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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나가버린 현재일 뿐이며, 미래는 다가올 현재에 불과합니다. 항상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세요. 감사합니다."

법정스님의 말을 인용하며 그가 강의를 마무리했다. 작은 키에 작은 눈. 약간 떨리는 듯한 서글픈 목소리. 어떠한 노래도 슬프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목소리가 20대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광대 김제동이었다.

며칠 전 학교 캠퍼스를 지나가다 우연히 김제동이 학교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연예인이기도 하며, 평소 그의 주옥같은 어록들을 좋아했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10일,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명불허전이란 말이 걸맞게 김제동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당초 소 강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강의는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 대강의실로 옮겨야 했다. 시간이 15분 가량 지연되기는 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러 올 수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것이 많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강의 시작 전 주체 측인 총학생회에서는 "녹화를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며 사진도 가급적이면 자제해 달라"는 김제동 측의 부탁을 전했다.

박수와 환호성으로 학생들은 그를 맞았다. 평소 팬이었던 나 역시 그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며 맞아 주었다. 흰 티에 청바지 그리고 한손에 쥐어진 마이크. "나에겐 초상권이 없다. 그러니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다"며 당초 총학생회가 부탁한 것과는 달리 학생들의 촬영을 환영했다.

해맑은 모습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김제동의 강의 해맑은 모습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장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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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방송인이라고 소개하기도 좀 그러네요. 반갑습니다."

모두가 아쉬움의 탄성을 보냈다. 여러 설에 휘말리며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던 김제동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안경 벗은 모습을 보여주며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든 그는 역시 우리의 김제동이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펜을 들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가 적은 글자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려 합니다. 강의가 끝난 후 사진 찍을 시간을 줄테니 지금은 잠시 카메라를 넣어두십시오. 기계 따위에게 마음을 뺏기지 말고 우리 서로 강의 시간 동안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해 봅시다."

참을 수 없는 김제동의 '말말말'

강의 내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의 웃음을 자아냈다.

"누워서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이불을 덮어 버렸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시나요?"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졌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는 학생들을 향해 그는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했다. 뉴스를 보고 있는 자신을 어머니께서 자는 줄 알고 이불을 덮어 주신 것이다. 그의 눈이 작았기 때문이다.

"저는 2년제 전문대를 11년 다녔습니다. 엄마가 저보고 의대 다니냐고 그러더군요."

그는 외압에 관해서도 조심스럽고 짧게 말하며 넘어갔다.

"외압이란 없습니다. 없겠죠. 저는 아무말 하지 않겠습니다. 있으면 치사한 거죠."

그의 재치있는 유머 외에도 그는 말속에 뼈가 담긴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강단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 김제동씨.
▲ 김제동 강의 강단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 김제동씨.
ⓒ 장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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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중에 유머를 하고 대기실로 돌아가면 가끔 학자 분들이 와서 저보고 말합니다."
"김제동씨 아까 말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학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좀 나쁘군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몇 개나 쓰셨습니까?"
"석사 박사 합쳐서 2~3개 정도 썼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쓰셔서 가족 분들 포함하여 몇 명을 웃기셨겠지만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받아줘야 합니다."
"저는 방송 중에 막말 횟수가 0회인 방송인입니다. 방송이 없기 때문입니다.(웃음) 농담입니다. 실제로 방송을 할 때에도 막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상식에 따라 판단하고 올바르게 말을 합니다. 오히려 막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은 위에 있는 분들입니다."

또한 그는 그만의 독특한 웃음 철학을 우리에게 권해 주었다.

"기존의 틀을 조금만 깬다면 웃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남을 웃기려면 사랑해야합니다. 웃음의 출발점은 존중입니다. 여러분 웃으십시오. 웃어야 이깁니다. 웃어야 사회가 밝아집니다."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

무릎을 꿇고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는 김제동씨.
▲ 무릎을 꿇고 강의하는 모습. 무릎을 꿇고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는 김제동씨.
ⓒ 장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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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학생이 김제동을 향해 질문했다.

- 김제동씨는 20대를 어떻게 설계하셨나요?"
"저는 사실 첫사랑이 저의 인생을 거의 설계해준 것 같습니다. 뭐, 인생이 항상 설계한대로 살아지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여기까지 잘 온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이 있다면 기성세대가 되어 여러분께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취업경쟁, 등록금 문제 이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저는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꼭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요. 항상 여러분을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꽃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흔들림이 많으시죠? 그 흔들림이 아름다움을 만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큰 절을 하며 그렇게 강의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는 뜨거운 호응으로 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그는 "제 강의는 들어봤자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필기구는 집어넣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실재로 무언가를 적기 위해 펜과 수첩을 들고 있었지만 몇 개 적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강의가 남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웃음의 가치, 상식이 통하는 사회, 존중이란 키워드는 내 수첩이 아닌 가슴 속에 남았으니 말이다.

강의를 하는 도중에 무릎을 꿇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도 '존중'이란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20대에게 그가 던진 '사랑'과 '존중'이라는 가치와 그의 진정어린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태그:#김제동, #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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