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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고로쇠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설치를 완료한 모습
▲ 벌목 후 고로쇠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설치를 완료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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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헌 고로쇠수액 채취작업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는 일의 성패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한자성어에는 최선을 다하되 자연의 섭리에 부합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흐르는 물이 고이는 경우를 모르고 진인사(盡人事)하고 대천명(待天命)해봐야 백날 헛고생이다.

시랑헌에는 20년 이상 된 고로쇠 나무가 300여 그루 자라고 있다. 수액을 채취하여 년 천 만원 이상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임산물 작목임에도 인건비와 재료비도 건지지 못했던 작년과 올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것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실천방법이다. 도리를 거스르는 일은 논리적으로 시비거리가 못되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시행착오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랑헌 고로쇠수액 채취는 올해로 3년째 지속되는 일이다. 첫해는 문수리 이장이었던 장진옥씨를 초청하여 3대째 가업으로 대를 물려오는 고로쇠수액 채취방법을 전수 받았다. 시랑헌 고로쇠 밭의 일부분에 설치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양을 채취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장진옥씨에게 배운 대로 집사람과 둘이서 설치했으나 집안 일가친척들도 나눠 마시지 못했다. 고로쇠수액을 마시겠다고 시랑헌을 방문한 지인들에게 다른 농장에서 구입하여 대접하여야 했던 씁쓸한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고로쇠수액을 채취하지 못한 이유로 첫째, 겨울 가뭄과 둘째, 너무 좁은 고로쇠 나무 사이 간격이고 셋째가 나무들의 휴식년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단정했다. 실제적인 원인은 규명하려고도 하지않았다.

올해 고로쇠수액 채취작업 시기가 되자 나와 집사람은 작년의 시행착오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고로쇠 300그루 중 100그루를 벌목하고 작년에 설치했던 50여 그루는 올해 수액 채취를 하지 않기로 했다.

고로쇠나무 간격이 너무 밀집되어 100여 그루 벌목한 나무들
▲ 벌목한 고로쇠나무 고로쇠나무 간격이 너무 밀집되어 100여 그루 벌목한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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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그루 벌목한 나무를 옮길 수 있는 크기로 절단하여 도로까지 운반하는 작업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일을 거들 수 있는 마을 젊은이 2명을 3일간 고용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사안을 감안하여 3일 휴가와 2일 주말을 합해 5일 일정으로 시랑헌에 도착하였다.

예상 채취량을 헤아리면서 부푼 마음으로 인건비와 재료비를 합하여 100여 만원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출하였고 춥고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산능선을 오르내리는 일도 힘든 줄 몰랐다. 5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하루 정도 머물면서 결과를 지켜봐야 했는데 일정에 쫒겨 서둘러 일을 끝내고 대전으로 올라갔다.

다음 주말에 최소한 10말 정도는 받아졌을 것으로 기대하고 시랑헌에 들어섰다. 실망스럽게도 고로쇠수액은 집수통의 바닥을 덮는 정도였다. 작년에 실패한 내 실력을 못 믿겠으니 다시 전문가를 초청하자는 집사람의 제의가 옳았던 것 같아 목이 움츠러든다.

시랑헌 수액 채취 시스템은 나무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이 지선을 타고 흐르다가 한 개의 간선으로 흘러 들어 시랑헌에 있는 집수통으로 모인다. 수액 채취 자동화에 따른 편리함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재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며 특히 간선이 막히면 수액을 한 방울도 채취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고로쇠수액을 한 곳으로 모아 채취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한 곳으로 모이도록 하는 배선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 간선과 지선 교차점 고로쇠수액을 한 곳으로 모아 채취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한 곳으로 모이도록 하는 배선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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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복을 갈아입고 바로 고로쇠수액 채취 현장으로 올라갔다. 빠진 곳 없이 제대로 연결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선들이 간선과 만나는 도로변에 이르자 수액이 흐르는 간선의 경사도가 너무 적어 기온이 급격히 영하로 떨어지는 저녁에는 느리게 흐르는 고로쇠수액이 얼어붙기 시작하고 한번 얼어붙기 시작하면 다음 도착한 수액이 그 위에 겹쳐 얼어붙어 결국 간선이 막힌 것이다.   

도로  경사는 완만하므로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배선은 수액이 급히 흐르기 위한 충분한 경사도를 얻을 수 없다. 결국 포크레인으로 도로를 파고 가로지르는 관을 묻었다. 관 속으로 간선을 통과시켜 나무에서 생산된 수액은 지체없이 시랑헌 집수통으로 흘러가도록 간선을 재배치하였다. 시랑헌으로 돌아오니 집수통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수액을 한 곳에서 채취하기 위한  시랑헌 안의 집수통
▲ 고로쇠수액 집수통 수액을 한 곳에서 채취하기 위한 시랑헌 안의 집수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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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수액과 약리작용

1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약 60여일 동안 채취하는 고로쇠수액에는 필수 미네랄인 칼슘, 칼륨, 망간, 마그네슘, 철, 황산, 염소와 당분을 포함한 영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특히 칼슘과 마그네슘은 일반 식수에 비해 40배 이상 들어있어 인체에 매우 유익한 음용수이다.

고로쇠라는 이름의 어원은 뼈에 이롭다는 한자어 골리수(骨利樹)이다.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으며 많이 마실수록 오히려 맛이 당기는 특성이 있다. 매년 이 맘 때면 밤을 지새며 고로쇠수액을 마셔 몸 속의 묵은 찌꺼기를 배출하고 몸의 활력을 찾고자 가족단위나 친구들끼리 산지를 찾는 경우가 많다. 색은 거의 무색투명하며 약간 단맛이 있어 마시기 좋다. 식수 오염 문제가 대두 되면서 대체 음용수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로쇠수액은 나무줄기 속 압력변화에 때문에 만들어진다. 즉, 밤중에 기온이 내려가면 줄기 안쪽이 수축하면서 마이너스 압력이 생기고 이 압력은 뿌리에서 수분은 빨라 올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줄기로 흡수된 수분은 낮에 햇볕을 받아 기온이 올라가면 수분과 공기가 팽창하여 플러스 압력이 생겨 밖으로 수액을 배출하려는 힘이 생긴다. 이 때 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수액이 흘러 나온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고 흐린 날에는 나무 줄기 속의 밤과 낮 압력차이가 없어 수액이 나오지 않는다. 실재 채취기간은 20일 정도이다. 이른 봄 경칩 전 후 10일 동안에 채취한 것이 특히 약효가 좋은 모양이다. 한방에서는 고로쇠수액을 '풍당'으로 부르며 위장병, 신경통, 허약체질, 당뇨병, 치질, 피부병, 수술후유증, 비뇨기과 질환 등 광범위한 병을 체질개선을 통해 다스리는 약제로 사용한다.

고로쇠수액 한 방울의 의미

이틀간 추가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수액을 받아 20리터 들이 3통을 채웠다. 우선 4월에 아들이 장가들 사돈댁과 딸의 시댁으로 보낼 량은 확보되었다. 다음 주 설 명절까지 최소한 10말은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집수통이 넘칠 것이니 도중에 한번 1말들이 통으로 옮겨 달라고 이웃인 박씨 아저씨께 부탁하고 시랑헌 열쇠를 넘겨드렸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느낌이다. 시련은 어떤 면에서 삶의 의욕이고 원동력이기도 하다. 해질녘 시랑헌 앞에 펼쳐지는 운무를 바라보며 감사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시랑헌을 떠나왔다.

시랑헌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봉들의 운무는 언제 보아도 느낌이 각별한 풍광이다.
▲ 시랑헌 운무 시랑헌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봉들의 운무는 언제 보아도 느낌이 각별한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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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다음날 10말 정도 고로쇠수액을 예상으로 시랑헌으로 내려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빈통이었다. 통이 넘쳐 1말들이 작은 통에 받아 놓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럴 수가?
분명히 고로쇠수액은 잘 내려왔고 작업을 하면서도 2말이 넘는 수액을 받아가지 않았던가?
멧돼지…

급히 확인 길에 나섰다. 시랑헌 바로 위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간선과 원래 간선이 만나는 지점에 애들 팔뚝만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간선을 팽팽하도록 당겨 맺지만 나무 사이 거리가 너무 멀어 시간이 지나면서 간선 줄이 느슨해지면져 완만한 곡선이 되었다.

주변보다 낮은 지점에는 수액이 고이기 마련이고 고인 물이 얼면서 간선이 터졌다. 터진 간선 사이로 흘러나온 고로쇠수액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었다. 결국 한 방울도 시랑헌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다시 선로를 변경하여 설치했더니 수액이 녹으면서 집수통으로 한 방울씩 떨어진다. 영암 손위 처남댁에서 모시는 장인어른 제사에 갈 때 가지고 가려던 고로쇠수액은 이미 땅속으로 다시 흘러가 버렸다. 출발할 때까지 집수통에 모아진 고로쇠수액은 패트병으로 2/3정도 였다.

작년에 고로쇠수액을 사서 지인들을 대접했던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다. 광주에서 손아래 동서가 영암까지 같이 가려고 이미 30여 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 고로쇠수액을 사러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다. 패트병 2/3가 올해 시랑헌 고로쇠수액 생산량이 되었다.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고로쇠나무 200그루를 엮어 일정한 경사를 유지시키면서 시랑헌까지 끌고오는 작업자체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장진옥 이장의 3대 째 이어온 고로쇠수액 채취 비법은, 이론을 익히고 2년 간 실습단계를 거쳤지만 아직도 소화하지 못했다. 만족할 완성단계까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올해 고로쇠 채취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년도 있다. 실패를 인정하고 시정하면서 앞으로 나갈 뿐이다. 200말 생산이 목표다.


태그:#시랑헌, #고로쇠, #산촌생활, #귀농,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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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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