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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왼쪽)와 이를 왼쪽에서 비판한 <리얼진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왼쪽)와 이를 왼쪽에서 비판한 <리얼진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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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규모 12위, 국가경쟁력 11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주가지수 2065포인트, 경제성장률 5%, 외환보유고 2601억 달러….'

'소득 5분위 배율 6.2배, 지니계수 0.325, 연간 근로시간 2316시간(1위), 빈곤율 0.15(6위),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 18.7명(3위, 이상 OECD 30개국 중 순위), 출산율(1.13명)…."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라고 불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경제성장, 삶의 질과 관련된 수치들이다. '민주파 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은 '성공한 10년'일까, 아니면 '잃어버린 10년'일까?

최근 출간된 <리얼진보-19개 진보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레디앙)은 이러한 질문에 날카롭게 응답하고 있다. 

"노무현이 실패한 곳에서 진보는 시작된다"

19명의 필자가 참여한 이 책은 지난해 11월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주축이 된 '진보의 미래 발간위원회'에서 펴낸 <진보의 미래>(동녘)를 겨냥해 기획됐다. "노무현이 실패한 곳에서 진보는 시작된다"는 슬로건을 책의 표지에 내세운 것도 그런 기획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진보신당은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왼쪽에서 비판한 자들의 답변"이라며 "노무현 시대의 보수성이 사후에 논의되는 '진보의 미래'라는 담론을 통해 사라지지도 않으며, 변명되지도 않는다는 이의제기"라고 평가했다.   

가장 격정적인 논조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한 필자는 현직 언론인인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키운 시장의 힘을 노무현 정부가 배가시켰다"며 ▲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및 상한제를 집권 초·중반기까지 반대 ▲ 법인세·특소세 인하 ▲ 출자총액 제한·지주회사 등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거론하면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으나,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신의 유고집인 <진보의 미래>에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배권이 사실은 이제 자본에게 넘어간 것이죠. 시장이라고 얘기를 해왔는데, 내가 시장 제도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시장에서 현실적 지배세력들이 이 모두를 다 집중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본주의 이전 시대는 국가권력이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지배했지만 지금은 자본, 자본의 논리가 통합적으로 지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진보의 미래> 307쪽)

노무현 정부 때 등장한 '삼성공화국'은 '자본의 지배권'이 어디에 이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술이다. 이대근 논설위원도 노무현 정부가 시장에 권력을 내준 또다른 근거로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유착을 제시했다.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정권은 재벌에 의탁하는 정권으로 변질되었다. 삼성공화국의 파트너로 전락한 노무현 정권은 삼성의 비전인 '2만 달러 시대'를 노무현 정권의 비전으로 삼았고, 삼성이 던진 의제는 노무현 정권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이러한 유착관계는 최근 <삼성을 생각한다>를 펴낸 김용철 변호사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의 입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선캠프 상황실장과 후보 비서실 정책팀장 등을 맡았던 윤석규 전 열린우리당 원내기획실장은 17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국민의 정부 시절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동남특위 위원장으로 활약할 당시 청산 이외엔 답이 없다던 삼성자동차를 르노에 넘기는 과정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삼성 쪽 파트너였던 부산상고 선배 이학수 삼성 부회장과 (노 전 대통령이) 매우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윤 전 실장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자신들이 만든 국정운영백서를 노무현 당선자에게 전달했으며, 노 전 대통령과 삼성의 또다른 연결고리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왜 권력을 놓고 나서야 권력의 주인을 얘기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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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노무현식 진보주의'의 고민이 담겨 있는 <진보의 미래>를 비판적으로 '독해'했다.

그는 먼저 "(<진보의 미래>는) '왜 그 정도밖에 못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노무현 스스로 내놓고자 했던 답변"이라며 "생전 노 전 대통령의 그 지나치게 돌발적이던 모습이 이제 이 책 안에서는 자기 비판과 변명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좌충우돌로 반복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노동의 유연화'에 있었다고 증언하는 대목을 '과감한 자기 비판'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했다.

"'우리도 할 수 있어' 중에 제일 아픈 데가 어디냐 하면 노동의 유연성입니다." (<진보의 미래>, 211~212쪽)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 정리해고는 김대중 대통령 때 받아들인 것으로 우리가 그대로 정리한 것인데…." (232쪽)

이어 장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도달한 그 해명은 한마디로 참여정권이 '보수시대의 진보주의 정부'였다는 것"이라며 "(그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 중 '제3의 길'을 택했고,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보수의 시대'에 그래도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진보주의'를 펼치려던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가령 그는 신자유주의와의 대립의 핵심이 '빈부격차하고 노동보호에 관한 문제, 분배와 재분배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이토록 명확히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실패했다. 그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는가?

이 난처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오직 '보수의 시대'여서 그랬다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공허하다. 그리고 현실에 들어맞지도 않는다. 그와 같은 시기에 집권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이 있다. 이들도 '보수의 시대의 진보주의 정권'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들이 하려던 것 그리고 해놓은 것은 노무현과 그의 정부의 기록들과는 그렇게 다른가?"

그는 "<진보의 미래>는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라고 물은 뒤 "그것은 저자가 이미 임기 중에 토로한 바 있고 이 책에서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 '지배권이 사실은 이제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죠'라는 언급과의 관계 속에서 '진보'의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지배권을 넘겨받은 자본'이 도대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라며 "'자본의 지배권'은 그러려니 하고 그 빈 구석에서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본의 지배권'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분배와 복지'를 쟁취하자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자본의 지배권' 그것에 맞서기 위해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장 실장은 "'그것밖에 못한 (또다른) 이유'는 아마도 완전히 이 책 바깥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며 "그중의 하나는 바로 하필 집권 이후에야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아프게 꼬집었다.

"권좌에서 물러나고 나서야 자신의 철학을 짚어보고 있다는 사실, 실패 이후에야 정책과 전략을 따지고 있다는 사실, 권력을 놓고 나서야 권력의 주인이 누가 됐어야 했는지 이야기한다는 사실, 즉 모든 일이 저질러지고 나서야 이 모든 걸 돌아본다는 사실. 그토록 그와 그 주위의 사람들은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장 실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점이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기지 못하게 한다"라며 "참여정부의 집권세력이 맞닥뜨린 이 상황은 고스란히 진보 정당의 몫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도 없는 놈들'의 절망과 동떨어진 정치를 해온 것 반성해야"

<리얼진보>는 '왼쪽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2부에는 ▲ 협동조합 등에 기반한 사회경제 ▲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 대학서열화를 폐지하기 위한 대학평준화 ▲ 양질의 평등한 보건의료 ▲ 한국형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임금 확대 ▲ 비핵화를 위한 평화체제 구축 ▲ 공공도서관 확대 등 구체적인 정책 비전을 내놓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펴낸 손낙구씨는 "결국 출발점은 정치세력 자신"이라며 "진보나 개혁을 따질 것도 없이 '집도 없는 놈들'의 절망과 동떨어진 정치를 해온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이것은 집 문제에만 한정된 것도, 정치세력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닐 것"이라며 "집을 비롯해 교육, 일자리, 건강 등 국민들의 살림살이와 통하는 정치활동과 사회운동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정치발전도, 사회발전도 기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리얼진보>는 "김대중·노무현류의 좌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프로젝트"(손호철), "지구화와 금융화에 대한 적응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했던 과거의 정책들을 모두 재검토"(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사회적 요구를 구체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리더십의 형성"(박상훈), "민주당 내 일부 진보세력과 시민단체를 망라한 연대틀"(이대근), "'민주 대 반민주'식 반MB가 아닌 '사회경제적 민주화 연합'의 반MB 대안연대"(노회찬)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진보의 미래 (특별 보급판) -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시민을 위한 대중 교양서

노무현 지음, 동녘(2017)


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레디앙(2010)


태그:#리얼진보, #진보의 미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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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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