 안타깝다.

아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다소 미신적이다. 혼인이나 이사 같은 집안의 큰 일에는 택일을 중요시 한다던가,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아침에 불길한 예감이 들면 먼 길을 나서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이밖에도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세대들로부터 '밤에 휘파람을 불지마라' '밤에 손톱을 깎지 마라'는 등의 무수한 주술적 금기를 많이 들어왔다.

원래 미신(迷信, superstition) 이라는 말은 정확한 개념규정을 가질 수 없는 어휘이다. 예를 들어 종교는 정상적 신앙과 비정상적 신앙, 합리성과 비합리성, 과학성과 비과학성이라는 상반되는 내용을 함유하는 형이상(形而上)의 세계로서, 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유교와 같은 종교들도 자기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미신이라고 배타시하기도 하며, 같은 종교 내에서도 그 종교 교리에 내포되지 않고 다만 민간신앙으로 인정되는 현상은 미신으로 판단될 것이다.

또 사회집단의 역사나 사회구조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달라지므로 명확한 정의나 기준을 결정하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일반적인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하여 합리적·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생활지식이나 기술 중에서 사회생활에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믿거나 행동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할 뿐이다.(두산백과사전)

그런데도 이러한 미신적 요소에 의존하는 것은 유구하게 이어온 역사 속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이기도 하겠지만, 장수와 행복을 위하여 액(厄)을 물리치고 복(福)을 얻으려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실존의 본성과 연관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근거 없이 미신을 맹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아내처럼 점집을 찾아 집안일을 의논하고 걱정을 덜어내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일 것이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신에 의존하는 것이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아내가 점집에서 들었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점집의 입장에서는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가능한 좋은 말을 해줌으로써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한편,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문제를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먼저 의논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집안일은 점집을 찾아 복사와 의논하기 전에 먼저 온 가족이 모여서 문제점을 토론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복사가 문제해결의 조언자는 될 수 있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점집을 찾는 것이 토론할줄 모르는 나 때문인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여보, 앞으로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법을 찾아봅시다.'


태그:#미신, #무당,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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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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