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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희야는 잘 먹고 잘 자고 늘 웃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쉴 새 없이 종달새같이 종알거린다. 모두들 상대방의 눈치를 봐가면서 적당히 감추는 것과는 달리 어제는 무얼했고, 그저께는 누굴 만났으며, 왜 맛이 좋은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설날이 다 되어가니 보고싶다고 일본에 계신 같이 살았던 쉼터소장님은 언제 한국에 오느냐고 묻는다.

 

보고 싶어서 매일 사진을 보고 실물을 대하듯이 인사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또 최근 몸이 안좋아 치료를 어떻게 받았고 누가 찾아와서 어떻게 도와주었으며, 생활비를 아껴 어떤 약을 해먹었으며, 화장품은 무엇을 어디에서 얼마를 주고 샀는 것까지..... 시시콜콜 끝도 없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어떤때는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런데 그녀가 최근의 이야기를 하는 것 중의 한 이야기가 갑자기 긴장감을 갖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가족이 없는 독거여성장애인이다. 그래서 주변에 호시탐탐 그녀의 생활에 침입(?)하려는 한국판 늑대(?)들도 적지않다. 어떤 날은 그녀가 대문을 열어놓고 집청소를 할 때 아래층에 사는 아저씨가 실실 웃으며 떡복기와 소주 한병을 갖고 올라왔다고 한다. 대뜸 눈치가 빠른 그녀는 이웃들이 일부러 들으라고 빗자루로 대문을 땅땅 치며 소리를 크게 질렀다고 한다.

 

"아니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어떤 남자가 들어올려고 해요?"

 

아저씨는 누가 와서 볼까봐 줄행랑을 쳤단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잘했지요? 하는 표정이었고 당연히 너무 잘했다고 손 잡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녀가 이렇게 소리친 것도 미리 사전에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전교육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지적여성장애인, 세상경험과 대인관계경험이 없는 여성장애인들은 쉽게 늑대들의 유혹(?)에 말려든다.

 

유혹이라는 것보다 드디어 자기에게도 이상형(?)이 나타났구나 하는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 일어나는 간절한 바람에 휩쓸려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라의 시국과 경제적 어려움이 심한 요즈음 여성이면서 장애, 그리고 장애중에서도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 가정폭력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 감정과 욕구의 발산이 이 사회 최약자의 낮은 땅의 풀꽃들에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은 당사자에 대한 사전예방과 폭력에 대한 사회이슈화와 법 제제로 상당수 예방할 수 있다. 돌발상황이나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일반여성의 폭력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녀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부산의 어떤 사이비교주집에서 반 평생을 허드렛일을 해주면서 살았다. 그녀 이름으로 나오는 수급비는 물론 그 집단이 생활비와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썼다. 우연히 같은 여성장애인상담소장과 쉼터소장들과 연계가 되어 그녀들이 몇 개월 동안 꾸준히 뛰어다니고, 경찰의 협조와 재판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독립했다.

 

그리고 그녀는  몇 년 전부터 기초수급자로 정부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는데 월요일은 야학교, 화요일은 자립센터활동보조인과 병원, 수요일은 교회, 목요일은 운동, 이런 식으로 매일 일정을 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녀는 뇌병변장애와 척추측만장애가 겹친 중복장애에다가 무학이라서 글도 산수도 잘 몰랐지만, 자립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교육을 쉼터소장과 상담소장을 비롯해 자원봉사들에게 받아 매일 지출을 기록하고 월별 공과금영수증도 꼬박꼬박 모으게 됐다. 심지어 과중과세가 되지 않았는지 주변에도 물어본다. 월 50만원이 간신히 될까 말까한 수급비를 가지고 월 5,000원을 어디론가 자동이체로 후원을 한다.

 

그래도 그녀는 행복한 표정이다. 예전의 삶에 비하면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재미를 안다. 욕심과 남과 비교하는 자격지심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삶의 행복지수는 풍요속에서 나오는 것보다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속에서 더 높고, 당장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에서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마치 이 세상 가장 향기로운 꽃향기가 나오는 때가 아주 춥고 어두운 새벽 2시라는 꽃들의 이야기처럼...

 

지구에서 제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바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방글라데시라고 한다. 문맹율이 90%고 종교인의 숫자도 제한되어 선교도 어려운 나라인데 그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다. 희야와 비슷하다.

 

희망과 꿈은 지구촌의 잘 사는 그 누구들처럼 갖고 살아가지만, 그 이룸의 속도에 크게 욕심내지 않고 순리에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살기에 행복지수가 높고 여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태그:#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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