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래 꽃을 소개할 때 가급적이면 만난 장소를 밝히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행여라도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 훼손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이들이 찾아가면 자생지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궂이 장소를 밝히는 이유는, 어쩌면 내년부터는 그곳에서 홀아비바람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운길산역이 들어서고, 4대강사업이 진행되면서 팔당, 두물머리로 흘러들어가는 운길산 계곡의 물줄기까지 굴착기로 파헤치고, 넓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게으름을 떨다가 아직 눈맞춤을 하지 못했던 홀아비바람꽃을 만나기 위해 아내와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매년 홀아비바람꽃을 만나던 그곳에 도착하자 아내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 저기가 홀아비바람꽃 피던 곳이 아닌가? 계곡이 아예 없어졌네?"

"저 계곡물이 팔당, 두물머리로 흘러들어가잖아. 강줄기만 파헤치고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류까지 다 파헤치고 직선으로 만드는거지."

"아니, 그럼 저 계곡에 살던 것들은 다 어찌되고?"

"그런 사람들 눈에 그게 보이겠니? 정말, 큰일이다."

 

 

그랬습니다.

한참을 더 올라가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부분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홀아비바람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계곡물은 어제 내린 비로 활기차게 흘러내렸지만, 공사가 진행중인 그곳에는 물이 겨우 바닥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흙탕물인 채로 말입니다.

 

지난 밤 말로 모건의 <무탄트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무탄트'란 호주원주민 참사람족에서 현대문명화된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돌연변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의 통찰력있는 예언이 나와있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렵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4대강사업의 여파는 단지 강물줄기를 바꾸는 문제뿐 아니라 지류까지, 이렇게 강과 가까운 계곡까지 마구 파헤치고 있는 것입니다.

 

팔당유기농단지를 없애고 자전거도로와 야외공연장을 만드는 게 그들의 계획이라고 합니다. 농민들과 이 아름다운 계곡과 강과 계곡에 깃대어 살던 이 많은 동식물이 삶의 터전을 빼앗고 짓밟는 일이 강을 살리는 일이라니 기가 막혔습니다.

 

차마, 그 더러운 인간의 탐욕이 가득한 공사현장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카메라가 거부 반응을 일으켜 고장이 날 것만 같았고, 그 현장을 또다시 모니터로 봐야 한다 생각하니 담기조차도 싫었습니다.

 

 

무탄트, 돌연변이인 인간은 마지막 홀아비바람꽃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기대하는 것도 너무 큰 기대고, 깨닫는다 해도 이미 늦어 버린 것이겠지요.

 

홀아비바람꽃은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그리 깊지 않은 숲에서도 잘 자라는 흔한 꽃입니다.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던 꽃이 더는 살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제가 알기로는 운길산 계곡주변이 서울근교에서는 제법 야생화다운 야생화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홀아비바람꽃의 경우는 이보다 더 먼 곳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꽃이지요. 그런데 이제, 그곳에서 그들이 살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된 것입니다.

 

이미, 무성하게 피어나던 곳은 굴착기가 다 밀어 버렸고, 아직 그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 우환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정령들을 마구 짓밟는데도 우환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홀아비바람꽃, #4대강, #팔당유기농단지, #두물머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