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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이 3월 1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적어도 많은 한국인들에겐 즐거운 시간이었다. 혹자는 김연아가 보여준 환상적인 연기에 찡했다. 경기를 즐기는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보여준 빙상 선수들의 열정에 공감했다. 동계올림픽이라는 잔치를 끝마치자마자 밴쿠버 시민들은 또 다른 잔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 잔치는 기간도 훨씬 길다. 바로 '빚잔치'다.

언제부턴가 엑스포나 아시안게임이 마치 신성장동력이나 되는 듯 난리법석을 떤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4수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죄를 짓고 벌을 받고 있는 재벌까지 사면해줄 정도다. 하지만 제발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25일 보도한 밴쿠버 르포 기사를 발화점 삼아 대규모 국제행사가 얼마나 뒤끝이 안 좋은지 생각해보자.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밴쿠버시는 올림픽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을 위한 교육, 건강보험, 예술지원 예산까지 삭감했다. 치안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도 처음엔 1억 6500만 달러를 예상했지만 실제 집행액은 6배나 되는 10억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번 대회 주요 스폰서인 노르텔 네트워크, 제너럴 모터스 등이 파산지경에 처했다. 알파인 스키경기가 열리는 휘슬러 블랙콤 리조트는 경기가 끝나는 대로 경매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올림픽 선수촌과 비슷한 개념인 '올림픽 빌리지' 문제다. 올림픽에 앞서 부동산 개발회사들은 그리거 로버트슨 시장에게 '시유지를 제공해 주면 이곳에 선수촌을 만든 뒤 올림픽 이후 호화 아파트로 개조해 분양하자'고 제안했다. 사업이 잘될 경우 밴쿠버는 화려하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

금융위기 이후 건설비용이 급증하면서 '장밋빛'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당선된 로버트슨 시장은 올림픽 빌리지 완성을 위해 4억 3400만 달러나 되는 특별대출을 받아야 했다. 결국 시 당국이 책임져야 하는 개발비용은 10억 달러에 이르게 됐다. 이 돈은 고스란히 시민들이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게 된다. <뉴욕 타임스>는 로버트슨 시장조차 동계올림픽 이후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지 못할 경우 수억 달러나 되는 빚이 남게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과연 대규모 국제행사는 넝쿨째 굴러오는 호박일까? 정희준 동아대 체육학부 교수에게 물어봤다. 올림픽을 예로 들면, 적자냐 흑자냐 따지는 건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운영수입만 놓고 보면 흑자 아닌 올림픽이 없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개최한 자치단체의 전체 재정을 고려해서 놓고 보면 모조리 적자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올림픽이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우리는 우석훈 박사가 쓴 '국제행사, 장밋빛 지역경제 보장 아니다'(신문과 방송 2007년 6월호)라는 글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주요 대회를 유치하면 그 순간부터 중앙정부 지원이 일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지역에 발생할 다른 종류의 지원이 줄게 되고, 해당 지역에서는 문화나 복지 혹은 여성지원 프로그램 같은 곳에 들어갈 돈을 빼서 건설계정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특정 지역에만 너무 많은 예산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다른 지역에는 다른 종류의 지원을 늘리게 된다. 결국 중앙에서 오는 돈은 비슷해진다. … 한 건만 놓고 보면 중앙정부 예산을 따온 것 같이 보이겠지만 10년 정도 긴 눈으로 평균적 시각을 놓고 보면 결국 그게 그거인 셈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3수를 밑천 삼아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1998년 이후 10년 넘게 도지사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솔직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할까 더 겁난다. 강원도에 사는 진짜 '서민'에게 동계올림픽이 별 도움 안 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알펜시아'가 '올림픽 빌리지'에 자꾸 겹쳐 보이는 건 그냥 기우일 뿐일까?

올해 본예산이 7600억 원이라는 여수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18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2년 세계박람회를 준비하는 여수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박람회장에 이르는 도로를 현재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소요사업비 388억 원 가운데 230억 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미 "2006년과 지난해에도 405억 원을 지방채 발행을 통해 마련, 지방채 원리금이 1734억 원에 달하고 있다"는 여수시는 "추후 발행분을 합치면 2000억 원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인천도 요즘 재정상황을 보면 미안한 말이지만 "망하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인천시는 지난해 초에 이미 "올해 말 인천시와 인천도시개발공사의 예상 부채액이 10조원에 근접해 인천 시민들이 1인당 358만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는 우려가 나왔다(한겨레, <인천시, 5년 새 채무 2.6배 '껑충'> 2009.2.27). 아마 인천시는 2014년에 성화가 타오르기 전부터 빚잔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강국진씨는 현재 서울신문 기자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밴쿠버 동계올림픽, #평창, #국제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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