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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포근해 봄이 오는가 싶더니, 3월 들어 다시 겨울 옷을 꺼내 입습니다. 베란다 창밖으로 몸을 움츠리고 걸어가는 학생들을 본 아이가 자기도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조릅니다. 다섯살 아이의 눈에는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마냥 부러운가 봅니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아이를 달랠 겸, 동생이 낮잠 자는 틈을 타서 몇 달 동안 미뤄둔 퍼즐 만들기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양장본의 표지를 보호하기 위해 덧씌우는 그림책 커버는 퍼즐 만들기의 주재료입니다. 그림책을 감싸고 있는 커버는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닐 뿐더러, 자주 읽어주는 책들은 덧씌운 커버가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림책의 표지와 똑같은 그림이 코팅돼 있어 버리기 아까운데 퍼즐을 만들어 주면 아이가 좋아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 세 권, 엄마가 좋아하는 책 세 권. 모두 여섯 권입니다. 알록달록하고 밝은 색은 아이가 고른 것이고, 검은 색 표지 두 권과 '수궁가'는 엄마가 고른 것입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나 서점에서 살 때는 엄마가 고르는 비중이 더 크지만, 놀이감을 만들 때 만큼은 공평하게 고릅니다.   

 

종이 상자는 마주 보고 있는 면을 한 세트로 각각 2장씩 잘라 놓습니다. 사진 속 상자 하나를 해체하니 여섯 개 세트가 준비됩니다. 책 판본에 적당하게 어울리는 크기의 종이판으로 구분해 놓습니다. 박스터 상자는 복막투석 약을 담아보내기에 안전하도록 꽤 두꺼운 편입니다. 상자가 두꺼우면 칼로 자를 때 손끝에 힘을 세게 줘야 해서 힘듭니다. 퍼즐 만들기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배송하는 얇은 상자가 적당합니다.   

 

마주보는 종이판 한 장에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 잘라낸 그림책 커버를 붙이고('가'), 다른 한 장에는 흰 종이를 붙입니다('나'). '가'에 사방 1.5센티미터씩 자로 재는데, 지울 수 있도록 연필로 선을 긋습니다. 1.5센티미터 안쪽에 그은 선을 따라 퍼즐 조각을 만들 부분을 칼로 도려냅니다. 남은 바깥 부분은 퍼즐 틀입니다. '나'에 퍼즐 틀을 딱풀로 붙입니다.  

 

두꺼운 상자를 잘라내거나 딱풀로 그림책 커버를 붙일 때까지 아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루할 텐데도 용케 곁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퍼즐 만들기의 하이라이트, 조각을 만들 때 드디어 아이가 활약합니다. 커버를 붙인 뒷면에 크레파스로 원하는 모양을 그리게 합니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조각조각 잘라낼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립니다. 아이 그림에 손 대지 않는 걸 철칙으로 여기지만, 그려 놓은 그대로 자르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자르면 아이가 더 실망할까봐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달라고 종용합니다. 너무 많은 그림을 그려서 정작 뭘 그렸는지 알아보기 힘들어질 때쯤 아이 손을 잡고 자를 모양을 매직이나 검정색 크레파스로 덧그립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열 조각 이상 되는 퍼즐은 한 번에 맞추기 힘들어 하던 아기였는데 해가 바뀌니 퍼즐 실력이 부쩍 늘었습니다. 열 여섯 조각의 퍼즐을 금세 맞춥니다. 아마도 익숙하게 보아온 책 표지 그림이라 그랬겠지만, 엄마의 도움 없이 기분 좋게 단번에 맞췄습니다.  

 

동생이 낮잠 자는 틈에 저 혼자 엄마를 독차지하고 퍼즐을 만든 게 마음에 걸렸는지, 동생 것도 하나 만들어주자고 인심을 씁니다. 21개월 된 동생이 좋아하는 책 커버를 고릅니다. 아기용이라 모서리를 둥글게 자른 여섯 조각짜리 누나표 퍼즐이 완성됐습니다. 첫 퍼즐치고는 꽤 어려워 보입니다만, 입으로 가져가 맛부터 보고 누나와 함께 하나 둘 끼워 맞추겠지요.

 

꽃샘추위 때문에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아이와 함께 세상에 하나 뿐인 퍼즐을 만들어 보세요. 사 온 것보다 더 자주 가지고 놀고, 더 아끼는 장난감입니다.


태그:#그림책, #퍼즐, #놀이, #꽃샘추위, #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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