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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이후, 오히려 더 여행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니 있나?

학위 과정 중에 있었고, 과제와 연구와 돈 벌기 위한 일들이 일상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 역시 회사와 학교라는 두 축 사이를 오가느라 정신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특별한 이유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틈틈히 시간은 있었을 테지만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심적 여유가 없었던 듯싶다.

매년 5월과 10월이 되면 따뜻한 봄 바람과 시원한 가을 바람에 한두 번씩 집 근처의 산을 방문하거나, 경복궁길, 광화문 길을 걷는다. 그리고는 매번 다짐한다. 5월과 10월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적어도 이 달만큼은 주말을 자연 속에서 보내자. 그러나 그 한두 번에서 다짐은 끝이 난다. 곧 무언가 정신 없는 일들이 생겼고,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할 일들이 쌓였고, 그렇지 않으면 새롭게 열망하는 일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시간은 흘러 봄은 가고 무더운 여름이 왔고, 가을은 흘러 추운 겨울이 왔다. 무더움과 추움을 만나면 다시 따뜻하고 시원한 날들을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러한 반복은 4년간 이어졌고, 올해엔 그 종지부를 기어코 찍으리란 다짐을 추운 겨울날 무수히 했더랬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 5월 첫 주 토요일. 문경으로 떠났다.

이 초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5월 햇볕을 품은 초록? 혹은 녹색 계열의 물감 모두를 한 손에 모아 놓고 휘리릭 자연에 흩뿌린 초록? 미천한 언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5월 자연의 초록이 그 곳에 있었다. 초록은 나무마다, 높낮이마다, 각각이 서 있는 모양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다. 어떤 나무는 푸른 초록을, 어떤 나무는 깊은 초록을, 어떤 나무는 민트향의 초록을 입고 있다.

불현듯 뉴질랜드의 숲 길이 떠올랐다. 그 때는 나무와 숲이 주는 소리에 매료되었다. 바람이 나뭇가지 새를 통과하는 소리, 그래서 흔들리는 나무와 잎사귀 소리, 그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 어디선가 흐르는 물 소리, 떨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바람과 숲과 내가 만나 새롭게 만들어 내는 소리. 일테면 바람이 내 귀와 머리카락에 갇혀 소용돌이 치며 내던 소리.

그런데 언젠가부터였을까. 소리 대신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5월의 색, 9월의 색, 12월의 앙상한 색. 어떻게 한 나무와 숲에서 그렇게 각기 다른 색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남게 되는지. 그들은 태양을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얼마만큼 버리는지, 또 물은 얼마만큼 빨아들이는지. 태양과 물이 어떤 농도로 섞이면 그러한 색을 만들게 되는지. 서로가 지니고 있는 개성에 따라 각자가 자신의 색을 만들고 있는 그들의 능력이 놀랍다.

문경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면 문경새재가 나온다.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개척한 관도로 영남에서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다. 그 길에는 3개의 관문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지 못하자, 이후 3개의 관문을 세워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걷기 편한 평평한 길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지, 새조차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 하여 새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관문 초입에는 '문경새재 과거 길'이라는 이름이 쓰인 커다란 돌이 있다. 경북의 양반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이곳을 지났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우리는 2010년에, 누군가는 오백년 전에 걸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내가 걷는 길을 오백년 전의 그들도 걸었다. 그들이 걷는 길을 오백년 후의 나도 걷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 여러 개의 시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러나 하나의 시점에 속한 이들은 그 시점의 세계밖에 보지 못한다면, 어쩌면 지금 서 있는 우리의 공간에 수 많은 나와, 수많은 그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1Q84'처럼 우리도 1Q10년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기쁨이, 내가 느끼는 슬픔이, 내가 느끼는 절망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있는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그들이 느끼는 기쁨, 슬픔, 절망, 분노가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있는 우리에게 일정한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경새재를 걸으며 한양으로 향하던 그들의 긴장된 마음은 자연으로부터 잠시 위로와 위안을 느꼈을 테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오늘의 우리도 그들이 밟은 땅으로부터, 그들이 스쳐간 나무로부터 같은 위안과 위로를 받는 모양이다.

문경새재 3관문에서 수안보까지는 버스로 40분쯤 걸리는 모양이다. 확신을 갖지 못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도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묘미는 낯섦에 있다. 공간의 낯섦뿐 아니라, 일상의 낯섦 또한 포함되리라. 병산서원 가는 길은 버스가 끊긴 눈 내린 산 길을 달빛에 의지해서 걷는 낯섦이 있었고, 땅끝마을의 긴 오솔길 끝에서는 한없이 펼쳐진 겨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운치 있는 벤치를 만나는 낯섦이 있었다.

이번 여행 역시 한적한 도로, 그것도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걸으며 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골의 낯섦을 만났다. 누군가는 서른다섯 살의 뚜벅이 인생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뚜벅이가 주는 낯섦의 풍경을 만날 때면 늘 다짐한다. "우린 뚜벅이로 늙자."

수안보에는 온천과 꿩요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안보에는 이렇게 수안보 성당이 있다. 숙소를 잡고,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벚꽃 만발한 수안보 길을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성당을 만날 수 있다.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이며, 성당 뒷편에 마련된 나무 테이블과 의자, 바베큐 그릴까지. 그 모습만이라면 흡사 뉴질랜드의 백팩커같다.

뉴질랜드 여행이 지금까지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백팩커 때문이리라. 아담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백팩커의 주방에는 각국의 음식 냄새가 섞여 있다. 맨발로 마당의 풀을 밟으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무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놓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돌아보며 수다를 나누기도 한다. 한국에도 펜션대신 백팩커 문화가 자리잡았다면 여행이 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역시 5월의 자연은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바쁜 일상, 5월만큼은 잠시 뒤로 물리자. 하루나 이틀의 시간 속에서 만나는 자연은 우리에게 더 많은 사유와 더 많은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겨다 줄 테니까.

* 서울에서 당일 코스로도 강추. 
강변역 동서울 터미널에서 오전 7시, 7시 30분, 8시. 그 이후로는 한 시간 간격으로 저녁 7시까지. 버스를 타고 2시간 가량 지나면 문경에 도착. 문경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이면 문경새재. 문경새재 3관문까지의 걷기 여행. 3관문 끝에서 2시 30분에 수안보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다보면 수안보 도착. 수안보에서 온천을 즐기고 저녁을 먹고 수안보에서 서울로 가는 7시 막차를 타면 서울 9시 도착.


태그:#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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