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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했지
비탈에 선 엄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지
아기나무 아버지 나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 나무와 동무 나무들과 
아름다운 숲을 이루며 살고 싶다했지.
바닷가 그 오두막집 맏며느리로 시집간 
막내딸 오손도순 사는 것 내려다보며, 
벚꽃 같이 빨리 시드는 나무도 아니고
진달래처럼 한을 꽃피우는 나무도 아닌
가시 많아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엄나무 울타리가 되어
숲도 지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오목눈이의 새 둥지도 되어주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청솔모 열두마리 쯤
우리 남매들처럼 키우며 살고 싶다고 했지.
 
<어머니 나무 그늘 아래서> - 송유미
 

 

"난 니 아부지 사진만 보고 결혼 했다..."

 

지금은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늘 "난 니 아부지 사진만 보고 결혼을 했었다..."라고 자주 자랑처럼 말씀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처음 듣는 얘기처럼 토끼눈을 해가지고, "어머니, 그게 정말이에요 ? 정말 사진만 보고 아빠와 결혼하셨어요?"하고 항상 처음 듣는 것처럼 되묻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털어놓으면,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씀에 대해 그닥 깊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것같다.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백살 가까이 되셨을 것이다. 어머니께선 6.25 전쟁 때 아들 셋이나 잃고, 나와 동생은 마흔이 훨씬 넘어서 낳으셨다. 그래서 난 어릴 적 친구들에게 놀림 아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야, 니네 엄마는 진짜 할머니더라... 우리 엄마는 얼마나 젊은데..." 혹은 "니네 엄마 진짜 엄마 맞나?" 등등. 거북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옛날분이라서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짧은 파마머리하고 계시다가도, 이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머리 다시 자라면 비녀머리 하고 다니셨다.        

 

사람의 의복과 머리, 몸가짐에서 그 사람의 철학, 정신세계를 짐작할 수 있듯이 돌아가신 어머니는 옛날 양반 가문의 규수로 성장하셔서, 상당히 보수적이셨다. 그래서일까. 남아선호사상이 짙어서, 아들인 오빠를 표나게 편애하셨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 딸 자식은 다 필요 없어... 시집 가면 남인데 뭐..."하고 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히셨으나, 한편 내가 자라는 만큼 당신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여, 혹시나 나와 개구장이 동생의 짝을 맞추어주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뜨면 어쩌나 늘 걱정이셨던 것 같다.

 

 

노모의 듣기 싫었던 잔소리가...내게 큰 정신의 힘이 되다... 

 

그래서일까. 갓 초경을 치른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자의 행복은 결혼이란다. 얘야, 결혼이란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게 아니라, 가정과 가정의 결합이란다. 부부란 말이다. 전생에 원수가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사랑으로만 살 수 있는 사이가 아니란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믿어주는 믿음이지... 이 엄마를 봐라. 사진만 보고 니 아부지와 결혼을 했지만, 서로 양보하며 부족한 부분 채워주고 맞추면서 살다보니 무탈한 거란다..." 

 

어머니는 어린 내가 알아듣기 힘든 얘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엄마, 난 엄마와 평생 살 거예요. 시집 같은 거 안가요"라고 정색하고 말하면, 어머니 웃으시면 "그래. 그래... 니 마음은 고맙구나... 그래도 너도 크면 시집은 가야지. 여자는 시집을 가야 사람이 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선 시집살이는 하지 않으셨지만, 6. 25 피난 시절에 가계를 꾸려 나가느라, 고생하셨다. 우리 남매들을 낳고 산후조리 없이 바로 장사나가시고 해서인지, 연로해지시면서 자주 감기몸살로 앓아 누우셨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강하셨던 노모….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서, 곧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남겨두고 가야 할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셨다.

 

어머니께선 정말 천수를 다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자식들에게 병수발 한 번 들지 못하게 하시곤, 시름시름 감기를 앓으시더니 그렇게 가시고 만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처럼 나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눈물 흘렸다. 그리고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항상 걱정하시던 노모의 잔소리 같이 듣기 싫었던 말씀들이, 큰 정신의 힘이 되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사진만 보고 결혼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금실은 너무 좋았다. 천생연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이 시장을 봐오고 설거지를 하셨다. 그 당시엔 맞벌이 부부가 거의 없었는데, 아버지께선 어머니를 이해하고 도와주셨다. 생각하면 어머니께선 남다른 남아 선호 사상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 시대의 주부들에 비해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신 것 같다. 한 번도 두 분이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제야 이해 할 수 있는... '기러기 엄마'

 

아버지가 외지에 근무하실 때도 큰 오빠와 나는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젖먹이 동생만 데리고 아버지가 계시는 외지에서 함께 맞벌이하셨다. 이렇게 어머니 항상 남편을 소중히 생각하셨다. 어릴 적 나는 이런 어머니 이해하지 못하고 많이 원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께서 자식보다 남편을 우선으로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점점 '기러기 아빠'가 많아지고 가족 생이별을 하는 시대….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부는 어떤 환경에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 주장이 맞는 것같다. 그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시키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정말 부모님의 사랑은, 어느 시인의 시처럼 '그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왜 이제사 알게 된 것일까. 곧 돌아오는 어머니 제삿날엔 어머니께서 살아생전 좋아하셨던 영광 굴비 한마리 사서 노릇노릇 구워 드려야겠다. 어린 내게 굴비 살점 발라내서 먹여주던 모습 눈에 선하다….

 

"어머니, 정말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태그:#사랑, #엄나무, #가족, #어머니, #로맨스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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