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5년 9월
▲ 5,18 망월동 국립묘지 2005년 9월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광주민주화운동이 군부의 총칼에 무참하게 짓밟힌 후, 2년 뒤에야 나는 광주의 진실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시절, 나는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군에 의해서 진압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계엄군이 쳐들어 옵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는 영락없는 북한여성의 목소리처럼, 빨갱이의 목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시민군을 형상화한 작품
▲ 망월동 국립묘지 시민군을 형상화한 작품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대학 신입생이 되어 광주민주화운동 비디오를 보기까지 나는 광주를 몰랐고, 전두환은 박정희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를 지켜 준 든든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렇지않다면 그렇게 많은 목사들이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며 전두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목사는 거짓말이라고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사람인 줄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들의 죽음, 그들의 투쟁으로 맞이한 오늘이 부끄럽습니다.
▲ 망월동 국립묘지 그들의 죽음, 그들의 투쟁으로 맞이한 오늘이 부끄럽습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학 신입생, 그것도 목사가 되기위해 들어간 신학교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죽지않았다면 목사가 되었을 류동운 열사는 저희 학교 선배님이셨습니다. 지금이야 학교 안에 '류동운 열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추모비를 처음 세울 때 전경들이 굴착기까지 동원해 학교까지 치고 들어와 학생들과 몇날 며칠을 대치하곤 했습니다.

아아 광주여!
▲ 망월동 국립묘지 아아 광주여!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조금 나이가 들어 세상물정을 알게 된 후, 껍데기 즉,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것 같지 않았는데 벌써 30년, 그 사이 당신들을 팔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들도 꽤나 됩니다. 이른바, 변절자들이지요. 그냥, 자기들이 구국일념으로 그랬다고 끝까지 우기는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입니다.

류동운 열사는 대학교 선배이시다.
▲ 류동운 열사의 묘비 류동운 열사는 대학교 선배이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당신들의 그 억울한 죽음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완성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보란 왜 그리도 더딘 것인지, 지금은 당신들이 30년 전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던 그때만큼이나 가슴이 콱 막혀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당신의 묘지를 찾았지요.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경기도 성남에서부터 일주일 내내 걷고 또 걸어 망월동 묘지를 찾았습니다. 불어터진 발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장맛비가 억수로 내렸습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주검을 이토록 잔인하게 다루는 계엄군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던가?
▲ 광주민주화운동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주검을 이토록 잔인하게 다루는 계엄군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던가?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이전 망월묘지와는 전혀 다른 '5.18 망월동국립묘지'를 5년 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때만해도, 이젠 당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 한 편으로 80년대 그 험난한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1987년 6월 항쟁까지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던 대학생활까지도 자랑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역사란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지요.

사진 전시실에 걸려있던 그림의 일부
▲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전시실에 걸려있던 그림의 일부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은 당신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부끄럽고 또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당신들의 뜻을 이어받아 30년 동안 노력했더라면, 벌써 평화통일의 기반도 거의 다 만들어 놓았을 것 같은데, 이 사회도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었을 것 같은데, 모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5.18 광주국립묘지 사진전시실에서 담은 사진
▲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국립묘지 사진전시실에서 담은 사진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눈에 보이는 총칼이 없을 뿐, 온갖 선한 말들 속에 비수가 담겨있고, 음모가 담겨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좌파로 몰아붙이고, 빨갱이 딱지를 붙입니다. 여전히, 수구보수세력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전두환을 구세주처럼 옹호했던 보수언론들은 반성도하지 않고, 그 엄청난 기득권을 한번도 잃은 적 없이, 지금도 여전히 광기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광주민주화운동 그들의 죽음이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런 현실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또 죄송합니다. 이젠 그나마 당신들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억지로라도 고개를 숙이던 이들이 당신들을 능멸합니다. 당신들의 영정 앞에서, 죽음 앞에서 파안대소를 하고 당신들을 죽인 일등공신 전두환의 호를 딴 공원도 버젓이 있습니다.

벗들이 신발....80년대 시위현장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다.
▲ 광주민주화 운동 벗들이 신발....80년대 시위현장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80년대, 거리에서 많이 보던 풍경입니다. 저 주인을 잃은 신발보다도 당신들이 기어이 찾으려던 민주주의, 몸 살라 구했던 민주주의가 실종된 것이 더 부끄럽고 슬퍼 죄송스럽습니다.

이젠, 젊은 세대에겐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동지였던 이들, 한때 동지였던 변절자들은 그런대로 한 세상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그동안 맞이했던 그 어느해 5월보다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2005년 9월, 5.18망월동 국립묘지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