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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멘트 갈라진 틈 사이 뿌리를 내린 꽃다지, 지난 겨울 내내 벌벌 떨며 그 자리를 지키더니만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저 작은 꽃들도 보듬어 이렇게 피어내는데, 기어이 피어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떠나보냅니다. 
 

 
돌 틈을 친구삼아 피어나는 돌단풍, 그리하여 꽃말도 '생명력'입니다. 이 꽃이 피어날 무렵 당신들은 추운 바닷가 속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당신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그 꽃처럼 피어나는 기적을 간절히 바랐지만, 기적은 거짓과 숨김이 있는 곳에서는 피어나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그 어느 해 봄, 진달래가 필 무렵 절친하던 친구를 먼 이국땅에서 보냈습니다. 진달래꽃 즈려밟고 가듯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그 친구는 영영 떠났습니다. 검푸른 바다로 가신 그대들, 봄 되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볼 때마다 생각날 것입니다.
 

 
얼마나 척박한 곳이었을까요? 그럼에도 젊음과 청춘을 불태우며 살았을 그대들, 저 시멘트에 흘러내린 진흙을 붙잡고 기어이 피어난 이끼, 그리하여 언젠가는 저 시멘트 조차도 흙으로 만들 이끼를 닮은 그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수고를 힘있는 나리들께서 다 영광받으시고, 그대들은 그냥저냥 흐드러지게 피어나 별 대접도 받지 못하는 개나리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리 오는 봄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노란 개나리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봄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그대들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저 잊고 살았습니다. 꽃이 피어도 꽃인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잡초같은 꽃처럼, 그렇게 당신들의 수고를 잊고 살았습니다. 이젠, 조금이라도 당신들의 수고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나고 익어가는 꿩의밥입니다. 혹, 보신 적 있으신지요? 겨우내 배고팠던 꿩들이 먹는 것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 상상을 합니다. 먹을 것 없는 새를 위해서 피어나는 꽃, 그런 꽃같은 이들이 그대들이었습니다.
 

같은 꽃대에서 피어나도 아무렇게나 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순서대로 피어나는 것이 꽃이랍니다.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합니다. 조금 늦게 와서 조금 빨리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대들의 삶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망울 같았던 그대들, 그대들 피어나면 황홀했을 수많은 일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대들을 피어나도록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 그대들이 꺾였을 때 왜 그랬는지 분명히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던 배신감. 그 모든 것이 슬픈 봄날입니다.
 

 

여전히 그대들의 죽음을 농락하는 오랑캐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 오랑캐들의 침략을 그렇게 받았지만 지금까지 지켜왔습니다. 그대들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앞으로도 지켜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유린하려는 오랑캐 같은 것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대들 보낸 계절,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천안호 젊은 영령들이여, 그 곳에서는 편히 쉬소서!


태그:#초계함, #천안호, #꽃마리, #사초,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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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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