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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서울국제도서전
 2010 서울국제도서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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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마치고 얼마 전에 귀국했습니다. 전 불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는데 글쎄, 이런 식의 전시가 불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잠깐 보니까 그림만 슬쩍 넘겨보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유학중일 때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몇 번 간 적이 있거든요. 그 곳 자원봉사자들은 사전에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한 것 같았습니다. 관람객이 무얼 물으면 척척 알려주고 안내해 주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그런데 이곳에 있는 분들은 프랑스에 관한 상식은 물론 이곳 전시물조차 전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관람객 몇 분이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주빈국 프랑스 부스에 근무하는 분들 만큼이라도 어느 정도는 사전 지식이 있어 관람객들이 물어보면 아쉬운 대로 답은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15일 오후 5시, '2010 서울국제도서전' 프랑스 부스에서 만난 이동준씨의 말이다. 한마디로 실망이란다. 동감이다. 난 불어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울국제도서전에 도착하자마자 프랑스 부스를 제일 먼저 찾은 이유는 그곳이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12일에 개막해 16일에 폐막한 '2010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프랑스였다. 주빈국제도는 2008년부터 도입한 것으로 한 국가의 책들을 모아 전시하는 것이다. 2008년에는 중국, 2009년에는 일본이었다. 주빈국은 서울국제도서전이 우선 내세우는 것으로 3년째 입구 정면에 위치, 입장하면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어 있다.

2010 서울국제도서전-프랑스 부스 일부
 2010 서울국제도서전-프랑스 부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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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오늘부터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아동물은 거의 다 팔렸어요. 어른들 책은 국내 번역서만 나가고 거의 나가지 않는 것 같던데요? 물어보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음... 사실 불어를 전혀 모르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번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입구의 한 스태프에게 전체적인 분위기를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몇 권만 남고 텅텅 비었다. 속으로 대단한 반응이다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림이 유난히 좋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동화작가의 책들이었다.

다른 전시대에서 책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전시된 책을 몇 장 넘겨보다 이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부스에서 그나마 제일 북적이는 곳은 국내 번역 소개된 일부 책들을 파는 곳이었다. 전시 한모퉁이에 마련된 작은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최근 2~3년 동안 프랑스 여성 소설가 '니콜 드뷔롱'의 소설 3권을 재미있게 본적이 있는데 재미있는 소설 한권 기념 삼아 사는 것도 좋겠다 싶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책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책 한권을 고르지 못했다. 전시 도서는 얼핏 눈으로 봐도 몇몇 출판사의 몇 종류에 불과해 읽고 싶은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니콜 드뷔롱'의 책도 당연히(?) 없었다.

프랑스 책들을 눈 뜬 장님처럼 어림짐작 구경할 수밖에 없는 전시회

2010 서울국제도서전-프랑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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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책들이 많은데 도대체 어떤 책들인지 알 수 없어요. 프랑스에서는 주로 어떤 책들이 많이 나오는지, 정말 프랑스는 소설이 많은 나라인지,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얼마나 읽는지... 프랑스 문학과 책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안내문 하나 없네요. 정말 실망스러워요. 다른 도서전 평균도 못되는 것 같아요."

수원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공감한다. 지난해, 지지난해도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 부스에는 프랑스 책과 관련된 설명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프랑스 책들을 죽 늘어만 놓고 있는 정도? 아니 오히려 2009년 주빈국 일본 부스, 2008년의 중국 부스보다 훨씬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판시장이 어떻고 어떤 분야의 책들이 발달했는지 등 두 나라의 출판이나 문학 특징과 흐름을 알 수 있는 설명문 하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본과 중국 전시에서는 전시대를 따로 마련하여 최우수 디자인 도서, 판권 수출 도서, 고전 그림책, 여러 출판 집단의 일반 도서들, 교과서 등을 전시라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프랑스 도서전은 그나마도 없었다. 독립된 전시대는 겨우 2개, 별다른 설명없이 그냥 몇권을 전시하고 있어 넘겨봤지만 도무지 무슨 책인가 싶었다. 때문에 수많은 프랑스 책들을 눈뜬 장님처럼 더듬더듬 어림짐작하여 구경하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주빈국이라면 최근에 국내에서 번역된 책만큼이라도 모아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특히 어떤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프랑스 사람들은 주로 어떤 책들을 읽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안내문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만 전시할뿐, 주빈국인 그 나라 책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주빈국 부스, 굳이 주빈국 제도가 필요할까?

2010 서울국제도서전 일부
 2010 서울국제도서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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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서울국제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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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메이저급 출판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그래야 우리 같은 작은 출판사도 힘이 나고 그러는데 올해는 눈에 띄게 많이 줄었네요. 해마다 도서전에 나오고는 있지만 올해는 독자들에게 좀 민망한 생각도 많이 드네요. 돌아보면 알겠지만 올해는 특히 특정 종교에 대한 책과 처세술과 같은 그런 시류에 휩쓸리는 책들이 눈에 띄게 많거든요. 해마다 나오다가 안 나오기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홍보하는 입장인 것은 사실인데 독자들에게 입장료를 따로 내게 하는 것도 그렇고 계속 참여해야 할지 좀 고민되네요."(A출판사 관계자)

"출판사 사상 처음으로 도서전서 50%까지 할인을 해보고 있지만, 별 반응이 없네요. 지난해, 지지난해보다 더 많이 힘들어요. 선거도 끼고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많이 힘드네요."(B출판사 관계자)

"다른 나라처럼 국가의 지원이 많은 것도 아닌데 부스 값도 비싼 편이라 이처럼 할인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아요. 어떤 출판사들은 홍보도 별로 안 되는데 직원들 공연히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그 돈으로 광고나 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느냐고도 해요. 직원들도 사실 고생 많이 하거든요."(C출판사 관계자)

올해는 특히 소설, 인문 등의 책들을 주로 출판하는 출판사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이 준 것 같다. 반면 특정 종교의 책들을 주로 출판하는 곳들은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듯, 도서전에서 낯익은 종교서적 출판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갈수록 도서전 본래의 취지와 달리 특정 분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올해 전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할인이다. 1000원~3000원 균일가격 코너를 마련해 판매를 하는 부스들이 몇개 눈에 띄었다. 일반 출판사들도 10~50%까지 할인은 보통, 지난해처럼 아동물 할인율도 높다. 경기도 힘든데 출판사는 재고도서를 처리할 수 있어서 좋고 독자들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도서전의 본래 취지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전시회 질적 향상과 관람객을 위한 배려 찾기 어려워

2010 서울국제도서전-생명이 자라는 싹
 2010 서울국제도서전-생명이 자라는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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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서울국제도서전-역사를 주제로 한 북아트 작품
 2010 서울국제도서전-역사를 주제로 한 북아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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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코너도 많이 준 것 같다. 몇 되지 않았다. 그만큼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도 특색 있는 아트북이 몇몇 있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씨앗을 넣어 한지를 만든 다음 필요한 글을 인쇄, 물을 주어 자라게 하는 작품과 우리의 건축물을 표현한 작품은 무척 인상 깊었다.

"유료화는 몇 년 전부터 있어온 말이다. 국내 무료전시는 없다. 때문에 유료화가 옳다고 생각한다. 요금으로 어떤 이익을 내자는 것이 아니다. 유료로 하면 지나가다 시간 때우기로 들르는 사람들보다 정보가 꼭 필요한 사람들만 주로 올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의 관람여건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2009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지난해에 이어 입장료가 있다. 일반인은 3천원, 아동 청소년은 1천원이다. 이에 대해 입장료가 처음 생긴 지난해 주최측에 묻자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울러 집계 등 어떤 통계나 기록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관람여건이나 전시자체의 질적인 향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도 그랬는데 올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곱지 않은 것 같다. 참여 출판사들도 "유료라서 예전보다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글쎄? 해마다 참여하다 보니 내 스스로 식상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점점 갈수록 도서전에 대한 실망이 크다.

2010 서울국제도서전 일부
 2010 서울국제도서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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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은 토요일에 시간을 연장하기보다는 평일에 하루 이틀 시간을 연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일에는 6시까지만 전시하다보니 오기 참 힘드네요. 오늘 같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집안 경조사가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정말 시간을 간신히 빼서 왔습니다."(30대 여성 직장인)

이렇게 말하는 직장인도 있다. 그러고 보면 도서전의 일환인 이벤트나 자체 행사들도 대부분 낮에 몰려있기 일쑤다.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말은 종종 있어 왔다. 30대 한 직장인의 말처럼 평일에 직장인들을 위한 연장전시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손자 손녀를 위해 많은 책을 샀다"는 할머니도 만났다. "좋은 책들을 싸게 살 수 있어서 멀리서 온 보람이 있다"는 한 여대생도 만났다. "책과 관계된 정보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해마다 온다"는 한 주부도 만났다. 그래도 2010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모로 많이 아쉽다.

"점점 갈수록 발전을 기대해 보건만 그 반대로 점점 뒷걸음치고 있는 느낌을 올해는 특히 많이 받았다", "점점 갈수록 전시보다는 판매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다", "일반 서점보다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 돈과 시간이 아깝다" 등 별로 만족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번 제안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국내 최고 규모,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도서전이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전시인지를 고민하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책과 만날 수 있는 그런 도서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2010서울국제도서전, #삼성동 코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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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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