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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31일 밤. 새해를 두어 시간 남겨놓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있는데 문자가 날아왔다.

 

'[신한카드] LPG할인기간 1개월 이내 연장 후 대상자 축소 예정. 축소 시기는 별도 통보.'

 

장애인 LPG 지원 축소된다고 말은 많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나라당과 MB의 대선 공약을 믿고 있었다. 설마 이것마저 정말 지원을 하지 않을까..? 그때만 해도 설마...정말 설마...였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나는 2급 여성 장애인이다. 돌이 될 무렵 심하게 앓고 나서,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씻기는데 애가 자꾸만 휘청거리고 주저앉더란다. 미끄러워서 그런가 싶어 날 일으켜 세우는데 자꾸만 주저앉더란다. 그때부터 난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 등에 업혀야만 이동이 가능했고, 6살때부터 목발 짚는 것을 배워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목발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걸어다녔고, 중고등학교는 학교 선생님들일 비롯하여 많은 도움 주시는 분들 때문에 등하교가 가능했다. 마지막 고3은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으로 인해 아침 저녁으로 택시를 타고 등하교 했다. 당시 우리집은 어려워서 자동차를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두 번의 택시비를 감당해 가면서 정말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장애인 아동이나 가족에 대한 지원이 정말 너무나 열악하던 시절이었고, 어릴때부터 장애인의 삶으로 피눈물 흘린 걸로 말하자면 구구절절해서 생략하겠다.

 

대학에 불합격하는 바람에 시골에서 올라와 노량진에서 하숙했다. 재수시절엔 차가 필요없었지만, 대학 합격후 캠퍼스가 워낙에 넓어 도저히 걸어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부모님이 차를 사주셨다. 우리집에서는 처음으로 자동차라는 게 생겼다. 내 차가 나오기까지 하숙집에서 넓은 캠퍼스까지, 또 건물 5층까지 걸어서 웃옷 겨드랑이에 피를 묻혀가면서 이를 물고 학교를 다녔다. 1994년 겨울이 될 무렵 자동차가 나온 그 이후에는 내 소형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LPG 지원도 없어서 학생 신분에 돈이 넉넉치 않아 휘발유 차로 정말 아껴가며 등하교를 했다. 그렇게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회사에 갈 때까지 고속도록 통행료 요금 50% 할인을 빼고는 모든 것을 내가 부담했다. 차가 폐차가 될 정도로.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장애인용 LPG차를 사다

 

2001년 회사 다닐때 교통사고로 폐차를 하여 차를 새로 사면서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LPG 차를 구매했고, 얼마 후부터 리터당 보조금이 지원된다고 해서 그때부터 장애인 LPG 지원 혜택을 받으며 지금까지 왔다. 여러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몇 년 동안 공부를 더 하기까지..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대략 15km 정도인데 학생 신분이라 수입이 거의 없던 내게, 장애인 LPG 지원마저 없었다면 정말 너무너무 벅차고 힘들었을 것이다. 학위를 받고 지금은 일정한 수입이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애인 LPG 지원 혜택은 우리같이 차를 꼭 써야만 하는 사람에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벌만큼 버는 사람이 왜 굳이 LPG 지원 혜택을 받으려고 하느냐며 나를 욕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정말 장애인들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일반인들은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목발을 짚는 나에게는 너무나 버겁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는 대학 내 건물에서 학교 식당까지도 걸어가지 못한다. 남들은 5분 남짓이면 걸어갈 거리도, 나는 '헥헥'대고 중간에 쉬면서 15분 이상은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차를 움직여야만 한다. 비가 많이 오고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도 나가려면 결국 차를 움직여야만 한다. 대학교 때 지하철을 많이 타면서 그 엄청난 계단과 이동거리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하철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버스는 문턱 계단이 너무 높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사치나 부의 상징이 아니라, '발'이고 '다리'이다. 자동차가 없다면 보통 사람들과 함께 공존을 할 수가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장애인 지원은 차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가 아니라, 수입이 많냐 적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불편하고 보행이 힘든 사람에겐 일반인들이 생각지 못하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 시중에  파는 알루미늄 목발..솔직히 딴딴하지 않아서 일년에 두세번씩 목발 교체한다. 내가 몸무게가 50킬로가 안 되는, 그나마도 그렇게 많이 걸어다니는 편이 아닌데도 목발 어딘가가 갈라져 있거나, 겨드랑이 받침 부분이 부러져 있어서 늘 여분을 구비해 놓고 산다.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문제 생기면 택시를 타고 출퇴근해야 하는데 하루 왕복이 4만원이 넘는다. 특히 차가 오래되니 작년엔 이 비용만 만만치 않게 나갔다. 또 잘못 넘어져 다치면 당장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고,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 직장에서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아파도 혼자 앓다가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일단 다른 사람보다 행동이 느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려면 더 부지런해야 하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못한다.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보다 능력이 덜 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외부 출장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다닌다. 적어도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적인 특별대우를 해준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다.

 

딱 하나, 지금 있는 연구소에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다면, 지난 폭설과 같은 상황에서 도저히 출근하기 힘들어 배려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눈이 너무 많이 오고 녹지 않아 길어 얼어붙어서 며칠 동안 도저히 출근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행여라도 무리해서 나갔다가 다치게 되면 돈 보다도 몸이 너무나 고생을 하게 될 것이고, 또 다쳐서 병원에라도 입원하면 그게 더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이 부분은 배려해 달라고 처음으로 부탁을 했었고, 연구소에서는 알겠다고 했지만...사람 마음이라는게 편치만은 않았다.

 

그래서 출퇴근 지원이 혹시 없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관련된 것을 찾았고, 시청, 구청, 동사무소 등등 연락을 많이 해서 나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직접 모색했지만, 1급이 아닌 2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었다. 그나마도 1급 장애인에게 지원해주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축소되서 장애인들 한숨 소리가 나온다는 소식들 뿐이고...게다가 며칠 후 문자로 날라온게, 2010년 1월 22일 부로 장애인 LPG 지원이 끊긴다는... 그래서 보건복지부 들어가서 확인을 했더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1급은 6월까지 한시적으로 지원을 해준다는 공고가 떠 있더라.

 

와...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같이 그나마 일정한 수입이 있는 장애인에게도 당장 타격이 있는데, 정말 나보다도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 배려가 없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더 좋은 정책을 추가는 못할 망정, 있는 것 마저도 없애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사상 최대 과징금, 전부 국고로 환수된다니

 

더군다나 정말 황당한건, 지난 6년간 LPG 담합을 했던 6개 업체에 사상 최대의 과징금(1조 안팎이라고 한다.)이 징수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전부 국고로 환수된다는 웃기지도 않는 사실이다. 담합으로 인해 수입의 대부분을 장애인들과 택시 기사들의 호주머니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벌금을 징수한다면, 고스란히 장애인들과 택시 기사들에게 돌려줄 것이지 왜 정부가 무슨 명분으로 가져간다는 것인가. 그러고도 LPG 지원 혜택은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고. 뭐 정말 이런 정부, 이런 나라가 다 있단 말인가.

 

더불어 같이 잘 살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어라 이거다. 나라가,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하는게 무엇이란 말인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건강한 사람/건강하지 않은 사람, 잘난 사람/못난 사람, 어른/아이, 남/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게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던가. 정책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지만, 박탈감은 들게 하지 말아야 하는것 아니던가. 왜 한나라당과 MB는 본인들이 대선때 약속했던 것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약을 어긴단 말인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깨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남발하고도 반성을 못해서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쑤었다고 해도 못 믿겠다.

 

인간은 자기가 겪은 것 만큼 남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겪지 않은 부분을 이해하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건 인간에 대한 배려이다. 비록 100% 완벽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흑백이 없듯이 장애인 지원에 대해서도 자동차가 있느냐 없느냐의 이분법으로 접하지 말라는 것이다. 형평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더욱 좋은 대안을 찾아서 말그대로 보완을 해라. 있는 정책도 없애버리는 것은 지원 안 하겠다는 말이다.

 

그나마도 적은 복지 예산 삭감으로 장애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구걸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려고, 아무것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이 나라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몸부림이다. 그 처절한 몸부림에 제발 돌맹이 던지지 말아라. 우리는 구걸하는게 아니다. 한나라당과 MB에게 고한다. 우는 놈 떡 하나 던져주듯이 그딴식으로 어설픈 정책을 만들지 말아라. 제발!


태그:#장애인, #LPG, #장애인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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