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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발령되던 날 화계사 일주문 앞 전경.
 대설주의보가 발령되던 날 화계사 일주문 앞 전경.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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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고민했습니다. 지난 9일 대설주의보가 발령되던 날 밤늦게까지 수경 스님이 저희에게 했던 말씀을 글로 풀어야 할지 말지. 그날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 "감기 옮긴다"면서 내치셨는데도 무턱대고 서울 강북구의 화계사를 찾아간 것은 왜 편안한 절방을 놔두고 또다시 길거리로 나서는지, 그 사연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터뷰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김포 용화사 지관 스님, 대원사 현장 스님, 그리고 5~6명의 신도들이 병문안을 오는 바람에 3시간여 동안 이런저런 얘기가 섞였지요. 그런데 전 그 대화 속에서 수경 스님이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여강선원(如江禪院)'으로 떠나는 진심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제가 화계사에 찾아갔던 것은 여강선원으로 떠나시기 전에 스님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올인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제가 원하는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스님께서는 자신을 향해서 비판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조계종단을 향해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내가 저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날 이야기를 한번 복기해봤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스님을 화장했어. 난 혼자 남아서 밤늦게까지 화장터를 지켰어. 그런데 배가 펑하고 터지면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이 산산이 흩어지더라고. 몸뚱이가 타는 냄새가 진동했어. 순간 저 불구덩이 속으로 내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까? 소름이 오싹 돋더라고. 8년 더 지나면 내 나이 칠십이야. 죽음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데 난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살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부처님의 제자답지 못한 삶이야."

순간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북한산 관통 터널 반대에서부터 새만금 삼보일배, 그리고 한반도대운하 사업 등에 맞서 '불살생'(살생을 하지 말라)의 계율을 지키기 위해 오체투지 등 길거리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은 스님인데 잘못 살아왔다니?

"지금 여주의 4대강 찬성 여론은 70~80%야. 지역에다 돈을 마구 뿌리니까 사람들의 눈이 뒤집힌 거지. 찬성하는 사람들이 밤중에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가서 협박한다는 얘기도 들었어. 대통령만 탓할 게 아니야.

결국 잘못 살아온 우리를 반성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거지. 여강선원은 강처럼 사는 집이란 뜻이야. 자연 순리대로 살자는 것이지. 난 그렇게 못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순리대로 살겠다는 것이야."

-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에 올인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명박 대통령만이 문제인가? 국민들이 미치고 있어. 4대강 사업은 국민을 완전히 속인 것이고 '돈'에 미치게 만드는 사업이지. 이명박 대통령은 '역행보살'이야."

대접받는 중노릇하면 인생 끝장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손님맞이를 위해 잠시 일어나 커피를 타주고 있는 수경 스님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손님맞이를 위해 잠시 일어나 커피를 타주고 있는 수경 스님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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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다시 자신의 내면을 응시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께서 이런 말을 했어. '대접받는 중노릇하면 인생 끝장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내가 진짜 중인지 착각하기도 해. 생명의 강 순례하고 오체투지하면서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은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야. 내 얼굴이 여기저기 나가게 되면 내가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구나하는 착각이 든다니까. 그래서 신도들에게 절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현장 스님께서 "수경 스님은 절 안에 있을 때는 시무룩한데, 바깥에 나가면 눈이 번뜩인다고 사람들이 말하더군요"라고 우스개를 하자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4년 동안 화계사에 있는데 난 법문 한번 못했어. 사실 난 부처님의 법을 몰라. 아는 게 없는데 신도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겠어. 그러니 계속 목탁만 치고 있는 거야. 난 사실 길바닥에서 자는 게 편해. 양심적이어서 편한 거지. 여강선원으로 나가는 것도 내가 불편해서 그런 것이야."

스님께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조계종단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퍼부었습니다.

"노승들이 젊은 중들을 보고 이런 말을 많이 했지. '저 자식 산적 놈의 새끼!' 맞는 말이야. 중은 산에 사는 도둑놈이야. 내가 봤을 때 산적이 아닌 중이 몇 명이나 될까? 다 직업인으로 전락했어. 하지만 종교인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어.

4대강이 중요한 건 아냐. 4대강은 일종의 '야단법석'이지. 마당이야. 그런데 몇백 만 명이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어. 불살생이라는 불교사상에 입각해서 4대강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욕망으로 미쳐가는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삶의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종교가 가야 할 길이야."

현 정권을 향해 할 말을 해왔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에 대한 우려의 말도 했습니다. 종단 차원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하려는 움직임의 배경(결국 조계종단은 지난 11일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결정했다)에는 '정치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고, 외풍을 막아내야 할 종단이 되레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는 쓴소리였습니다.

"불교는 청와대와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자신이 지닌 좋은 문화를 싸구려 상품화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지. 그런데 종교로서 살아남으려면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해."

"우리는 무식한 오체투지 순례단"

무려 3시간여 동안 대화를 마치고 자정이 되어서 방문을 나서는데, 신발 위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더군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 눈 속에 파묻힌 화계사. 일주문 앞 가로등 불빛으로 희미하게 그 자태를 드러낸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아스팔트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 오체투지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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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가 백색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지난 2008년 가을 논산에서의 기억이 흑백사진처럼 어렴풋하게 떠올랐습니다. 오체투지순례단을 실은 버스 안에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수경 스님은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와 머리를 맞댄 채 함께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이렇게 합창했습니다.

"우리는
무식한
오체투지 순례단"

버스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었지요. 아니 모두가 즐거워 했습니다. 천릿길을 자벌레처럼 기고 있는 성직자들의 눈물겨운 팬 서비스. 땡볕 아스팔트 위에 흘린 땀방울들이 그 누구의 등에 칼을 꽂거나 상대방을 비토하는 살생의 길이 아니라 뭇 생명을 살리려는 상생의 길이자 이를 통해 자신을 닦는 구도자의 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여주 신륵사 입구에 세워진 '여강선원'
 여주 신륵사 입구에 세워진 '여강선원'
ⓒ 김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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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 여주의 여강에 세워지는 '여강선원'. 두 개의 컨테이너 박스에 세워진 사원입니다. 사실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굴착기 한 대가 손을 한번 휘저으면 순식간에 내동댕이쳐질 정도로 보잘 것이 없는 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10여 평 남짓한 공간에서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낍니다. 강가에서 물과 함께 노니는 뭇 생명들이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신명나는 한판을 벌일겁니다. 우리의 소통은 해방입니다. 그리하여 여강선원은 4대강 사업을 막으려는 싸움터가 아니라 축제의 장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열리는 날, 여강선원이 개원식을 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법정 스님은 평소에도 한반도대운하 사업에 대해 서슬 퍼런 죽비소리를 날려왔습니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우리 내면은 그 때보다 훨씬 빈곤해졌다"는 법정 스님의 육성이 여강선원으로 떠나는 수경 스님의 내면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오체투지 순례길에 오른 문규현 전종훈 신부와 수경 스님이 순례단과 함께 지난 2008년 10월 17일  충남 논산을  지나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길에 오른 문규현 전종훈 신부와 수경 스님이 순례단과 함께 지난 2008년 10월 17일 충남 논산을 지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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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법 절차도, 국민 여론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를 상대로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참회와 기도와 통곡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법회는 통곡입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잃어버린 죽음의 시대에 바치는 조사입니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양심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2월 23일 '생명의 강을 위한 연합 방생법회 및 수륙재'에서 수경 스님이 발표한 법문 중 발췌.)


태그:#여강선원, #수경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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