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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한 정치지도자가 미래를 보고 평생을 고심해서 던진 이야기를, 마치 포퓰리스트가 표 몇 표 계산해서 '대통령 됐으니까 해보자' 이런 식으로 그분이 생각하신 역사적인 정책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분 아니다. 정말 그런 분 아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국민대 교수)은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로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거듭 참여정부의 세종시 정책을 "폄하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비판을 해도 좋고 대안을 내놔도 좋지만 이를 '좌파의 표심잡기'라고 폄하하거나, 행정수도 이전이 '망국'이나 '파탄'을 가져올 것처럼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2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특강'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김 전 정책실장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을 전하면서, 그의 철학이 '오해'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90년대 초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 참여정부 정책실장·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부총리)을 지내면서 "(노 전 대통령을) 5년 모셔도 다른 분들보다는 '세게' 모셨다"는 그는 "밖에서 떠돌아다니는 오해 혹은 억지에 대해 가만히 있는 것은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시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사람의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충청표 의식 행정수도 이전 공약? "울고 싶은 심정"

 

김 전 정책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철학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지역균형발전과 세종시 문제도 상생의 틀 안에 있다"고 말했다. 전국이 골고루 잘 살면서 그 속에 공동체가 살아있는 사회,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이 꿈꾼 '상생'이었다는 것이다.   

 

김 전 정책실장은 "좌파 정권이 충청표를 의식해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했다"는 비판에 대해 "답답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표를 생각했으면, 정치적 판단을 했으면 그런 공약을 안 했다"면서 "표때문에 이야기하는 건 지금 수도권 표를 의식해서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전 정책실장은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했던 국가지도자가 내린 결론이었고, 국회라는 대표기구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결정이었다. 여론 가지고 이야기할 것 같으면 오히려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처음으로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공론화하던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2002년 9월 30일 선대위 출범식 바로 전날. 노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꺼내자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수도권 표심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는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기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다음날 연설에서 노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꺼냈다."

 

"세종시 건설 안 된다는 확신, 어디에서 나왔나"

 

김 전 정책실장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세종시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것이었지 충청도 분들 기쁘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서 "대안을 내놓더라도 국가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안을 내놔야지 (수정안이) 충청도 도민 민심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가균형발전하자고 했지 충청도 위하자고 그랬냐"면서 "앞뒤가 잘못돼도 정말 잘못됐다"고 일갈했다.

 

이어서 김 전 정책실장은 현 정부의 수정안이 행정수도 이전이 가져올 '후방효과'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을 대전에 옮겼더니 후방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집행부서인 청과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정책부처의 이전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세종시를 '꽃'에 비유하면서, 꽃을 심어놓으면 기업과 사람이라는 '나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김 전 정책실장은 또한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공직사회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면 수도권 중심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관료들이 세종시로 가게 되면 자연적으로 비수도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원안도 원안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 행정부처가 떨어져있으면 불편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마치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망국이다', '파탄이다' 이렇게 말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현 정부는 지금의 행정부가 운영하는 패턴을 하나도 안 바꾸고 (세종시 문제에) 접근한다"면서 "행정부처 이전으로 인한 불편은 운영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환경이 오면 그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김 전 정책실장은 "수도권이 계속해서 비대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는지 충분한 답을 못 들었다"면서 "현 정부에게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건설되면 안 된다는 그 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싶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표가 이야기 한 '신뢰'를 인용하면서 "원안을 집행조차 해보지 않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하지 말자'고 하면 국제사회의 누가 우리 정부의 결정을 믿어주고 투자를 하겠냐"고 물었다.

 

"완장과 만장 내려놓고 대통령 죽음 위에 새롭게 태어나야"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한 달 정도 앞둔 지금, 김 전 정책실장은 "많은 분들이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완장을 차고, 만장을 들고, 책을 쓰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 답답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대로 호응이 없거나 잘 안 풀리면 그것들을 내려놓을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그는 "돌아가신 대통령 두 분의 영정사진만 들고 하는 정치는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면서 "그 영정사진을 대신할 어떤 기치와 어떤 가치를 들고 나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장과 만장을 내려놓고 대통령의 죽음 위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전 정책실장은 "노무현과 노무현의 철학, 참여정부의 정신이 미신이 되거나 실종이 되지 않도록 노 전 대통령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낼 계획은 없고 외국 학계에서 먼저 평가를 받고 한국으로 가져올 계획이란다. 끝으로 김 전 정책실장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틀린 길을 가지 않았다. 결국은 역사가 우리가 추구했던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걸 믿고 가고 있다."


태그:#김병준 , #노무현 , #노무현 1주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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