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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3가지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둘째는 오바마 행정부도 "완전한 이행"을 다짐한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을 2010년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서 뒤집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한에 대해 "터프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공언했지만,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4월 9일 "북한은 1~6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추측을 낳았다. 특히 미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북한의 핵 물질과 기술이 외부로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4월 21일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미국의 정책은 분명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러한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다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정치외교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것은 자국의 핵 비확산 정책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기술적 판단과 정치외교적 판단 사이의 '불일치'를 하루빨리 해소하지 못하면, 오바마의 대북정책의 모순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북핵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국이 핵 이전 저지에만 몰두하려고 한다는 의구심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협상 밖에 없다.

 

대북 핵 선제공격? 전략적 모호성이 아쉽다

 

두 번째 모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NPR 보고서에서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고 그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국가들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NPT에서 탈퇴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북한과 대표적인 NPT 위반 국가로 지목받고 있는 이란은 미국의 핵선제공격 대상으로 남게 되고, 미국 정부는 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까지 해주었다.

 

문제는 이러한 방침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을 위반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성명에는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NPT에서 탈퇴하고 핵보유를 선언한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소극적 안전보장 제공의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핵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한다면, 이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 방침과 충돌하게 된다.

 

물론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까지 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소극적 안전보장의 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한 오바마 행정부의 사정을 전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선제 핵공격 옵션을 갖겠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전략적 모호성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했다. 즉,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에게는 '조속히 핵무기를 폐기하고 NPT에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는 수준의 언급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핵 선제공격 옵션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북한에게 핵포기의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미국의 NPR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핵무기 현대화와 핵보유국 지위를 공언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오바마, 부시의 실패한 외교로 돌아가나?

 

이러한 두 가지 모순은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 공언했던 "터프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포기한 것에서 비롯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양자대화 요구에 대해 "6자회담 틀 내에서 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2006년까지 지겹도록 반복했던 말과 똑같은 것이다.

 

한사코 북미대화를 거부했던 부시 행정부는 2007년 들어 양자 대화에 임했는데, 그 결과 6자회담과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이는 북미 직접대화가 6자회담의 한 구성물이 아니라 6자회담과 함께 굴러가야 할 '두 개의 수레바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적대국과의 조건없는 대화를 역설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2006년까지의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외교'로 복귀하고 말았다.

 

더구나 최근 들어 미국은 6자회담의 재개마저도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 규명 이후로 미루고 말았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6자회담과 이 사고를 연계시켜 버린 것이다. 이는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외교목표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공언마저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천안함 침몰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없이 북미 대화와 6자회담에 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북한의 연계 여부가 밝혀진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특히 천안함 침몰 원인이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에서, 6자회담과 이 사건을 연계하는 것은 대화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대화의 동력이 떨어질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고 미국의 대북정책의 모순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20년간 지속되어온 북핵 문제의 교훈이다.

 

결국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바마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양자대화를 6자회담에 가두지 말고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함께 굴려야 할 '두 개의 수레바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대선 유세 때 오바마의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자기만족적이고 일방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북한의 요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현대화와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이 맞닥뜨리는 '코리아 아마겟돈'은 예방해야 하지 않겠는가?


태그:#오바마, #핵문제,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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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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