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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대화와 협력 앞장선 고 김수환 추기경


지난해 2월 16일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김 추기경을 기리기 위해 16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추모미사가 집전되었고 마포구 합정동 천주교 성지에서는 생전의 유품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21일에는 김 추기경이 안장된 경기 용인시 성직자 묘역에서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용인성직자 묘역에는 지난 1년 동안 27만여 명의 추모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다음달 28일까지 공식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추모 미술전, 음악회 등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선종 1년이 지났음에도 김 추기경의 추모열기가 높은 것은 일생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살다간 참 종교인에 대한 그리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양심과 도덕, 정신적 보루가 되어야 할 종교마저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김 추기경의 행동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추기경이라는 천주교 최고위직에서 적당히 권력과 타협하고 가진 사람들과 어울렸다면 그의 삶은 매우 편안하고 안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구주였던 예수의 삶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독재권력과 마찰을 빚으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여린 마음에 권력과 맞서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애통해하면서 그의 삶이 그나마 편안해진 것은 하늘나라로 갔을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 평화방송·평화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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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었던 김 추기경은 선종 이후에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등불이 되고 있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은 국내 장기기증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7일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는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18만5046명으로 2008년(7만4841명)보다 2.4배나 늘었으며 이에 따라 장기이식 수술도 2000년 1306건에서, 2005년 2086건, 2009년 3051건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남에게 밥이 되라'고 한 김 추기경의 나눔 정신이 우리사회를 크게 움직인 것이다.

김 추기경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가 생전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에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 요한 23세의 주도하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로마 가톨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갈라선 개신교는 물론 불교, 이슬람교 등 타종교에 대해서도 구원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구원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적 개념이기는 하지만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었다.

김 추기경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에서 "자비란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봅니다"라고 했으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 선생 묘소를 참배하면서 무릎을 꿇고 술을 따라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훌륭하게 살다 가신 분에게 존경의 예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분의 종교가 유교건 불교건, 참배를 유교식으로 하건 불교식으로 하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로 답했다.

단군상 훼손같은 종교간 갈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종교인들은 서로 만나 대화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사소한 것들에 얽매여 대화나 일치에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점이다. 때론 너무 옹졸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대화는 고사하고 타 종교를 비방하고, 심지어 교단 내부에서 심각한 다툼이 벌어져 거꾸로 사회에서 종교를 염려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단군상이나 성모상 훼손 사건만 해도 그렇다. 자기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한 법이다. 우상숭배 운운하며 특정 성화나 조형물을 훼손해 종교 간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성화나 조형물은 숭배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점이다. 상징물을 대상과 동일시하는 것은 숭배지만, 상징물을 통해 그 대상을 기억하고 표양을 본받기 위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예의다. 종교 상징물은 인간의 표현수단으로는 형언할 길이 없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근원적 갈망의 발로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불교 비하 설교로 물의 빚는 김성광 목사

이렇듯 성인과 같은 삶을 살다간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열기가 높아가는 시점에 한편에서는 종교인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인물이 연이어 타종교를 비하하는 막장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는 12일 '너는 행복자로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강남교회는 얼음 깨는 배다. 공산당도 깨부수고, 부정부패도 깨부수고, 미신우상도 깨부수고, 불교도 깨부수겠다"고 선언하면서 타종교와 전통신앙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중에서 불교에 대해서는 거의 편집광 수준으로 공격해 불교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는 "절간에도 성경 보내기 운동을 해야겠다. 절간에 앉아서 목탁을 왜 두들기느냐 했더니 졸릴까봐 두들긴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뒤 "성경 읽다가 불경을 읽으면 심심해서 못 읽는다. 성경은 드라마틱한데 도대체 불경엔 읽을 게 없다. 스님들도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신학교 들어가서 목사가 된다. 그러면 절간이 변해서 기도원이 되고, 극장이 변해서 교회가 된다"며 불교 수행과 불경을 싸잡아 매도했다.

김 목사의 불교비하 발언은 역사(?)가 깊다. 2006년 2월 강남교회가 운영하는 경기도 가평군 강남 금식기도원에서 그는 "불교는 불행하고, 유교는 유감스럽고, 이슬람교는 이상하고, 무당은 무식하지만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라고 말하면서 석가모니에 대해서는 "자기 혼자 깨닫고 득도하겠다고 처자 버리고 나온 남자"라며 "불교를 믿는 가정에는 행복이 없다. 가정이 깨지는 것이다. 불교 교리를 봐라. 불교는 불행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타종교에 대한 공격과 함께 여성을 비하하면서 김 목사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여성정치인을 매장하려 하고 있다. 그는 12일 설교에서 세종시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남자들이 '싸가지 없다'고 한다", "결혼도 안 해 봤으면서 대통령에게 대든다"고 비난했다. 김 목사는 이어 "하긴 세상에 뭐 결혼해서 남편을 섬겨봐야 남편한테 항복도 하고 얻어터지기도 하고 도움도 받는다"면서 "결혼도 안 해봤으니까 그냥 싸우겠다고, 세상에 그러니까 나라가 혼란해지는 거야"라며 비난수위를 높였다.

김성광 목사의 사례는 한줌도 안 되는 종교적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람과 세상을 유린하고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일부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류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 신자들을 볼모로 삼아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불교타도'를 외치고 자신과 같은 종교인을 자질과 관계없이 최고 권력자로 내세우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선거운동을 하기까지 한다. 종교가 가장 타락했던 중세시대의 모습이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김 추기경은 추기경이라는 높은 지위에도 지극히 겸손하게 보통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독재권력에 맞서면서 세상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자신의 말처럼 '남에게 밥'이 되어준 것이다. 김 추기경의 추모기간에 마음 한쪽에는 따뜻함이 밀려오고 한쪽에는 씁쓸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은 김수환과 김성광이라는 두 종교인을 통해 한국종교의 가장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김 추기경의 추모기간만이라도 이웃 종교 간에 서로를 껴안고 격려하는 말들이 오고가기를 기대해본다.


태그:#김수환,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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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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