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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20일 남짓 계시다 가셨다. 막상 모셔오면 모르는데, 모셔오기 전에는 각오가 필요하다. 모두가 그렇듯 거리낌 없이 활보하며 살아가는 내 공간에 '시' 자 들어가는 어른을 모셔오기가 쉽지만은 않다. 보통 봄과 가을 두 번 오시는데, 남편은 봄에는 민속명절이 지나자마자, 가을에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언제 모셔 오느냐며 성화를 한다. 나는 최대한 미룬다. 주말에 행사가 있다는 둥, 아직 계절이 일러 방이 춥다는 둥 계속 미루다가 마지못해 날을 정한다.

일단 결정을 하면 오시기 일주일이나 열흘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김치를 세 가지 정도 담그고(열무김치, 물김치, 오이소박이 등 계절에 맞는 걸로) 다른 밑반찬도 하는 등,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 놓는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얘야 늙으면 말이다, 먹는 재미로나 사는 거란다."

시어머니와 함께 먹는 점심 밥상이다. 노인은 뭐든 국물이 있는 것을 좋아하셔서 물김치는 물론 김치도 국물을 넉넉히 부어 앞에 놔 드려야 한다.
▲ 점심 밥상 시어머니와 함께 먹는 점심 밥상이다. 노인은 뭐든 국물이 있는 것을 좋아하셔서 물김치는 물론 김치도 국물을 넉넉히 부어 앞에 놔 드려야 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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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우리 어머닌 유난히 식탐이 많으시다. 다른 어머니들은 맛있는 걸 사드려도 자식들 돈 많이 쓸까봐 벌벌 떤다는데, 우리 어머닌 집에서나 밖에서나 맛있는 음식을 드셔야 좋아하신다. 상을 잘 차려드려서 맛있게 드시면 기분까지 좋아지셔서, ' 아, 잘 먹었다' 하고 흡족해하신다. 마지막으로 하는 준비는 이부자리를 햇빛에 널어 말리는 것이다. 뽀송뽀송한 이부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밤에 잠이 잘 올 테니까. 반면 빨리 모셔오지 못해 안달을 했던 남편은 전혀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 방에 탁자 좀 밖으로 내놓고 청소 좀 해놔."
"아, 뭐가 그리 급해. 오시고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니까."

나는 궁시렁거린다.

"알아서 해. 자기 엄마니까. 오시자마자 치우느라 부산 떠는 것보다 미리 치워 놓는 게 나을 텐데…."

그래도 이 남자 끝까지 놔뒀다가 어머니 오시고 나서 치우느라 북새통이다. 어머니는 거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구경하시고, 아들은 방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아들은 잘 못깨닫고 있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말끔히 치워놓은 상태에서 오시면 아, 이게 내 방이구나, 싶어 애착도 가고 적응도 쉽지만, 잡동사니가 들어찬 방을 치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아무리 당신 방이라도 임시 거처란 생각 밖에 안 든다.

그렇게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게 있으니, 바로 모시고 살고 싶지 않은 거다. 시어머니가 사시는 집은 17평 주공아파트. 평수가 작고 저가 아파트라 그런지 독거 노인(거의 할머니)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서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시느라 어떤 땐 밤 9시에 전화 해도 받지 않으신다. 같은 아파트 친구 분 집에 가 노시느라 바쁘신 거다. 그런데도 편치 않은 건 85세라는 고령이신데다 자식된 도리로 암만 생각해도 방치 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이리라.

하루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물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품목, 나머지 반찬은 떠나시는 날 바로 해서 담아 드려야 한다.
▲ 김치와 밑반찬 하루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물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품목, 나머지 반찬은 떠나시는 날 바로 해서 담아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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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뜯으셨는지, 한 나절 나갔다가 이렇게 많은 나물을 들고 들어오셨다.
▲ 쑥과 머위 어디서 뜯으셨는지, 한 나절 나갔다가 이렇게 많은 나물을 들고 들어오셨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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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뵈러 갈 때는 음식을 해가지고 간다. 김치며 밑반찬을. 그리고 오셨다가 가실 때에는 더 많은 음식을 만들어서 챙겨드린다. 열무김치, 총각김치, 물김치, 지난해 담아 놓은 김장 김치(가을에 드렸지만 다 드셨기 때문에) 등 가시기 며칠 전부터 하나하나 준비를 한다. 하나라도 잊어버리고 가실까봐 목록을 열거해 적어 놓으면서.

목록은 갈수록 늘어난다. 반찬을 드시다가 맛있다고 한 반찬도 추가, 또 노인이 가자마자 밥하기 귀찮으실 거라며 저녁으로 드실 찰밥을 해서 보온 도시락에 넣어드리기도 하고, 호박죽을 만들어 보온통에 넣어드리기도 한다. 갈 때는 보통 아들 혼자 모시고 간다. 그래야 아들 옆, 앞자리에 앉아서 가니까. 그럴 땐 내가 따라 갈까봐 경계를 하신다.

그러다 보니 가실 때는 둘이 양손 가득 들고 내려가 차에 싣는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편치가 않다. 들고 내려가는 짐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아들은 신이 나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걷는다. 마누라가 자기 엄마한테 맛난 거 많이 해 준 게 무슨 큰 효도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 남자 모시고 가면서, 또 돌아올 때 보내오는 문자에 날개가 달려 있다. 그리고 다녀와서도 '아유 홀가분하다' 이 한 마디로 자기 기분을 표출한다. 그때의 남편 얼굴은 마치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운 학생 같은 표정인데,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은 여전히 찜찜하다. 집도 빈 것 같고, 어두운 어머니 집이 떠오르면서 심난해진다.

이렇게 혼자 앉아 계실 걸 생각하면 노인을 산속에 내다 버리던 옛날 고려장이 문득 떠오른다.
▲ 시어머니 이렇게 혼자 앉아 계실 걸 생각하면 노인을 산속에 내다 버리던 옛날 고려장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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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맞다. 그 말, '고려장'이다. 고려장이 따로 있나, 홀로 사시게 하면 고려장이지. 먹을 거 잔뜩 싸서 어두운 집에 부려놓고 자식들은 나 몰라라 각자 자기 집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니…. 혼자 돌아가시는 노인도 늘어나는 추세란다. 그러니 '독거노인'이야말로 현대에 와서 변형된 현대판 고려장이다.


태그:#시어머니, #독거노인,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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