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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리며 2500Km의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테라시타씨가 지난 7일 담양 죽림정사를 향해 걷고 있다. 3월 26일 기념식에 맞춰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박두헌군과 테라시타씨, 윤영수 교수님
▲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리며 2500Km의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테라시타씨가 지난 7일 담양 죽림정사를 향해 걷고 있다. 3월 26일 기념식에 맞춰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박두헌군과 테라시타씨, 윤영수 교수님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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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 우리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금 1번 국도 위에는 안중근 의사의 평화사상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일본에서 부터 걷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일본인 테라시타 다케시(58)씨 인데요. 테라시타씨는 지난해 12월 25일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모셔져 있었던 일본의 다이린지 사찰을 출발해 한국과 일본을 잇는 2500Km의 도보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2월 24일부터는 부산, 진주, 광주를 거치며 한국에서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죠.

저는 테라시타씨가 광주에 도착했던 지난 5일 부터 약 100Km 구간을 함께 걸으면서 이번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요. 정읍을 벗어날 때까지 함께 걸었던 게 벌써 3일 전 일인데, 이제야 그 이야기를 전하게 됐습니다. 엄살이지만 도보 이후로 몸이 너무 피로해서 이야기를 정리할 엄두가 안 나더군요. 테라시타씨가 듣고 웃으시겠네요.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며 도보 순례 중인 테라시타 다케시 씨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며 도보 순례 중인 테라시타 다케시 씨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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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을 계획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집필했던 <동양평화론>에서 동양평화에 대해 고민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런 안중근 의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데 도움 될 만한 일을 찾고 있었죠.

그러던 중 안중근의사의 유묵이 보존되어 있었던 일본의 다이린지 사찰과 한국 안중근기념관 사이에 30년 동안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찰과 기념관을 걸어서 연결시켜보자는 의미로 도보를 계획하게 되었답니다."

- 그래도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추운 날씨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한 도보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따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전부터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1910년, 재판에서 항소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받아들여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처형을 당했죠. 저는 여기서 '처형을 행한 이들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것으로 처형에 대한 대가를 대신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 도보 루트는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도보 순례를 시작하기 전까지 생활협동조합에서 일을 해 일본 각 지역의 생산자 분들과 교류가 잦았는데요. 이번 도보 순례를 위해 퇴직을 3년 앞당겼기 때문에, 조기퇴직에 대한 보고와 지금까지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전화와 편지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직접 뵙고 인사를 나누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생산자 분들이 계시는 지역을 연결 해 일본에서의 루트를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icoop 생협과 '인도행(인생따라 도보 여행)' 분들의 도움을 받아 루트를 정했는데요. 임진왜란, 일본의 강제 병합 등 역사 속 사건들과 연결 되는 도시들을 방문 해 보고 싶어서 부산 진해 진주 등을 기준으로 700Km정도의 루트를 잡았어요. 또 광주를 도보 일정에 포함 했는데요. 광주에서 5.18 민중 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저는 28살이었는데,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음속으로 그분들을 응원하는 것 뿐이었어요. 민주화 투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예를 표하고 싶어 광주를 거쳐 가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루트를 잡은 건 남도지방 음식을 맛보기 위한 이유도 있었어요(웃음)."

테라시타씨는 한국에서 하루 평균 30Km를 걷고 있다고 한다. 담양에서 정읍까지 걸은 거리를 확인시켜 주는 테라시타씨. 맘보계 수치는 36.5Km를 나타내고 있다.
 테라시타씨는 한국에서 하루 평균 30Km를 걷고 있다고 한다. 담양에서 정읍까지 걸은 거리를 확인시켜 주는 테라시타씨. 맘보계 수치는 36.5Km를 나타내고 있다.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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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하시면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저는 지금 온 몸이 쑤시네요.
"처음 한 달 동안은 일본에서 가장 추운 지역을 또 가장 추운 계절에 걷다 보니 발에 잡힌 물집이 없어지질 않아 고생을 했어요. 또 일본에서는 거의 혼자 걸어서 몸도 고생이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 힘들었던 점들이 오히려 좋게 작용하더라고요. 남은 일정을 충분히 소화 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 한국에서는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같이 걸어 주시는 분도 많고요.
"네. 만약 한국에서의 도보 일정을 혼자 했더라면 아무것도 몰라서 꽤 어려웠을 거예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굉장히 즐겁고 감사해요."

- 지금 한국에서는 역사교육과 관련 해 많은 말들이 오가는데요. 저처럼 테라시타씨의 소식을 접한 분들은 아마 느끼는 점이 많을 거예요. 혹시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역사라는 것은 단순히 지나가버린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많은 힌트가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또 과거에 잘못이 있었다면 미래에는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요. 임진왜란이나 강제 병합과 같은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소홀하면 안 되겠죠. 그렇기에 역사교육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테라시타씨의 이번 도보 순례가 가지는 의의 같은 게 있을까요?
"역사적 관점에서 이번 도보 순례는 미래에 대한 준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과거 잘못을 반성을 하고 서로 간 우호를 위해 노력하는 거죠. 도보 순례의 모토를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으로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이번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은 반성과 사죄보다 높은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하나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안중근 의사가 원하는 것 아닐까요?"

광주 생협 관계자 분들과 함께 걷고 있는 테라시타씨. 테라시타씨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렇게 포즈를 취해 주셨다.
 광주 생협 관계자 분들과 함께 걷고 있는 테라시타씨. 테라시타씨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렇게 포즈를 취해 주셨다.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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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언급 했듯이, 테라시타씨의 한국 도보 일정에는 많은 분들이 동참하고 있는데요.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 테라시타씨의 소식을 접하고 오신 분들, 한국 icoop 생협의 각 지역 모임 분들이 하루정도를 함께 걸으면서 테라시타씨를 응원하고 있어요. 또 icoop 생협에서는 테라시타씨가 한국에서 도보 순례를 하는 동안 지역 생산자들과의 교류와 일정진행에 문제가 없도록 서포터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간디학교 10기 졸업생 박두헌(19) 군은 일본에서 약 100Km의 구간과 한국 전 구간을 테라시타씨와 걷고 있는데요. 진주 icoop 생협 이사장이신 어머니에게 테라시타씨의 소식을 알게 돼서 도보 순례를 함께 하게 됐다고 해요. 일본에서 도보 순례 중에 사정이 생겨서 일찍 한국에 돌아와서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배낭을 메고 진주 일대를 걸었다고 하더군요. 담양에 도착 한 날 저녁, 박두헌군과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박두헌군과의 인터뷰]

테라시타씨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평화의 뜻을 기리며 걷고 있는 박두헌군.
 테라시타씨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평화의 뜻을 기리며 걷고 있는 박두헌군.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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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테라시타씨와 함께 도보 순례를 할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
"나는 안중근 의사를 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도보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저씨의 생각에 공감 한다기보다, 우려나 의구심이 더 컸던 거 같아. 일본인이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걷는 다는 게 좀 이상하잖아.

그런데 안중근 의사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동양평화를 위협한다는 판단 하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했다는 걸 알게 됐고, 테라시타 아저씨 역시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는,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도보 순례를 하신다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되게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어. 그래서 같이 동참하기로 한 거야."

- 도보를 하는 동안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게 된 점들도 있을 것 같아
"사실 도보 전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 단순히 역사 교과서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었을 뿐. 그냥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내용이나 전개 과정, 의미 같은 것들은 몰랐지.

그래서 도보를 시작하기 전에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을 읽었어. 아무것도 모른 채로 걸을 순 없으니까. 자서전을 보면서 러일전쟁 당시 안중근 의사가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고 동양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을 지지했다는 것과, 이후 침략과 강제합병 등으로 일본이 동양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고 판단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할 계획을 세웠다는 전 후 사실을 알게 됐어. 안중근 의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반일감정이나 민족주의적인 개념으로 암살을 계획한 게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테라시타 아저씨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어. 자기 나라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몸을 깎아내리는 도보 순례를 하는 거니까. 무튼 테라시타 아저씨 덕분에 안중근 의사에 대해 공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 걷는 동안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혹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실 항상 안중근 의사의 평화사상을 생각하면서 걷는 건 아니야) 음,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어. 도로를 걷는 동안 로드킬 당한 동물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도보 순례의 가장 큰 목적은 평화잖아. 이제는 일류의 평화만이 아니라 항상 외면되어 왔던 자연과 지구안의 다른 생명체들, 도로에 깔아뭉개져 있는 쟤네들에 대한 평화도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1번 국도. 새 한마리가 도로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1번 국도. 새 한마리가 도로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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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박두헌군에게 테라시타씨의 도보 여행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며 그 긴 거리를 걸어오고 있는 일본인 테라시타씨가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중근 의사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더군요. 잠깐이나마 테라시타씨 일행과 함께 걸으며 동양평화의 실현을 통해 온 세상의 평화를 꿈꾸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로 안중근 의사의 순국이 100주년 맞이합니다. 저는 이제야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그의 일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박두헌군의 말처럼 안중근 의사는 '역사교과서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물' 이었고, 부끄럽지만 다른 역사 속 위인들과 사건들에 대한 기억도, 저에게는 교과서에 요약된 몇 줄의 이야기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단 한  두줄의 기억마저 없었더라면, 테라시타씨의 도보를 보며 느끼는 귀감 따윈 없었겠지요.

그런데 2011년 부터는 고등학교 모든 수업이 선택제로 바뀌면서, 1학년 필수 교과였던 국사수업도 듣고 싶은 사람만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선택 교과가 된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자율성이 존중 되는 듯 한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현재 입시교육의 틀 안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진짜 듣고 싶은 과목을 들으며 즐거워 할 지 의문이네요. 역사교과서를 구경도 못 해본 채 졸업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자신의 무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 또한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난 8일 정읍 시청 앞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며 찍은 사진. 테라시타씨와 박두헌 군은 14일 오전 공주를 출발, 천안 용인 등을 거쳐 24일 서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도착할 예정이다.
 지난 8일 정읍 시청 앞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며 찍은 사진. 테라시타씨와 박두헌 군은 14일 오전 공주를 출발, 천안 용인 등을 거쳐 24일 서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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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5일) 공주를 벗어날 테라시타씨 일행은 24일 서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도착, 같은 날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함께 한 후 26일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열흘 후면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도 끝이 나는데요. 남은 시간 동안, 테라시타 다케시씨의 소식이 부디 많은 이들의 얼굴을 붉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테라시타 다케시씨와의 인터뷰는 일본 도후쿠 복지대학 윤영수 교수님께서 통역 해 주셨습니다. 테라시타 다케시씨의 도보 이야기와 일정 등은 블로그 '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 (http://blog.daum.net/walkingforpeac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평화를 위한 도보 여행, #테라시타 다케시, #박두헌,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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