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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담배 피우기 놀이를 하고 있는 신랑과 신부. 담배는 결혼식과 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결혼식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담배 피우기 놀이를 하고 있는 신랑과 신부. 담배는 결혼식과 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 탕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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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소굴에 갇혀 지내야 했던 K과장의 괴로운 중국행

2010년 6월 어느 금요일 아침, K과장은 이틀 일정으로 중국으로의 첫 출장길에 나섰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공항에 도착한 그는 택시를 타고 첫 바이어와 만날 호텔로 곧장 달려갔다.

약속 장소인 한 4성급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K과장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비 곳곳에서 중국인들이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흡연을 할 수 있나.'

혀를 찬 K과장은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욱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한 젊은이가 담배를 꼬나 문채 엘리베이터까지 들어와 연기를 내뿜었던 것. 평생 흡연을 하지 않는 K과장이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바이어와 만난 K과장은 순조롭게 수출 상담을 이끌어갔다. 상담 후 바이어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했다. 오후에 친척 동생이 결혼식을 올리니, 함께 가서 자리를 빛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없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시간적 여유도 있고 중국인의 결혼식은 어떨지 궁금해 승낙했다.

한 3성급 호텔로 발길을 옮기자, 입구에서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을 맞이했다. 헌데 신부가 입장하는 남자에게 일일이 불을 붙여주며 담배를 권하는 것이었다. 로마가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랬다고 K과장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한 테이블에 앉자 바이어가 주변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소개받는 사람들은 인사와 더불어 K과장에게 담배를 권했다. 사양하고 싶었지만, 동행한 바이어도 줄담배를 피워대자 어쩔 수 없이 하나둘씩 받아 피웠다.

결국 흡연자들 틈에서 오후 내내 붙들려 있던 K과장은 저녁에 예약한 호텔로 돌아와서야 연기소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3억5000만명의 흡연천국... 매년 100만명이 질병으로 사망

공원에서 통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성. 최근 들어 여성 흡연인구의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공원에서 통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성. 최근 들어 여성 흡연인구의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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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비흡연자들이 살아가기 괴로운 '흡연천국'이다. 세계 최대 흡연대국으로, 2008년 현재 중국 위생부가 추정한 흡연인구는 3억5000만명. 세계 담배 소비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62%로, 흡연자의 60% 이상은 날마다 15개피의 담배를 피우고 있다.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어린 흡연계층도 무려 1억3000만명에 달한다. 흡연이 일상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져 비흡연자는 담배의 공습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

5억여명이 간접흡연에 노출되어 매년 100만명이 담배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다. 작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결핵·폐렴방지연합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20년에는 사망자 수가 2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흡연으로 인해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자 최근 중국정부는 각종 금연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위생부는 내년부터 모든 공공장소에서 금연토록 결정했다.

앞으로 3개월 내에 모든 사무실과 회의실, 복도, 화장실, 주차장 등에서 금연을 실시하고 내년 1월 1일에는 작업장, 의료시설, 대중교통 차량 등에서 모든 공공시설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건물 밖에도 흡연지역을 별도로 지정해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는 중국이 세계위생기구(WHO)의 담배규제 국제협약 체결국에 가입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중국 위생부는 사내에서 담배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금지했다. 1년 내 금연하는 직원에게 포상을 주는 방안도 내걸었다.

한 담배농장에서 일하는 중년인. 지방정부에게 있어 담배산업은 놓치기 힘든 세수원이다.
 한 담배농장에서 일하는 중년인. 지방정부에게 있어 담배산업은 놓치기 힘든 세수원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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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교제의 매개체... 왜 간섭하고 난리야"

중국정부의 금연정책에도 불구하고 끽연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올해 16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는 황샹밍(34)은 "중국에서 담배는 인간관계와 교류의 수단으로 상대방에게 손님에게 담배를 권하는 것은 전통적인 예의"라며 "정부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상하이에서는 지난 3월 1일부터 '공공장소금연조례'를 시행했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는 엑스포 개막을 앞두고 중국 대도시에서 최초로 공공장소 금연에 들어갔었다.

금연조례는 관공서, 학교, 병원, 체육관, 슈퍼마켓, 교통차량, 인터넷카페, 엘리베이터, 식당, 호텔 등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규정을 어기면 50~200위안(한화 약 8850원~3만5400원)의 벌금을 부과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규정위반 적발과 범칙금 부과, 증거 확보 등이 어려워 성과가 미미하다.

무엇보다 오늘날 중국의 사회환경과 중국인의 사고방식 위에서 금연조치는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첫째, 중국에서 담배는 전통적인 교제 과정의 중요한 매개체다. 중국인은 처음 만났을 때 담배를 권하면서 서로간의 친교를 나눈다. 친척이나 이웃을 방문할 때 담배를 선물하는 것은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상대방에 대해 친근감이나 존경을 표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급담배는 하나의 신분 상징으로 인식되어 흡연인구 증가에 한 몫을 차지한다. 흡연자끼리 담배를 선물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비흡연자도 타인에게 주저 없이 담배를 선물해 간접흡연을 감수한다.

일행 중 한 명이 줄담배를 피워대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동석한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중국인에게는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건강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 부족도 한몫 한다.

중국에서 가장 비싼 담배 훙허다오. 고가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급속히 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비싼 담배 훙허다오. 고가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급속히 늘고 있다.
ⓒ 훙허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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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장사로 돈벌이하는 정부, 선언적 금연정책만 내세워

둘째, 세수 감소를 우려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강력한 흡연 단속에 소극적이다. 중국에서는 매년 2조 개비의 담배가 팔려나간다.

윈난(雲南)성, 허난(河南)성 등 성별로 많게는 100여개의 담배공장이 있어 담배 소비세가 지방정부 수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윈난성에서는 지방세의 70%까지 점유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재정부와 국가세무총국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확보를 위해 담배 소비세를 종전에 비해 최대 11%나 인상했다. 200개비 한 박스 가격이 70위안 이상인 고급 담배는 45%에서 56%로, 70위안 미만인 일반 담배는 30%에서 36%로 각각 올렸다.

이처럼 담배산업을 직접 관장하며 막대한 이익을 내는 중국정부 입장에서 금연정책은 제 목에 방울달기 격처럼 민감한 사안이다.

셋째, 지금의 금연정책이 아무런 강제성 없는 선언적 정책이라는 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금연조치를 잇달아 발표하지만, 체계적으로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다.

상하이만 하더라도 공공장소 흡연자에 대한 신고 전화를 10여개나 개통했지만, 홍보가 부족해 접수는 거의 없다. 흡연자에 대한 신고도 흡연 모습을 사진으로 찍거나 증인을 확보해야 벌금을 부과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상하이시 관계자조차 "공공장소금연조례가 흡연자를 적발해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의도보다는 사회적으로 금연의식을 보급하겠다는 의도가 더 크다"고 밝힐 정도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중국에서는 소비자를 겨냥한 고급담배가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비싼 훙허다오(紅河道)는 1갑에 230위안(약 4만70원)이나 하지만, 판매량이 늘면서 고급담배시장이 커지고 있다.

대외적인 생색내기로 일관하는 정부와 일반인의 그릇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중국이 금연대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요원해 보인다.


태그:#흡연,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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