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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에 무늬를 새긴 절편과 떡살. 김규석 명장의 작품이다.
 떡에 무늬를 새긴 절편과 떡살. 김규석 명장의 작품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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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 설날은 신났었다. 쫄깃쫄깃한 인절미며, 구수한 시루떡을 볼이 미어지도록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까칠까칠한 보리개떡이나 밀가루떡하고는 혀끝에 감도는 감칠맛부터 달랐다. 명절이 1년에 두 번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들의 생활도 예전보다 넉넉해졌다. 식생활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과 떡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년 중 떡이 가장 빛을 발하는 날도 명절이다. 떡에 무늬를 새긴 절편은 절편대로, 도장떡은 도장떡대로 귀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이 떡에 무늬를 새겨 보기 좋게 만들어 주는 게 떡살이다. 떡살의 선명하고 화려한 무늬는 떡을 보기 좋게 만들어 준다. 떡살은 떡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기원이나 소망까지 담고 있다.

생일 떡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나 거북무늬를 쓰고, 혼례 땐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나 대추, 포도문양을 새기는 것도 이런 연유다.

떡살. 여기에는 우리민족의 혼이 깃들어 있다.
 떡살. 여기에는 우리민족의 혼이 깃들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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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 명장 김규석씨. 우리 떡살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떡살 명장 김규석씨. 우리 떡살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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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에 있는 목산공예관 김규석(53) 관장. 그는 떡살에 민족의식까지 새겨 넣고 있는 '떡살 명장'이다.

"FTA만 무서운 게 아니에요. 해마다 외국산 떡살이 밀려들어와서 우리 제사상에 오르는 절편에 무늬를 찍어대는데,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아요. 우리 고유의 무늬도 아니고 무슨 염원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도저도 아니라면 아무 것도 찍지 않는 편이 낫죠. 우리 문화가 완전히 '번지 없는 주막'이 돼버렸어요."

그가 떡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벌써 30여 년 전이다. 할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풍속조각가 이주철 선생의 가르침을 거쳐 무형문화재인 고(故) 이연채 선생으로부터 목공예, 떡살, 다식판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떡살 명장' 김규석 씨가 작업실에서 떡살 깎기 작업을 하고 있다.
 '떡살 명장' 김규석 씨가 작업실에서 떡살 깎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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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채 선생은 남도의 전통음식과 떡살의 산증인이셨어요. 그 분한테서 우리 고유의 음식인 떡의 소중함을 들었고, 떡살 하나하나의 무늬마다 들어있는 깊은 뜻을 배웠지요."

떡살 깎는 기술을 익힌 그는 단순히 이것을 재현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옛 문양을 뿌리로 해서 지금 시대의 기원을 담아 재창작해냈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재현만 한다면 그건 또 다른 표절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에 얽힌 주술적인 것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음양오행을 찾고 풍수지리를 익혔다. 시중에 나도는 민화집도 모조리 사들여 틈나는 대로 뒤적였다. 떡살에 새겨진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옛 문양을 토대로 이 시대의 기원을 담아 재창작하는 데 성공했다. 옛것이 농업과 초가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는 여기에다 도시와 아파트의 세련미를 더했다. 전통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련된 떡살을 만들었다.

떡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는 떡살. 이 무늬는 모두 소망을 담고 있다.
 떡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는 떡살. 이 무늬는 모두 소망을 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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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 무늬가 선명하고 화려하다.
 떡살. 무늬가 선명하고 화려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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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떡살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식과 차 문화가 재조명되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시쳇말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중국 산과 인도네시아 산이 밀려들어오면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격 차이가 20배까지 나면서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그는 묵묵히 한길을 걸었다. 떡살 하나 깎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그는 떡살에 전통무늬와 함께 민족의식까지 새겼다. 이렇게 떡살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주일. 한 달 동안 열심히 만들어도 4개가 고작이다. 1년을 만들어도 50개가 채 안 된다.

김 관장은 몇 해 전 제각각 무늬를 다르게 새긴 떡살과 다식판 700여 점을 단행본 <소중한 우리떡살>로 묶어 펴냈다. 문양탁본 1300여 점은 <아름다운 떡살무늬>로 따로 묶었다. 두 권 모두 대대로 물려줄 자료집이라 생각하고 품위 있게 만들었다.

'떡살 명장' 김규석씨. 그의 작업은 돈벌이를 떠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는 힘이 살아 있다.
 '떡살 명장' 김규석씨. 그의 작업은 돈벌이를 떠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는 힘이 살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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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석 씨가 만든 떡살에서는 전통의 멋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가 느껴진다.
 김규석 씨가 만든 떡살에서는 전통의 멋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가 느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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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들여 떡살 재현작업을 마친 그는 요즘 다양한 무늬를 재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떡살무늬를 큼지막한 나무판으로 옮겨 별도의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무늬를 떡살에만 묶어두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책표지를 만들 때 썼던 문양인 능화판이나 선비들의 편지지를 만들던 시전지판, 옷을 만들 때 썼던 보판 등을 재현하고 싶어요. 떡살 무늬의 대중화를 위한 일이죠. 이 시대의 정서를 담은 새로운 떡살을 만드는 것도 계속할 것이구요."

그의 소망은 아주 소박하다. 그것은 우리 떡살과 떡살무늬가 일반인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작품집 <소중한 우리떡살>에다 떡살 제작법과 노하우를 소상히 적어놓고 언제라도 공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무늬가 장판과 벽지 등 생활 곳곳에서 소중하게 쓰였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나무를 깎는 일꾼'이라고 표현하는 그에게서 명장의 기품과 함께 음식연구가, 풍수연구가의 품세가 묻어난다.

다식판. 차와 함께 어우러지는 다식을 찍어내던 도구다.
 다식판. 차와 함께 어우러지는 다식을 찍어내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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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 명장 김규석씨. 떡살무늬를 큼지막한 나무판에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가 작품 하나를 들어보이고 있다.
 떡살 명장 김규석씨. 떡살무늬를 큼지막한 나무판에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가 작품 하나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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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떡살, #김규석, #목산공예관, #떡살무늬, #떡살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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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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