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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방식 그대로 만든 창평쌀엿. 바삭바삭해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먹은 뒤 찌꺼기도 남지 않아 개운한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만든 창평쌀엿. 바삭바삭해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먹은 뒤 찌꺼기도 남지 않아 개운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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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유난히 추억이 그리운 계절이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한번쯤 드는 게 겨울이다. 주전부리도 겨울에 많았다. 고구마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화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먹던 그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구워먹는 인절미도 별미였다. 엿, 풀빵, 보리개떡, 찹쌀떡도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였다.

가난하기에 부족했고, 부족하기에 불편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지독한 가난과 불편함도 그리움일 뿐이다. 옛 추억이 서려있는 '슬로시티',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으로 가본다. 창평은 겨울철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였던 엿을 만들고 있는 고장이다.

오래 전, 공사장에서 주운 쇳조각이나 임무를 다한 헌책을 엿과 바꿔먹었다. 빈병이나 고무신을 가지고 가서 바꿔 먹었던 새롭다. 이 엿은 잘 붙는 특성 탓에 지금도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많이 팔리고 있다. 시집식구들의 입막음용으로 이바지음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엿의 생명은 구멍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엿치기가 떠오른다. 누구의 엿 구멍이 더 큰지 대보면서 큰 사람이 이기는 놀이였다. 엿은 또 구멍이 있어야 보기 좋고 바삭바삭해서 맛도 좋았다. 입에도 잘 달라붙지 않고….

구멍 송송 뚫린 창평쌀엿. 바삭바삭해 맛있다.
 구멍 송송 뚫린 창평쌀엿. 바삭바삭해 맛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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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을 달여 만든 갱엿. 이 갱엿을 둘이서 잡아당겨 늘이면 흰엿이 된다.
 조청을 달여 만든 갱엿. 이 갱엿을 둘이서 잡아당겨 늘이면 흰엿이 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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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을 만드는 재료는 여러 가지다. 찹쌀이나 멥쌀로 주로 만든다. 옥수수, 고구마, 무, 호박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창평에선 쌀로 엿을 만들고 있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쌀엿을 만드는 때가 지금이다.

엿은 겨울 한철에만 만든다. 그러나 준비과정은 가을부터 시작된다. 먼저 가을에 겉보리를 씻어서 엿기름을 만든다. 그리고 햅쌀로 고두밥을 지어 미리 만들어놓은 엿기름과 섞어 식혜를 만든다. 이 식혜를 숙성시켜 즙을 짜내서 가마솥에 달이면 조청이 되는 것이다.

이 조청을 저으면서 계속 달이면 짙은 노랑 빛깔의 갱엿이 된다. 이 갱엿을 조금씩 뜯어내 화롯불 위에서 늘이면 공기가 들어가 부피가 커지고 색깔도 하얗게 변한다. 이때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바깥바람을 끌어들인다. 잠깐 들어온 찬바람이 엿의 수축을 도우면서 엿을 엿답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다시 먹기 좋게 늘여 자르면 끝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만 해야 하는 고행이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48시간 동안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다는 게 엿을 만드는 주민들의 얘기다.

엿 늘이기 작업은 고되다. 갱엿을 떼어내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하는 일이지만 옆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엿 늘이기 작업은 고되다. 갱엿을 떼어내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하는 일이지만 옆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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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노랑색의 갱엿에서 흰엿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엿늘이기 작업을 하면서 만들어진다.
 진한 노랑색의 갱엿에서 흰엿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둘이서 밀거니 당기거니 엿늘이기 작업을 하면서 만들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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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쌀엿은 우리쌀과 엿기름으로만 만든다. 하여 바삭바삭해 입에 달라붙지 않고, 먹은 뒤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아 개운한다. 또 기계로 쉽게 만들지 않고 두 사람이 손으로 잡고 서로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면서 늘인 것이어서 그렇다.

엿 늘이기 작업은 아궁이에서 꺼낸 숯불을 화로에 옮겨놓고 그 위에 물에 적신 수건을 펴놓은 채 이뤄진다. 이렇게 앞뒤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엿에 김(수증기)이 스며들어 바삭바삭해지는 것이다. 엿 속의 구멍도 송송 뚫린다.

하지만 갈수록 쌀엿을 만드는 농가가 줄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지내마을에서 6농가가 쌀엿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올해 2농가가 포기를 해 지금은 겨우 4농가에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단속반원의 눈을 피해 쌀엿을 만들어 먹던 시절은 이미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이 쌀엿의 가격은 1㎏에 1만5000원. 다른 엿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들어가는 공력에 비하면 결코 비싸다고만 볼 수 없다. 맛을 본 소비자들이 지금도 주문을 계속 해와 판로걱정은 안한다. 평소 느릿느릿 살아가는 슬로시티지만 설날을 앞둔 요즘은 평소와 달리 분주하기만 하다.

엿 늘이기 작업은 완전히 굳기 전까지 계속된다. 어느 정도의 두께로 늘이느냐는 순전히 '엿장수 마음'이다.
 엿 늘이기 작업은 완전히 굳기 전까지 계속된다. 어느 정도의 두께로 늘이느냐는 순전히 '엿장수 마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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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의 한과생산 업체 종사자들이 한과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설날을 앞둔 요즘 슬로시티 창평은 평소와 달리 분주하다.
 창평의 한과생산 업체 종사자들이 한과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설날을 앞둔 요즘 슬로시티 창평은 평소와 달리 분주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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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한 건 쌀엿을 만드는 집뿐 아니다. 한과를 만드는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과 생산은 집안에서도 조금씩 하지만 요즘은 생산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과는 상차림에 필수품목인데다 수요가 명절에 집중돼 있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과도 창평에서 난 쌀로만 만들고 있다. 쌀엿을 만드는 데 쓰이는 조청으로 한과를 만드는 것이다. 식용색소도 일절 넣지 않는다. 한과 역시 쌀엿처럼 할머니 세대에서 어머니 세대로 이어져 내려온 손맛과 눈맛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 정도다.

지금 창평에 가면 쌀엿과 한과 만드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쌀엿은 주로 오전 작업으로 끝난다. 밤새 불을 지펴서 조청과 갱엿을 만들어 아침부터 엿 늘이기 작업을 한다.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하지 않는다. 엿 늘이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데다 일도 힘들어 하루 종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창평에 발걸음을 했다가 운이 닿으면 작업과정을 볼 수 있고 잠깐 체험도 해볼 수 있다. 한과 또한 요즘 대목이기에 아무 때라도 생산과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명절을 앞둔 시점이어서 체험은 아무래도 번거롭다. 명절이 지나야 차분히 한과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겠다.

슬로시티 창평은 전통마을이다.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레 발길이 느려진다.
 슬로시티 창평은 전통마을이다.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레 발길이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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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창평엔 옛집이 많다. 눈 덮인 고정주 가옥은 민속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슬로시티 창평엔 옛집이 많다. 눈 덮인 고정주 가옥은 민속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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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은 쌀엿과 한과도 독특하지만 돌담길과 고택도 상당한 내공을 자랑한다. 돌담길도 여느 길과는 격이 다르다. 지난 2006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돌담이다. 이 돌담을 한 줄로 세우면 대략 3㎞가 넘는다. 돌담과 고택은 쌀엿, 한과 등과 함께 창평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이 문화재 돌담길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간다. 여러 채의 한옥과 조화를 이뤄 전통마을의 가치도 높여준다. 이 마을에는 100년도 넘은 전통한옥이 20여동이나 남아있다. 그 중에서 고재선가옥과 고재환가옥, 고정주가옥은 민속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다른 여행지와 달리 삼지내마을은 쉬엄쉬엄 발품을 팔면서 걸으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자동차를 타고 돌아버리면 그다지 볼거리가 없는 동네다. 그러나 돌담길을 따라 뉘엿뉘엿 걷다보면 옛집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더께를 느낄 수 있다. 돌담의 매력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전통쌀엿과 한과를 만드는 집도 만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재밌다. 자전거는 창평면사무소에서 무료로 빌려준다. 자전거를 타고 돌담길을 따라 도는 묘미도 쏠쏠하다. 슬로시티답게 먹을거리도 일품이다. 브랜드까지 구축한 창평국밥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국물맛이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여성과 어린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쌀엿과 한과, 강정을 조금 사서 주전부리로 즐기며 돌아보는 것도 좋다. 담양에는 또 대통밥, 떡갈비, 숯불돼지갈비 등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죽순요리도 일품이다. 쌀엿과 한과의 고장,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 창평. 1월이 다 가기 전에 몸도 마음도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돌아보면 더 없이 좋겠다.

느릿느릿 살아가는 '슬로시티' 창평. 자전거를 탄 마을 주민이 돌담길을 따라 가고 있다.
 느릿느릿 살아가는 '슬로시티' 창평. 자전거를 탄 마을 주민이 돌담길을 따라 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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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슬로시티’ 창평은 호남고속국도 창평나들목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창평나들목으로 들어가 좌회전하면 바로 면소재지인 삼지내마을에 닿는다. 광주에서 국도를 타고 간다면 5.18국립묘지 앞을 지나 담양읍과 고서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고서방면으로 가면 된다.



태그:#창평쌀엿, #슬로시티, #창평한과, #전통쌀엿, #창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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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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