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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고, 천천히 먹으며, 느리게 살아가는 느림의 공간

 

 

 

다리에서 오후 2시 40분, 35위안을 주고 리장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버스가 리장에 가까이 갈수록 산과 계곡이 깊어진다. 계단식 논과 밭이 늘어선 산비탈을 버스는 느리게 달려갔다. 버스에는 푸른 색조의 저고리에 붉은 조끼를 입고 알록달록한 모자를 쓴 젊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아주 순박해 보이는 이들은 버스가 출발하여 다리 시내를 벗어나자 노래를 불렀다. 아가씨들은 리장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리장에 살고 있는 나시족들이었다.

 

오후 5시 40분 리장에 도착하여 2번 버스를 타려고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미니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엉뚱한 거리에 세워놓고 승객을 내리게 했기 때문이다. 2번 버스는 리장 고성으로 가는 우리나라 마을버스와 같은 미니버스인데 우리가 미리 알아둔 숙소인 고성객잔으로 가는 버스다.

 

함께 탔던 얼굴이 갸름한 나시족 아가씨가 길을 찾는 우리를 보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다행히 그녀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리장고성으로 간다고 하니 택시를 타라고 한다. 우리가 가려는 고성객잔까지 6위안이면 간다고 한다. 그녀는 고성객잔에 전화까지 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택시를 불러 위치를 알려준다. 친절한 아가씨는 더욱 예뻐 보인다.

 

택시를 타고 고성으로 들어가는데 거리의 사람들은 매우 느리게 걸어 다녔다. 리장은 해발 2400미터 고지에 티베트와 접경한 작은 도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느림의 공간이 늘어난다. 리장은 <느림의 미학>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거리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든다. 티베트의 문화가 점점 우리의 몸에 배어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는군요."

"여긴 해발 2400m라오. 이제부턴 거북이 걸음을 해야겠어."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몇 걸음 걸어가는데 벌써 숨이 찼다. 이제부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걸어 다녀야 한다. 티베트에 다가갈수록 행동은 슬로비디오로 변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편하고 부드럽다. 물통을 나시의 처녀가 느리게 걸어간다. 망태를 진 노인도 슬로 비디오처럼 천천히 걸어간다.

 

나시의 전통복장을 한 할머니들이 개울가 의자에 앉아 오수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책을 읽고, 쓰방제의 광장에서는 원을 그리며 느리게 춤을 춘다. 느림의 공간(慢空間), 천천히 먹기(慢植), 천천히 걷기(慢走), 천천히 구경하기(慢看)…… 역시 느림은 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느림과 게으름은 다르다. 느림은 여유다.

 

여행은 역시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리장은 그런 곳이다. 천천히 걸어가는 거북이는 천년을 살지만 숨 가쁘게 뛰어가는 토끼는 10년을 채 살지 못하지 않는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리장은 느림의 미학을 가리켜주는 곳이다. 느리게 갈수록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리장이다. 양쯔강 상류인 진샤강이 크게 뒤틀리며 곡선을 그은 자리에 리장은 아름다운 둥지를 틀고 있다. 서구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중국의 여행지다. 해발 5500m의 위룽쉐산(玉龍雪山)을 배경으로, 북쪽에 진훙산(金虹山), 서쪽으로는 스쯔산(獅子山) 사이에 위치하며 천년의 나시문화가 흐르는 곳이다.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에도 끄떡없는 나시족 건물

 

그런 리장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1996년 2월, 리장은 리히터 규모 7이 넘는 강진이 도시를 강타했다. 이 지진으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1만6000여명이 부상했다. 피해규모는 미화 5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강진으로 신시가지의 건물은 초토화가 되듯 크게 파괴되었지만, 나시족이 지은 고성은 끄떡없이 잘 견디어 내고 있었다. 세계의 건축가, 문화연구가들의 관심이 리장에 모아졌다. 중국정부 당국도 놀랐다. 중국정부는 리장을 나시 건축방식으로 재건축을 하고 시멘트를 자갈과 나무로 대체하는 데 수백만 위안을 투자했다. 유엔은 리장이 강진에도 건재함을 높이 평가하여 1999년 리장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나시의 건축은 쇠못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둥과 대들보를 사개맞춤식으로 결합하여 이용한 무렁팡(木楞房)을 짓는다. 즉, 집을 지을 때 쇠못 대신 사방의 보나 도리가 기둥 위에서 맞춰지도록 이들과 기둥머리를 요철[凹凸]형식으로 따내 엇갈리게 끼우게 해서 짓는다. 지붕은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를 돌덩이로 누른다. 무렁팡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이러한 나시족의 건축방식은 지진의 충격을 잘 흡수했기 때문에 리히터 규모 7도를 넘는 강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리장 고성은 쓰팡제(四方街)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도로가 있고, 그 사이에 소로(小路)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쓰팡제는 고대로부터 티베트로 통하는 차마고도와 실크로드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터로 윈난 북서지역의 교역 중심역할을 했다. 소로 사이에는 어김없이 개울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모든 도로는 붉은 색의 우화스(五花石)로 포장되어 있다. 포석로는 미끄러운 느낌을 주지만 자연이 주는 풍치를 만끽 할 수 있게 하고, 장마에 진창이 되는 것과 가뭄에 먼지를 날리지 않게 하여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미로와 개울 사이에는 나시의 독특한 건축법을 이용한 목조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우리들 숙소인 고성객잔은 리장고성 북쪽 높은 쪽에 있는 나시족의 전통집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미로 같은 자갈길 골목이 이어진다. 골목길에는 홍등을 단 나시족의 목조주택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고성객잔은 "ㄷ"자 형으로 지어진 나시족 전통가옥으로 가운데 정원이 있고, 정원을 둘러싸고 방이 있다. 다리에서 털보 여행자가 알려준 집인데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이 달린 작은 방을 하루 60위안을 달라고 했다. 10위안을 깎아서 50위안으로 3일간을 머물기로 했다.

 

우리는 고성객잔에서 호떡처럼 생긴 나시 전통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옥수수 껍질 위에 얹어서 내는 '위미(玉米;옥수수)바바'라는 음식이다. '바바'는 옥수수나 피의 가루를 익반죽해 찐 다음 설탕, 깨, 복숭아씨 등을 갈아서 속에 넣어 만든다. 돼지 뒷다리나 살을 갈아서 넣기도 한다. 일종의 호떡 같은 것으로 나시족 할머니들이 판매하는 길거리 좌판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어둠이 깔리자 집집마다 홍등이 켜지며 환상의 도시로 변했다.

 

 

"우와! 중국에 이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요!"

"정말, 동양의 베니스란 말이 전혀 어색치가 않는군."

 

우리는 리장의 아름다움에 취해 미로 같은 골목으로 빠져 들어갔다. <계속>

 

(뉴스게릴라 찰라)

덧붙이는 글 | 2006년 봄 100일 동안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리장고성, #나시족, #나시건축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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