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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근처 한 제과점 앞에서 몇몇이 모여 주간지 <레프트 21>을 팔았다.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서 주간지를 팔았던지라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간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왔다. 경찰은 '안보는 위기다'라는 제목의 <레프트 21> 기사를 문제 삼았다. 그들은 '사상검증이 안 된 신문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찰은 미란다 고지도 없이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나를 비롯한 판매자 6명을 모두 연행했다."

 

12일 오후 1시 시청광장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억압 및 무더기 소환장 남발 규탄 기자회견'에서 신명희씨가 밝힌 내용이다. 신씨는 "<레프트 21>은 진실된 목소리를 알렸을 뿐인데 그것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판매자를 연행한 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이 정부는 최근 들어 1인 시위를 한 이들, 용산참사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뿐만 아니라 몇 년이 지난 사건까지 들춰내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소환장을 발부하고 있다. 다함께,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발표하는 자리였다.

 

"1년 전 사건 이제와 소환장 발부... 경찰청의 방침인 듯"

 

소개된 사례 중에는 1년 전 사건에 소환장을 발부한 일도 있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2009년 용산참사 때 개최한 검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봤다고 지난 3일 소환장을 받았다. 이 외에도 2007년, 2008년에 있었던 사건으로 최근 소환장을 받은 사례가 8건에 달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1년이 지난 사건에 소환장을 보낸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경찰청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집회 등에 제재를 가하라는 방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방침이 아니고서야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에도 소환장을 남발하고 있다. 기자회견 발언자로 나선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지난달 13일, 4대강 범대위가 '100인 1인 시위'를 왜 하는지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것도 불법이라고 소환장이 날아왔다"며 "심지어 현장에서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는데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의 사무처장이라는 이유로 소환장을 받았다"고 성토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안진걸 참여연대 정책기획팀장은 "독재정권이 보기에도 기자회견까지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노태우 때에도 기자회견은 건드리지 않았다"며 "(그러나)요즘은 거의 모든 기자회견을 불법이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구호를 외쳐서 불법 집회라기에 구호도 안 외치고, 피켓이 많아 불법 집회라기에 피켓도 안 들고 퍼포먼스만 했더니 그것도 불법 집회라더라"라며 "1인 시위도 기자회견도 할 수 없는 험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2년 만에 열린 광장, 희망은 여지없이 깨졌다

 

지난 6일 2년여 만에 서울광장 집회가 허가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표현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확보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경찰은 이 집회를 주최한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도 소환장을 보냈다. 신고한 인원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박진 상임활동가는 "(국내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프랭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의식하여 광장을 열어주었다가 보고관의 방문이 언론에 노출이 거의 안 되어 시민들 사이에서 특별한 여론이 조성되지 않자 (정부가) 여기에 힘을 얻고 다시 하던 대로 가자고 방향을 튼 것을 보인다"고 말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최근 더 심해진 정부의 규제에 대해 "G20 회의가 상당히 신경 쓰일 것"이라며 "그 전에 '표현의 자유'를 옭죄는 일을 정리해 두고 가자는 판단인 듯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촛불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공포 정치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박 활동가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유사 집회'라는 논리로 불법화 시키고 있는 행태를 봤을 때 오늘 기자회견에도 소환장이 날아올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태그:#표현의 자유, #소환장, #집시법, #불법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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