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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 끝나고 책을 보다가 인터넷을 켰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카페와 블로그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고난주간 특별기도회(3월 29일-4월 3일)를 진행하느라 글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꾸준히 방문해서 저의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고맙습니다.

저는 인터넷의 인기 있는 검색 코너를 잘 보지 않습니다. 진실한 것은 인기와 무관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이 역시 인기 있는 검색 순위에 올라와 있군요. 그런데 이색 단어가 인기 순위 중간쯤에 끼어 있습니다. '강금실'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연소한 여성의 몸으로 법무장관에 발탁되어 세인들의 관심권 안에 들어왔던 사람입니다. 또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여당 후보로 출마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후 그의 사회적 활동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즈음에 그의 이름이 검색 순위 중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좀 의아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클릭하니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에 관한 기사에 그가 공동 변호인 중 한 사람으로 올라 있었습니다. 그가 한 전 총리의 검찰 진술 거부권 행사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한 내용이 인용표 안에 간단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미니 홈피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클릭을 해 보지 않았겠어요? 법조인 강금실의 미니홈피답게 단조롭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왼쪽 상단에 위치해 있고 몇 가지 글이 돌출 기사로 올려져 있었습니다. 맨 위에 있는 글이 '[칼럼] I see you'였고 그 밑 두 번째 글이 '판사 한기택이 그립다'였습니다.

저는 '한기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봅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금실은 웬만한 남성 몇 사람의 몫을 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가 실명을 대며 '그립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한기택'이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발동했습니다.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꼼꼼이 읽는 일이란 저에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먼저 강금실이 쓴 글의 형식에서 법조인다운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판사 한기택을 그리워하는 이 글에서는 문단 나누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은 단어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읽기를 중단할까 하는데 글의 내용이 사람의 눈을 붙들었습니다. 한기택은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진정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여성을 사랑해서 1천에 가까운 데이트 끝에 결혼까지 성사시킨 것을 볼 때 진정한 사랑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판사로 임용되고서도 소외받고 있는 소수를 생각하는 판결을 내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유불리를 잽싸게 재단해서 사랑의 종류를 결정하는 오늘날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사랑은 수준 높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 보수 성향의 기득권층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법원 내 친목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멤버이기도 하고,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하의 소위 '사법파동' 때는 젊은 판사로서 성명서를 기초하며 그 사태를 주도했다는 것도 강금실의 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다니면서도 늘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짐이 되는 세력에 비판적이었고,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옹호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평화와 사랑의 분위기가 되었다고 하니 사람 됨됨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5년 부장판사로 승진을 하고 부모 형제 등 전체 가족이 말레이시아로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 그로서는 여행다운 여행으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웬만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면 핵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여행을 꿈꾸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부부 여행 그것에 조금 더 확대되면 하나 많아야 둘 달린 아이들과 함께 '자기들만의 여행'에 자족해하는 세태를 떠올릴 때, 14명의 대 식구를 거느린 한 판사의 가족 여행은 또 다른 이색적 의미로 비춰집니다.

그는 여행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 때 나이가 45세였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평소 사교적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슬픔을 함께 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재판에 임한 법관으로도 알려져 있고 공사의 구분이 분명해서 부장판사가 되고 지급되는 관용차를 가족들에게 한 번도 태워주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오죽했으면 부인이 차관급 부장판사를 둔 남편 덕으로 관용차 타고 동네 한 바퀴만 돌게 해 달라는 청도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강직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인 저를 되돌아봅니다. 나로 인해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정 약자를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공사가 분명히 구분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부름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슬픔으로 그를 추모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정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평소 행복을 많이 선물한 사람은 죽을 때 그것을 되받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동료 판사의 말이 귓가를 때립니다.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난 그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우리가 불쌍하다."

이런 삶이 정녕 의미 있는 삶일 것입니다.


태그:#한기택 , #강금실, #우리법연구회, #사법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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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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