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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을 기다리는 헌책방

 

헌책방은 봄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봄이 찾아와도 헌책방에 따순 기운이 돌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헌책방에 따순 봄기운이 돌려면, 헌책방에 앞서 동네 작은 새책방에 따순 봄기운이 돌아야 할 텐데, 동네 작은 새책방은 거의 모두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누구 말마따마 봄이 찾아와도 봄소리는 들리지 않는 노릇입니다. 말없는 봄, 소리없는 봄, 쥐죽은 봄, 고요한 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봄이어도 봄임을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 우리 삶터가 아니랴 싶습니다. 텔레비전 날씨방송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몸과 마음으로 알아채는 겨울과 봄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거든요.

 

헌책방은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나긴 지난날처럼 사흘이 추워도 하늘이 따뜻하던 겨울이 아니라, 하루 따뜻하면 엿새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조차 안 따숩고 이레 내리 추울 때마저 있는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헌책방만 춥고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다. 헌책방처럼 우리 터전에서 낮은자리로 내몰리며 막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춥고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책은 수없이 쏟아지며, 수많은 책이 '한 사람 손을 거쳐 고물상에든 폐휴지상에든 흘러넘치'고는 있습니다.

 

다만, 팔리는 책은 끝없이 팔리고, 안 팔리는 책은 그예 안 팔립니다. 읽히는 책은 자꾸자꾸 읽히며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안 읽히는 책은 조용히 더께만 먹으며 다 다른 삶 다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나날입니다.

 

남 이야기를 떠나, 나 스스로 내 하루하루가 다 다른 나날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하다고 느끼며, 가방을 꾸려 서울마실을 합니다. 집식구가 함께 마실을 하면 좋겠지만, 추운 날씨에 세 식구가 다 함께 길을 나서기 어려워 혼자 빈 가방을 들고 전철길에 읽을 책 세 권을 챙기고 집을 나섭니다.

 

 

 (2) 발디딘 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책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연신내역에 닿습니다. 연신내역에 닿은 다음에는 옛 기자촌 쪽으로 오르막길을 걸어갑니다. 언제나 헌책방으로만 곧장 찾아갔다고 느끼며, 오늘은 살며시 헌책방 둘레를 돌아보자 생각하며 연신중학교와 연신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며 골목집을 슬쩍슬쩍 바라봅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큰길 안쪽은 조용하고, 자동차가 뜸한 길은 걷기에 좋습니다. 이렇게 차소리 적거나 낮은 곳은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며, 차소리 크거나 높은 곳에서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건사하기 힘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헌책방 <작은우리> 앞에 닿습니다. 골마루는 둘, 한쪽 골마루는 으레 책더미가 가득하여 구경하기 어렵기 일쑤인 이곳 <작은우리>에서 책을 둘러봅니다. 쌓인 책더미라면 하나하나 옆으로 슬쩍슬쩍 옮기면서 둘러봅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책이 쌓여 있으면 책탑을 하나하나 들어서 옆에 새로운 책탑을 쌓습니다. 이렇게 하면 쌓인 책탑 하나뿐 아니라 뒤쪽에 감추어진 책들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책탑을 하나 쌓았으면 이 옆에 또다른 책탑을 하나 더 쌓으면서 뒤쪽 책탑을 살핍니다. 다 살폈으면 새로 쌓은 책탑을 처음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책탑을 쌓고 옮기고 하다 보면, '다 둘러보았다' 생각하던 자리에서 뜻밖에도 반가운 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곤 합니다.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이승우 옮김-영원한 것을>(성바오로출판사,1963 첫/1979 8쇄)을 봅니다. 이 책은 일찌감치 읽었지만, 예전에 손바닥책으로 나온 판이기에, 이 앙증맞은 녀석을 함께 간직하고 싶어 골라듭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는 이렇게 자그마한 판으로 만들어서 읽었군요. 1990년대 판과 견주면 글씨가 깨알같고 종이도 갱지라 바스라진다 하지만, 가볍고 값싸게 만들어 더욱 널리 읽힐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겉모양을 한결 예쁘장하게 꾸미는 책도 나쁘지는 않으나 속알을 꽉 차게 여미는 책이 저한테는 좀더 반갑고 좋습니다.

 

.. 진실과 대했을 때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되며, 또 무엇인지 모르게 자기의 삶이 충실되어 감을 의식한다. 왜냐하면 인군이 열구하는 것은 자기 생명의 충실이며, 삶의 보람있는 발전과 향상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 말)

 

<샐리 트렌치/남궁연 옮김-진흙탕에서>(성바오로출판사,1973)라는 작은 책을 봅니다. 이 책도 자그마한 판입니다. 1970년대 <영원한 것을>보다는 조금 크지만, 한손으로 쥐어 읽어도 손목이 아프지 않은 작고 가벼운 책입니다.

 

책을 찾아 읽을 때에는 줄거리를 보고 읽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책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줄거리도 줄거리이지만, 이렇게 꾸밈새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줄거리가 알차고 훌륭하면 두툼하고 비싼 책이어도 마다 하지 않는데, 제 눈에는 작고 값싼 책이 먼저 뜨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자그마치 1000쪽이 넘는 가볍고 값싼 손바닥책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작은 책들은 글씨가 잘아도 깔끔하고 훌륭히 엮어 놓기 때문에 눈이 아프지 않습니다. 우리네 책마을도 이제는 이와 같은 책 엮음새를 곰곰이 배우고 곰삭이면서 옹글게 갈고닦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진흙탕에서>는 책이름 그대로 '진흙탕'과 같다고 할 만큼 길거리에 내버려진 사람들한테 길벗이 된 어느 한 사람이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하고 어떻게 믿음을 주고받으며 따순 손길을 나눌 수 있었는가를 들려줍니다. 주인공이 '진흙탕'에서 사람들한테 다가서는 모습은 '골목길에서 사진찍기'를 하려는 사람들한테든, '어떠한 주제 하나를 찾아 사람들하고 어우러지'려는 사람들한테든 좋은 길잡이가 되겠다고 느낍니다. 내 눈높이대로 다가서려는 몸짓이 아닌, 내가 다가서서 만나려는 사람들 눈높이로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 그녀가 반 병만을 자기 잔에 따르는 것을 보았다. 웬일일까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노파는 남은 병을 내게 밀어 주었다. "자, 이걸 마셔." 후에 안 일이지만 이런 면이 이 가련한 친구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다. 언제나 친구와 나누는 것 … 처음에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2주일 이상이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저녁마다 그곳에 나타났다. 경계하는 눈초리가 그들 사이에 오갔다. 물론 나는 그들이 낯선 사람을 대하는 그런 냉대를 받는 것이 확실했다. 그것이 만일 사회사업가나 그들을 선도하거나 구원해 주겠다는 종교가인 경우는 더욱 적의에 찬 대우를 받는다. 그들은 보호 같은 것을 무조건 싫어하며, 따라서 우정 같은 데 이끌리는 것을 기피하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한 그들이 내게 기회를 주고 얘기를 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여러 개의 술집과 더러운 장소를 돌아보고 난 후 나는 그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특히 거부당하는 공포감이 이런 적개심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지난주 이 술집에 들어오니까 글쎄, 집주인이 며칠 전에 도둑질한 놈들이 우린 줄 알고 내쫓지 않겠어. 우리가 그 녀석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그 녀석들로 알다니. 물론 우리 세대에도 우리는 식량이나 다른 물건을 훔치기는 했지. 그러나 지금 녀석들처럼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마구 도둑질을 하진 않았어. 튀즐과 내가 만체스터에 있을 때 우리는 부자가 사는 동네에 가서만 도둑질 했네. 말하자면 그 부자들도 그런 지위와 재산을 모으기 위해 남을 짓밟은 것 아니겠어? 그러니 우린 그들에게서 가끔 우유 한 병쯤 훔치는 것도 그들을 짓밟는 셈이 되거든. 그러나 우린 절대로 줄 것이 없는 사람들한테선 집어오질 않았어. 그리고 가진 것을 모두 나눠 가졌지." ..  (82∼85쪽)

 

좋은 글월을 새록새록 되새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록새록 되새기는 글월이 제 삶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읽기만 하고, 제 삶은 그리 나아지는 낌새가 없는지 모릅니다. 집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집에서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면서, 동네 이웃이나 둘레 동무하고 어울리면서, 얼마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삶을 가다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부터 지식쌓기만 하고 있으며, 삶으로 녹여내기에는 아직 어수룩하기만 하지 않느냐 돌아봅니다.

 

1913년에 태어나 해방 뒤 신문기자로 뛰었고, 1970년에는 세상 인연을 끊고 절로 들어간 분이 젊은 나날부터 적바림한 글 예순 꼭지를 모둔 <김일순-혼자 남은 쨍아>(성문각,1973)라는 수필책 하나를 봅니다. 머리글을 모윤숙 님이 적었습니다. 스물을 갓 넘은 날 적바림한 글부터 예순을 코앞에 두고 적바림한 글까지, 꼭 한 사람 발자국이 고이 아로새겨진 조그마하면서 도톰한 책입니다.

 

이분 발자취가 궁금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옛날신문 보기'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1973년 10월 3일치 <동아일보>에 "여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불도에 귀의한 수필가의 첫수필집묶음. <승무와 황진이> <여기자> 등 육십편에서 담담한 삶의 관조를 보인다."는 기사가 실리고, 1973년 12월 18일치 <경향신문>에 "한국여류문학인회는 회원들의 합동출판기념회및 송년파티를19일하오6시 한국일보사13층 라운지에서갖는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이때 함께 출판기념잔치를 한 사람은 김여정, 김일순, 모윤숙, 박현서, 신지식, 이영희, 전숙희, 함혜연 님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1981년 2월 28일치 <동아일보>에 박화성 님이 쓴 글 한 귀퉁이에 "근년에는 박완서가 동급 동창인 한말숙과 동반하게 되었는데 임옥인 씨와 승려 문우 김일순 씨는 반드시 전화로 새해를 축복하여 주곤 하는 것이다." 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테니스 선수 이름만 줄줄이 뜨고, 스님이 된 김일순 님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백여 평이나 되는 신문사 넓은 방안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무리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여자라는 이름씨를 짊어지고 계신 분은 오직 단 둘. 큼직한 금고실을 등 뒤로 하고 있는 현금 담당의 최양과, 그리고 신문의 문화면을 위해 비치된 나. 이래서 둘이다 … 바로 아까는 주필께서 손수 자기 책상의 꽃을 내 앞에다 갖다 놓아 주셨지마는 이 또한 나로서는 그저 당황해지는 사연일 따름 … 취재에서 마감 시간에 신경쓰며 돌아오니 사동아이 홍군이 큰소리로 "방금 어떤 여자 한 사람이 다녀갔어요." 한다. 나는 무척 궁금해 하며 "왜, 성함이라도 좀 적어 두라고 할 거지." 했더니, 녀석 좀 보게나. 소녀처럼 째릉거리는 말소리를 다음과 같이 뽑아올린다. "그까진 여자가 무얼 쓸 줄 알겠다구 그러세요우? 공연히 김일순 씨는." … 공장에서 내려온 가정면 대장을 보니 어디 누구 '○○씨담'에서 氏자가 빠졌다. 크게 실례되는 일이다. 나는 일부러 뛰어올라가 이걸 시정시키고 있는데 누가 등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그분이 여자입니까?" "네, 그래요." "여잔데 뭐, 씨자 안 붙이면 어떻습니까?" 놀라며 얼핏 뒤돌아보니, 머리털이 반백이 다 된 문선공 한 사람이 "당연한 말을 했노라"는 듯이 조용히 정면하여 나를 바라본다 … 기자들이 화로불을 끼고서 무더기로 모여앉아, 어제 치룬 민 기자의 혼인잔치 이야기로 사뭇 꽃피우고 있다. 조판하러 공장으로 빠지려는 나에게 개구장이 박이 툭 한 마디 던져 왔다. "어, 어저께는 왜 오잖았죠?" 기자 일동의 눈표정 또한 모두들 같으다. 나는 얼핏 지난번 야유회날 박이 푸념하던 "김일순 씨가 곁에 있어 이거 어디 마음 놓고 취하겠소." 하던 그 생각이 나서 "내가 있으면 도리어 술맛 떨어질 것 같아서."라고 엄버무렸다. 그랬더니 "오운 천만에요. 곁에 계시는 게 술맛이 더 나지요." 하는 소리가 나보담도 어느 모로나 손아래인 황에게서 뿜겨져 나왔다 … 사실에 있어서 여기자는 정말 어디까지나 '여기자'지, 절대로 그냥 기자는 아니시다 ..  (1946년, <부인시대>/210∼214쪽)

 

1940년대에 신문기자로 일한 여성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물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때에 여성으로서 신문기자로 일한다는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또한 몹시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손아래 남자 기자가 성희롱과 다름없는 말장난을 하고, 신문사에서도 버젓이 남녀차별이 드러나는 이런 곳에서 '기자다운 길을 걸어가기'란 얼마나 가시밭길이었을까요. 그러면 2000년대를 넘어선 오늘날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오늘날은 1940년대 모습하고는 사뭇 다르다고 하겠으나, 푸대접이란 말끔히 가시고 없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신문사뿐 아니라 우리 삶터 구석구석에서 성별에 따라 푸대접하거나 따돌림하거나 괴롭히는 짓이 멈추었는지 궁금합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울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이웃사람으로 여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한희작-서울 손자병법>(바른사,1987) 상권과 하권을 만납니다. 잡지 <샘이깊은 물> 2000년 2월호(184호)와 1999년 4월호(180호)를 만납니다. 184호를 펼치면서 노익상 님이 쓴 '착한 사람' 꼭지를 눈여겨봅니다. 노익상 님은 당신 스스로 '착한 사람'을 찾아나서며 '착한 사람'을 오래오래 만난 탓인지 모르나, 당신 사진과 글 또한 더없이 착한 내음이 배어 있구나 싶습니다.

 

<샘이깊은 물> 180호에서는 여는 글로 실린 '열린 문화재와 닫힌 관리'라는 꼭지를 꼼꼼히 살핍니다. '열린 문화재와 닫힌 관리'에는 퍽 재미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잡지 <샘이깊은물>에서 경복궁 이야기를 담으려고 사진을 찍고자 박물관 쪽에 연락을 하니 "장소 사용료 기본 이만 원, 한 시간을 넘어설 때마다 만 원씩 추가, 내부 촬영은 안 됨, 내부 촬영이 안 되는 것은 경복궁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데 관람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 단, 그 원칙을 따르더라도 사전에 공문을 보내어 허가를 받기 바람." 하고 대답을 했답니다. 피식 웃음이 나지만, 이 재미난(?) 이야기는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생겨난 일이요, 고작 열 해밖에 안 된 일입니다.

 

.. 그래서 문화관광부 문화재청에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이것이 어떤 원칙인가 하고 물었던 것이지요. 담당 공무원은 꽤 친절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개인이 사적인 기록을 위해 박는 사진이나 국민 교육 목적으로 쓰일 것을 빼고는 상업적인 목적이 배어 있는 것에는 모두 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취재용 사진에도 그러냐 했더니 잡지는 결국 파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신문 보도용 사진도 그러냐고 했더니 그것과는 좀 다르지 않느냐고 했고, 그렇다면 신문은 공짜로 보는 거냐 했더니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그램일 경우에는 그냥 협조한 적도 있지만 역사극 촬영 같은 경우에는 돈을 꼬박꼬박 받는다고 말을 돌렸습니다 … 저희는 그 일이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내고 허락받을 일은 더욱 아닌 것으로 보았지요. 그리고 관리소장을 찾아가서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사정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  (13쪽)

 

'꽤 친절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해 주는 공무원 모습은 이때나 더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공무원뿐이겠느냐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리는 흔히 공무원을 가리켜 쇠밥그릇이라 하지만, 여느 회사원으로 일하는 분들 매무새는 어떠합니까. 전문직업인이라 하는 분들은 어떠합니까. 교사와 교수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 어우러진 터전에서 사람다움을 고이 건사하면서 살아가는 이웃인지요. 우리는 서로를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요. 우리는 나와 너를 나란히 아름다운 목숨붙이 하나로 마주하고 있는지요.

 

잡지 <아동문학>(농경출판사) 1호(1976)를 봅니다. 이 잡지에는 어린이문학 비평을 놓고 이오덕 님하고 주고받던 논쟁이 한 꼭지 실려 있어 자료로 삼고자 집어듭니다. 어린이문학 비평이란 아예 있지도 않았다고 할 1970년대입니다만, 오늘날에도 제대로 된 어린이문학 비평이란 아직 자리매김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줄세우기라든지 빨갱이로 몰아붙인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1960∼70년대와 80∼90년대로 그치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 비평에서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이제는 줄어들었다고 하겠지만, 줄세우기는 되레 더 탄탄하게 울타리를 쌓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줄세우기 글만 잔뜩 있는 가운데 <동시와 성인시의 한계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글이 하나 있어 퍽 도드라집니다.

 

.. 어느 국민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은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읍니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들고 다른 친구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걷잡을 수 없이 발표했읍니다. 거기에서 선생님은 어른의 위치에서 크게 반성해야 할 진귀한 대답을 몇 가지 들은 것입니다. "어른은 어린이들보다 나쁜 짓을 많이 합니다. 공갈치고, 협박하고, 강도질하고, 사람을 죽이고, 말 안 들으면 우리(아이)를 막 때리고 ……" 참으로 끔찍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멍든 세계를 더 이상 보이지 말고 천진한 어린이들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꿈을 고이 키워 주기 위해서 우리들은 동시를 써야 할 줄 압니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봉건사상에 젖어 양반이 상민을 학대했고, 어른이 위선의 탈을 쓰고 어린이들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러했기에 아이는 아이로서의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고, 어른에 종속된 생명체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어린이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존중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기천년이나 되는 우리 나라의 역사 속에 국문학이 자라왔지만 어디를 뒤져 보아도 어린이를 소재로 한 글이나, 어린이를 위한 글이나, 혹은 어린이에게 들려줄 만한 <안델센 동화> 같은 글은 한 편도 없으니 슬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땅의 아동문학가들은 새로운 역사 새로운 문학세계를 창조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줄 압니다 ..  (엄기원/144쪽)

 

강원도 사천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강릉초등학교로 옮긴 엄기원 님은 1968년 무렵 서울 추계초등학교로 옮기며 열세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이 글에 나온 '아이들한테 묻는 말'이란 당신이 스스로 겪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6년 봄에 <스토리문학>하고 만난 자리에서 "문학은 다른 분야와 달리 정신을 계발하고 혼을 정리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러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템포를 늦추고 평생 할 생각으로 내면세계를 서서히 무르익히면서 내놓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쭐대지 말고, 나대지 말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는 겸손한 자세를 당부합니다." 하는 말을 들려줍니다. 1976년과 2006년이라면 서른 해라는 세월입니다. 엄기원 님은 서른 해라는 세월에 걸쳐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동시가 시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성인시와 공통하지만, 독자가 성인은 물론 어린이에게까지 확대되었을 때 우선 시의 용어부터 제약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인이 읽을 한자를 한글로 고쳐쓴다는 뜻이 아니라, 쓰는 시어 자체를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답고 쉽고 가장 정선된 우리 말을 찾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시인은 우리 말을 자꾸 잃어 가고 외래어, 외국어가 범람하는 현대에 모국어를 되찾고 모국어를 아끼는 애국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동시는 참된 '동심'이 깃들여져야 한다고 보겠읍니다. 동시에서 지니는 '동심'이야말로 어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소외되기 쉬운 요건이지만 동시에서는 글의 생명이 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  (엄기원/145쪽)

 

어린이문학뿐 아니라 어른문학을 할 때에도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갖출 밑바탕'일 텐데, 이 밑바탕을 옳고 바르게 생각하면서 가다듬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문학하는 사람이란 글쓰는 사람일 텐데, 글을 붙잡으며 일하는 사람들은 당신들 매무새를 얼마나 슬기롭고 곱게 가다듬고 있는지 되짚어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서 생각하고 어울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서울이나 대도시엔 높은 빌딩과 큰 아파트가 자꾸 늘어만 가고 있읍니다. 어린이들에겐 이젠 장화가 필요없게 되었읍니다. 발바닥에 흙을 묻혀 볼 기회가 없어졌읍니다. 계절을 따라 꽃이 피어야 할 까닭이 없어졌읍니다. 인간의 가장 귀중한 생명도 사상도 감정도 모두 돈에만 귀결되어 가고 있읍니다 … 이러한 물질 문명이 우리들의 정서를 자꾸 빼앗아 가고 우리는 그냥 빼앗긴 채 허수아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145쪽)."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바깥힘 때문이든 우리 스스로 휩쓸리든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는 목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때로는 허수아비로, 때로는 꼭둑각시로, 때로는 인형으로, 때로는 기계 부속품으로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읽던 책을 덮고 눈을 감습니다. 날이 춥기도 하지만 손이 파르르 떨립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참을 쉽니다. 가늘게 한숨을 쉰 다음, 다시 책더미에 눈길을 박습니다.

 

 

 (3) 헌책이 흘러오는 길

 

사진책 <Guy van Strydonck(사진)-Un royaume de l'Himalaya BHOUTAN>(Edition Olizane,1984)을 들여다봅니다. 이런 나라밖 사진책은 어떻게 헌책방으로 흘러흘러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지난날 어느 분이 이 같은 사진책을 알아보고 장만했는지 궁금하고, 이 사진책은 어떤 이야기를 안고 그분 곁을 떠나 헌책방 책시렁으로 고이 옮겨왔을는지 궁금합니다.

 

 

히말라야를 품에 안은 나라 '부탄' 자연 터전과 삶자락을 부드러운 눈길로 담아낸 사진책을 보면서, 우리 나라에서 히말라야로 떠나는 사진쟁이가 퍽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느긋하고 넉넉하게 들여다보는 품새를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 길을 걸으려면, 나라안에 있든 나라밖에서 떠돌든 먼저 느긋하고 넉넉할 수 있어야 당신들 스스로 느긋하고 넉넉함을 나누는 사진을 일굴 수 있겠지요. 나부터 스스로 따뜻해야 내 따뜻함이 글에든 그림에든 노래에든 춤에든 사진에든 담깁니다. 나부터 먼저 싱그러워야 내 싱그러움이 내 모든 걸음걸이에 사뿐사뿐 담기리라 봅니다.

 

<진성기-남국의 신화 (1)>(아림출판사,1965)는 1965년 9월 17일에 고침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두꺼운종이로 엮은 책상자가 따로 있는 이 책은 아주 깨끗합니다. 자그마치 마흔다섯 해쯤 묵었으면서도. 어쩜 이리 깨끔하게 간직되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책상자에서 책을 꺼냅니다. 속종이는 더욱 깨끔합니다. 책을 처음 찍어내던 때 느낌 그대로가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아주 깨끔한 겉그림을 넘기니 속종이에 흘림 펜글씨로 "조선일보사 문화부장님 혜존"이라는 글씨와 함께 "1965년 10월 18일, ○○사범대학 ○○○"라는 서명이 보입니다. 사범대학교 교수 아무개 님이 조선일보사 문화부장님한테 몸소 드린 선물이지만, 이 책선물이 제대로 읽히지 않은 까닭에 책이 아주 깨끔하게 건사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선물을 받은 그때 문화부장님께서 책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여 오늘날까지도 깨끔하게 이어져 왔는지 모릅니다.

 

이런 손길을 탔든 저런 손길을 탔든, 오늘 우리가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퍽 오래 묵었음에도 깨끔한 책'들은 지난날 출판사 일꾼이나 작가나 '작가와 가까운 이'가 신문사 기자나 대학교 교수나 작가한테 선물해 준 책들이곤 합니다. 2010년 오늘 제가 누군가한테 선물해 준 책 또한 그분이 '안 읽어 준다'든지 '곱게 읽어 준다'고 한다면 서른 해나 마흔 해 뒤에는 어느 헌책방으로 조용히 흘러들어 먼 뒷날 누군가한테 반갑고 고맙게 읽힐 책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흘러서 책이고, 돌아서 책입니다.

 

 

.. "… 우리는 좀더 우리 고장을 바로 알아야 하겠읍니다. 진실로 우리 고장을 바로 알아야 할진대, 비록 거칠은 돌틈 바구니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오돌또기'일망정 하루바삐 시들기 전에 캐어내고 밝혀내어 이를 온 천하에 자랑꺼리로 삼기는 물론 뒷세상으로 물려주어야 하겠읍니다. 필자가 우리 고장의 신화를 실어 펴는 본 뜻도 실상은 그것 한 가지에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한 토막의 역사의 단면이 아로새겨져 있기도 하는가 하면, 풍경의 아름다움이 무늬져 있기도 하고, 또 어느 시골 오막살이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인정사로 뒤얽힌 미담이 수놓아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갓 역사나 풍경이나 이야기에서 그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역사와 그 풍경 그 미담을 통하여 우리 조상들의 '삶의 숨결'을 더듬어 보자는 것이며, 또 그대로 전도해 보자는 것입니다." 윗 글은 서기 1963년 11월 1일부터 동년 12월 31일까지 2개월 간 <제주신문> 지상에 연재했을 그 당시의 머릿말입니다 ..  (8쪽)

 

혼자서 신나게 책구경을 하고 있자니, <작은우리> 사장님이 부릅니다. "무슨 책구경을 그렇게 혼자서 재미있게 해요? 나하고도 이야기해요. 오랜만에 왔는데." "오랜만에 왔으니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을 책들하고도 만나야 하잖아요." "종규 씨가 찾는 책은 없어지지 않아요."

 

<작은우리> 아저씨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찾아서 읽는 책은 다른 사람들이 잘 안 찾아서 읽는 책이기 일쑤입니다. 하기는. 저로서는 올해에 찾아서 읽으나 이듬해에 찾아서 읽으나 똑같지만, 이 책은 한 해이고 두 해이고 열 해이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먼지만 먹으면서 꽂혀 있곤 합니다. 헌책방으로서는 오래도록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애틋한 녀석입니다. 사랑스러운데 밉고, 미우나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손님들이 와서 그래요. 여기 자기계발서 있느냐고. 그래서 제가 말해요. 어떤 책이든 읽으면 자기계발이 돼요 …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손님들이 '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물어 보더라도, 그렇게 물어 보고는 들어와서 책도 좀 얼마 동안 보고 갔는데, 요새는 쪽지에 책이름을 적어 와서는 '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물은 다음에 끝이야. 어떤 사람은 그냥 말도 없이 쪽지만 내밀어 … 예전에는 '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싫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책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요. 예전에는 그랬잖아요. 교과서 하나 사려고 방화동까지도 가고 헌책방을 뒤지곤 했는데, 이제는 돌아다니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천 원짜리 교과서 하나 찾는다며 여러 시간 다니면 일이지. 차비도 많이 들고. 그러니 다들 인터넷으로 책을 사나 봐. 요새는 '무슨 책 있어요?' 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반갑다니까. 그만큼 이제는 헌책방에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요. 다리품을 팔면서 책을 찾는 사람이 없어요. 직접 찾아오면 자기가 찾는 책이 없어도,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면서 다른 좋은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어. 다들 여유가 없나 봐. 그러니까 자기계발하는 책만 찾는가 봐요. 그런데 자기계발하는 책을 찾으려면 새로 나오는 책을 봐야지. 옛날 헌책으로 되나. 그런데 또 자기계발하는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옛날이나 요즘이나 똑같아요. 그냥 껍데기만 바뀌어서 새로 나오지 ……."

 

헌책방 아저씨 말씀은 거침없이 이어집니다. 끊이지 않는 물줄기로 졸졸졸 흐릅니다.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이 가는 줄을 잊습니다. 세월을 온몸으로 삭여낸 책을 한 권 두 권 집어들어 읽는 동안 내가 보내는 시간이 오늘인지 어제인지를 잊고, 헌책방 아저씨 이야기를 말매무새까지 하나하나 귀담아들으며 내가 보내 왔고 보낼 나날을 잊습니다. 문득, 이런 이야기를 우리 옆지기하고 아이하고 함께 찾아와서 듣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이야기들을 다 잊어버릴 텐데. 떠올린다 해도 많이 잊을 텐데.

 

그렇지만, 모든 책이 모든 사람한테 모든 알맹이를 보여주면서 모든 빛줄기가 되지 못하듯, 내가 오늘 듣는 이야기도 모두 내 마음에 새기지 못하더라도, 이 가운데 다문 하나라도 곱게 끌어안을 수 있으면 좋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받아들이려는 부푼 꿈보다, 하나라도 살가이 여기며 사랑할 수 있으면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내 삶이란 뭇사람이 좋다고 떠드는 책을 읽으며 가꾼 내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 마음길이 따르는 곳으로 나아가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만나면서 가꾼 내 삶입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 삶을 가꾸고, 옆지기와 손잡고 걷는 길에서도 내 삶을 가꾸며, 고되고 벅찬 아이키우기 나날로도 내 삶을 가꿉니다. 책에 적바림된 이야기가 우리 삶을 북돋우기도 하며, 책에 적바림되지 않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오늘 헌책방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보면 틀림없이 옆지기와 아이는 온 집안을 잔뜩 어질러 놓은 채 기운이 쪽 빠져 있으리란 모습이 우리 삶을 북돋우기도 합니다. 삶이란 단물과 쓴물과 짠물과 눈물과 콧물이 함께 있습니다.

 

 

"다음에는 식구들이랑 함께 찾아올게요." 하는 말을 남기고 헌책방 문을 돌아나옵니다. <작은우리> 아주머니는 내내 바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붕어빵을 굽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손길이 사람들 발길을 붙잡고 있는데, 사람들 발길은 붕어빵 앞에서만 멈춥니다. 좀처럼 책방 안쪽으로는 한 걸음을 더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불광동 <작은우리> / 02) 383-6263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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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헌책방, #작은우리, #책읽기, #헌책방마실,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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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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