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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 인근의 스콜코보 지역에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사업을 승인했다. 지난해 11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에너지 의존형 경제에서 탈피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첨단 기술단지 건설 프로젝트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 구체화된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는 에너지, 나노테크놀로지를 포함한 IT, 생물의학, 원자력 기술 등 5개 부문의 벤처기업과 관련 연구 교육 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실리콘밸리 조성 사업 1단계로 3억 3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며, 이 지역을 특별자치 구역으로 선정해 세제 혜택 등 전례 없는 각종 특혜를 제공할 것임을 밝혔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실리콘밸리 건설 책임자로 러시아 레노바그룹 회장인 베크셀베르그를 임명하며 조속한 사업 추진 의지를 나타냈다. 러시아 정부 내에서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수르코프 크렘린 행정실 제1부실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 세미나에 참석하고, 이베이, 시스코 등 글로벌 기업의 임원을 모스크바로 초청하는 등 실리콘밸리 원산지인 미국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소련의 붕괴로 기초과학, 컴퓨터 등 첨단과학 분야의 비교우위가 상당부분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고질적인 자원의존형 경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가 나노테크놀로지를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 정부는 기술집약형 산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추진해 왔다. 2007년에는 시베리아 최대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가 순수 기초과학 연구기관건립과 함께 IBM,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며 산학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했으며, 당시 푸틴 대통령도 이 지역에 세제 혜택과 연구시설 건립 등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강화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50억 달러 규모의 국영 나노기술 개발회사인 러스나노(Rusnano)를 설립하여 러시아 경제를 혁신적인 하이테크 경제로 이끌 컨트롤타워로 기능하며 나노기술 개발을 총괄하게 했다. 러스나노는 매년 10억 달러 규모의 기술개발 투자 및 인력 양성을 통해 러시아내 나노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나노테크놀로지 부문에 대한 투자 의지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금융위기와 함께 유가 급락으로 에너지 자원에 의존하고 있던 러시아 경제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에너지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정보기술(IT), 우주항공, 원자력 발전, 제약 등의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경제구조의 현대화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0월 모스크바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제2회 러시아 국제 나노 포럼에서 러시아 정부의 차세대 성장 동력인 나노 발전 프로그램에 2015년까지 107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많은 관련 자원과 인재를 보유한 러시아가 산업구조 현대화에 성공할지 여부에 대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건설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나노테크놀로지 발전을 통해 산업구조 현대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 나노테크놀로지 산업은 연관 산업의 인프라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업 등 연관 산업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방치한 채 하이테크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일정한 성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다른 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어렵다. 러시아 경제 발전 단계에 맞는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에서 시도되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겉모습만 옮겨놓았을 뿐이다.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이 작동하기 어려운 국가주도적 계획경제의 틀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시장의 선택' 대신 '국가의 선택'에 의한 발전이라는 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자본주의 경제의 총아인 실리콘밸리가 미국의 경우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이를 자신들의 입맛과 목적에 맞는 사업에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 산업구조의 현대화에 있어 국가주도의 '전제주의적 현대화'를 주창한 수르코프 크렘린 행정실 제1부실장이 실리콘밸리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리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IT산업 발전을 통한 경제구조의 다원화, 현대화 정책이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푸틴 총리가 주도하고 있는 에너지 위주의 발전 전략과 상충하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재정적자를 벗어나고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에너지 산업의 건재가 필수적인데, 에너지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푸틴 총리가 다른 산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산업구조의 변화 대신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도 이미 관련 인프라가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는 4개 특별경제구역(SEZ) 대신, 또 다른 지역에 실리콘밸리를 건설하는 것이 중복 투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스콜코보 지역 관계자들마저 러시아 정부의 실리콘밸리 건설 발표에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사전에 사업계획과 건설부지에 관한 협조가 미비했다. 이 조치가 치밀한 준비와 지방정부와의 협조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에 특별경제구역 운영을 전담하기 위해 신설된 특별경제구역청이 저조한 외국인 투자 유치 실적과 지방정부와의 공조 부족으로 지난해 10월 폐지된 점은 그만큼 시장과 외국자본에 대한 유인 없이 현재의 러시아 경제구조와 행정체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계획만으로는 사업성공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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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 글은 윤재웅 러시아경제센터장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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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광수경제연구소, #실리콘밸리, #러시아, #푸틴 , #메드베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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