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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하정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의 호가 '하정'이기 때문이다. 노을 하, 집 정. 노을이 머물다가는 집이라는 뜻이다. 딱 그 이름만큼이나 그가 사는 집은 머물다가는 노을을 보며 차를 마시기 좋은 집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집을 찾아 홀로 길을 떠났던 1988년. 그때 하정 선생이 시골버스를 타고 무작정 종점에 내린 곳이 지금의 터. 원래 터만 있던 곳을 사서 집을 짓고, 터를 가꾸고, 정원을 가꾸어 이날까지 온 것이라고. 그 모든 일을 여성 혼자의 힘으로 감당해 왔다니 대단하다.

 

북한 황해도에서 태어나

 

사실 하정 선생은 1925년도에 북한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도 생활을 하다가 광복이 되기 두 해 전엔 언니가 사는 중국 북경에서 살았다. 거기서 그는 임시정부 광복군을 만났고, 그들을 위해서 빨래 등을 해주려고 갔다가 광복군 가족으로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평생 뿌듯함으로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우리나라가 따로 없는 줄 알았던 그에게 조국이란 게 따로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것이 힘이 되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남한으로 넘어온 소위 '실향민'이다. 그는 말한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어릴 적 고향 마을의 정서는 저의 평생에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고. 그에겐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 때가 선하다.

 

'다도'는 나의 운명

 

1970년 법정 스님의 책 <서 있는 사람들(샘터사 출판)>을 읽다가 법정 스님의 차 마시는 에피소드에 반해서 차를 가까이하게 됐다. 그 때부터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다도'를 배우고자 했다고.

 

"처음 '다도의 세계'를 만났을 때부터 저는 차에 미쳐 버렸죠.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으면서 그 속에 무한한 정신세계가 들어 있음을 직감한 거죠. 차는 단순히 먹을거리로서만 마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차와 만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차는 왜 마십니까'라는 물음에 정답을 찾지 못했다는 그. 평생 찾아가야할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차는 왜 마십니까'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을지언정 차를 마시는 '화두'는 된다고 하정 선생은 말한다. 어쨌든 차는 마음의 수행이라는 것. 그래서 다도, 즉 '차의 도'라는 뜻이리라.

 

다도는 누구나 생활화되어야

 

그는 '다도는 돈 있고, 근사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마음의 자세만 되면 다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단다. 혼자해도 좋고, 둘이해도 좋고, 여럿이해도 좋은 게 다도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다도를 어려운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고. 하정 선생은 다도를 단순히 형식에만 치우치는 것이 제일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도는 다도의 정신이 알맹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다도의 3대 정신, 그것은 '검소, 소박, 정직'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이러한 마음 수행을 위해 마시는 것이지, 그 자체와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가정교육으로 다도를 한단다. 그래서 하정 선생의 꿈은 다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도가 우리의 일반생활에도 보편화 되는 것이라고.

 

경기도 안성에 내려 온 지 23년이 지나도록 심심할 사이가 없었다. 요즘은 '수목금일' 4일에 걸쳐 다도를 배우는 동호인들이 하정 선생의 집에 온다. 그럴 때면 다도 차포(받침 헝겊)를 손수 씻어서 다리미질을 하고 풀도 먹이는 등 다도 준비하느라 바쁘다.

 

자신의 모든 옷은 손수 만들어 입고, 집도 돌아보고, 다도를 위한 차를 직접 약간씩 재배하기도 하고, 차방엔 군불도 때고, 집 앞 바위 위에 야생새들을 위해 매일 모이를 준비해서 주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이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혼자 살아도 하루해가 늘 짧다"는 게 자타공인이다.

 

누구나 늙을진대 이렇듯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삶을 직접 개척하고 가꾸어 인생 후배들에게 뭔가를 늘 나눠줄 게 있다면 이보다 멋있는 삶이 또 있을까. 하정 선생에겐 바로 '다도'가 그의 알토란같은 밑천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다도에 대해서 문의하려면 하정 선생의 집(031-673-5808)이나, 휴대전화(010-6703-5808)로 하면 된다. 


태그:#다도, #하정다회, #하정, #김무경,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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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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