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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새만금방조제 완공 이후 전북 지역이 활기에 넘치고 있다. 개장 18일 만에 관광객이 100만명 넘었다는 통계, 준공 기념 축제 및 마라톤 등 각종 행사, 국내외 유수자본을 대상으로 한 간척지역 투자설명회, 150층짜리 고층빌딩, '동북아의 두바이' 운운하는 장밋빛 미래전망. 길이만 33km에 달하는 이 세계최장 방조제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꿈의 상품'이 되었다.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거라고 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 그저 바라만봐도 '좋은' 것인지. 각종 블로그에는 기념사진이 가득하다.

새만금 완공에 쏟아지는 환호, 2003년 기억은 잊었나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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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기'를 보면서 내가 꺼내보고 싶은 것은 지난 2003년의 기억이다. 한동안 중단되었던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재개하면서 당시 정부가 부딛쳤던 사회적 저항이란 결코 가볍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었다.

첫번째 기억은 '람사협약'이다. '물새의 서식지로 알려진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의 협력으로 맺어진 조약'이라는 이 협약에 우리나라도 1997년 가맹국이 되었다. 이 물막이 공사가 재개되었을때 때문에 세계 많은 NGO들의 비난은 '람사협약' 위반이라는 것에 집중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갯벌, 도요물떼새를 비롯한 희귀철새들의 대표적인 서식지 새만금의 간척사업은 언제나 '반 환경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주요 NGO들까지 한국의 반환경적인 갯벌매립에 대해 우려하고, 람사협약을 위반한 것에 대해 국제적 신의의 문제로 비난했다. 이따금씩 언론에는 이들의 항의 시위가 보도되곤 했었다.

두번째 기억은 '삼보일배'다.  새만금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종교의 이질성도 극복하고 수경 스님(불교)과 문규현 신부(천주교), 김경일 교무(원불교), 이희운 목사(기독교)가 만나 동행했던 오체 투지. 이들의 묵언수행과 온 몸을 다한 열의에 여론은 들끓었으며 세계는 감동의 찬사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30여명의 공식수행단과 이를 뒤따르는 자발적인 지지자들은 이들이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에서 서울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늘어났다.

어머니 같은 자연 앞에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온몸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듯했던 이들의 몸짓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웠던 저항'이 아닌가 한다. 비록 현실적으로 새만금 공사를 중단시키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그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때의 각종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는 새만금개발도 단골메뉴였던 것으로 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노동계, 문화계 등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 1400여 명은 새만금 개발에 대한 시국선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한창 '민중가요'로 뜨던 윤민석씨의 송앤라이프에서도 새만금 갯벌을 주제로 몇 개의 노래를 제작했고 시위현장에서 종종 불리곤 했다. 갓 출범했던 노무현정부에게 새만금 공사 재개는 집권 초기 상당한 부담이었던 샘이다.

4대강을 생각하면 새만금이 떠오른다

새만금 준공식에서 4대강을 홍보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대통령님, 선거법 위반입니다. 선관위 여러분 여기 현장 증거가 있습니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해주십시요.
▲ 새만금에서도 죽어도 4대강을 홍보해야... 새만금 준공식에서 4대강을 홍보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대통령님, 선거법 위반입니다. 선관위 여러분 여기 현장 증거가 있습니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해주십시요.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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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간척지의 완공에 추산 25조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는 새만금방조제는 4대강과 닮은 꼴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수많은 우려를 뒤로하고 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출발한 거대 토목공사 새만금간척사업은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사업타당성조사를 거쳐 당시로서도 적지 않은 1조 8천억이라는 예산이 책정되어 출발했다.

90%의 지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도 실시하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는 2달 만에 끝내버린 4대강이 초기에 순항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새만금 또한 환경파괴와 과도한 토목공사라는 비난을 받으며 순항하지 못했다. 급기야 치열한 저항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까지 했었으니까.

4대강 공사로 인해 수많은 습지가 사라지고 많은 생물종이 절멸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연이어 쏟아지는 것과 같이 새만금도 그 판박이었다. 이미 새만금 갯벌은 죽어버렸으며 바닷물도 생명도 말라버렸다. 그래서 나는 새만금을 생각하노라면 4대강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기억은 이제 영원히 잊혀진 것일까? 언론도, 사회논객들도 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어 애석하다. 환경영향평가에만 몇 년이 걸렸어야 했고, 안 그래도 무리한 공사 십수년에 걸쳐서 해도 모자란 것을 고작 2년 만에 끝내겠다는 이 정부. 그 아래서 기어이 완공된 새만금에 붙는 수식어는 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 '대역사', '기네스북에 등재될 기록' 같은 포장용밖에 없는가. 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로 새만금을 마냥 좋아하고만 있다.

서울시장이었던 당시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청계천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계천의 달라진 모습은 그야말로 찌뿌둥한 회색 도시에 화려한 비쥬얼을 선사해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 비쥬얼에 도취된 채 그 이전, 청계천에 수반되었던 온갖 논란들을 싸그리 잊어먹은 듯 보인다.

수돗물이 흐르고, 생명이 자연적으로 조성될 수 없고, 콘크리트로 바닥이 뒤덮이고, 역사유적들이 소리도 없이 철거된 기억들은 '조경의 테크놀로지'에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 내적으로 수반된 수많은 문제들을 비쥬얼 하나로 날려버린 청계천이야말로 '이미지 정치'의 성공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이미지에 눈이 멀어, 많은 것들을 망각해 버렸다. 그냥, 마냥 좋아보일 뿐이다.

'이미지 정치'와 '기억하지 못하는 유권자'

낙동강 4대강정비사업 현장 참사지의 물.
 낙동강 4대강정비사업 현장 참사지의 물.
ⓒ 지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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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미지 정치'는 청계천과 새만금을 넘어 4대강을 향해 가고 있다. 청계천은 서울의 것이요, 새만금은 전북의 것이었지만 4대강은 전국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지 정치'의 절정이 되버릴 것이다.

2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습지가 사라지고, 생물다양성이 소멸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여의도의 수십배에 달하는 거대한 준설토 쓰레기 더미가 생겨나고, 피와 땀으로 얼룩진 수십조원의 세금이 건설사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것은 4대강이 완공되는 순간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중요한 것은 낙동강 굽이치는 안동에서도, 광주 전남의 젖줄 영산강에서도 서울의 한강과 청계천과 같은 비주얼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완공된 4대강으로 전라, 경상, 충청, 경기 지역 가릴 것 없이 온 국민이 4대강을 보기 위해 가까운 수변공원을 찾을 것이다. 4대강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자, 즐겨 찾을 수 있는 '국민의 공원'이 될 것이다. 또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4대강은 관광자원으로서 인접지역에 상당한 수익성을 보장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어찌됐든 완공된 4대강 사업에 문제를 제기해봤자 되돌릴 수 없는 국면에 처한 반대론자들의 체념과 논란의 종식. 반사이익을 얻을 정권 등이 맞물려 우리가 향할 곳은 2012년 4월의 총선과 12월의 대선이다.

물론 뜻있는 인터넷의 수많은 논객들은 여전히 이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상파방송에는 주말을 맞아 4대강변으로 봄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의 인터뷰가 끊이지 않고 방영될 것이다. 무섭지 아니한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미지 정치'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새만금을 통해 4대강으로 탄생할 '기억하지 못하는 유권자'를 떠올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이 나라 민주주의는 디스토피아를 향해갈 수밖에 없다.


태그:#새만금, #4대강, #청계천, #토목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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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우진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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