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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에 설치되어 있는 체리마스터 게임
▲ 체리마스터 게임기 당구장에 설치되어 있는 체리마스터 게임
ⓒ 함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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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째주 어느 날 새벽 4시 반, 교대를 마친 택시기사 장모씨(44)는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한 당구장으로 향한다. 당구장은 회사 옆 건물 2층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당구장은 텅 비어있다. 이내 장모씨는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당구장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당구장 구석에는 사행성 게임기인 '체리마스터'가 있다. 일명 '꽃놀이'라 불린다. 이미 그곳에서 그의 동료가 게임을 하는 중이다. 장모씨는 "교대 후에 기사들이 '꽃놀이 하러 가자'라고 하면 당구장을 가자는 신호"라며 "보통 여섯 명이 멤버인데 당구를 치는 날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수를 거의 이 기계에 쏟아 붓는다. 하루에 30만 원을 쓴 적도 허다하다"고 했다.

체리마스터는 한 때 유행한 '바다이야기'와 비슷한 방식의 사행성 게임기이다. 게임물 등급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체리마스터는 등급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게임기'이다. 게임기에 돈을 넣으면 자동으로 게임이 진행되고 같은 무늬의 그림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간다. 만 원에 해당하는 점수는 500점인데 보통 8을 베팅으로 약 60판을 한다. 베팅은 64베팅까지 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500점이 순식간에 몇 천 점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몇 십 분 안에 500점을 잃는다. 만약 점수가 올라갔다면 당구장 주인은 점수에 해당되는 돈을 환전해 준다.

장모씨는 체리마스터를 하기 위해 거의 매일 당구장을 찾는다. 돈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기에 계속해서 돈을 넣는다면 언젠가 점수는 올라갈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른 택시 기사는 기계에 돈을 넣고 있다. 그가 돈을 잃었다면 내가 딸 수 있는 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라는 장모씨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곧 그는 "택시를 교대하는 것인지, 게임기를 교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탄식했다.

믿을 수 없는 70%의 환수율

대부분의 사행성 게임기는 일정한 환수율이 있다. 게임기에 투입된 돈에 비례하여 일정한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환수율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20만 원을 투입하여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1만 원을 넣고 5만 원을 따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오직, 앞서 게임을 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잃었을 경우이다. 환수율에 의해 점수가 올라가는 타이밍에 운이 좋게 걸려든 것이다.

체리마스터 게임기 업주에 따르면 기계의 환수율은 70%이다. 1만 원을 넣으면 7000원을 환전할 수 있는 셈이다. 애초 기계가 만들어질 때 70%로 세팅돼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70%의 환수율은 지켜지지 않는다. 또한 얼마의 돈을 넣어야 70% 만큼의 돈을 돌려주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1만 원을 넣고 몽땅 잃었다면, 다시 1만 원을 게임기에 투입한다. 게임기의 환수율을 믿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은 반복된다. 앉은 자리에서 몇 십만 원도 쉽게 투입하곤 하는 것이다.

장모씨는 "내가 봤을 때 게임기의 환수율이 40%도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수개월 동안 게임을 한 후 직접 터득한 수치였다. 그는 "하루는 동료와 24시간 동안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총 60만 원이 들어갔는데 결국 30만 원도 찾지를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장모씨는 "그런데도 누군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마냥 기다리게 된다. 물론 그가 돈을 땄다면 미련 없이 나도 일어서지만, 만약 잃었다면 돈을 넣을 수밖에 없다"며 "기계는 돈을 먹으면 뱉게 되어 있다. 돈을 뱉을 타이밍에 내가 걸리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확한 환수율에 의지하여 돈을 넣고 또 넣는 것이다.

약한 처벌, 게임기는 다시 설치된다

이날 장모씨는 6시간 정도 게임을 하였다. 총 8만 원을 투입하여 4만5천 원을 되찾았다. 그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 6시간 동안 담배 2갑이나 피웠다.

"아마 게임기 하나로 임대료는 거뜬히 챙길 거다. 생각해 봐요. 대학생이다, 고등학생이다 게임기만 보면 달려드는데 하루에 얼마만큼 돈이 게임기에 들어갈지. 결국 돈을 챙기는 사람은 당구장 주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장모씨의 뒷모습은 씁쓸해 보였다.

당구장 주인은 업주와 7:3의 비율로 이익을 나눈다고 했다. 15시간 지켜본 당구장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게임기에 돈을 넣고 있었다. 기계에 투입된 금액은 총 26만 원. 환전된 금액은 총 12만 원이었다. 15시간 동안 주인은 약 십만 원을 벌었고 업주는 약 4만 원을 챙기는 셈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달을 운영하면 건물 임대비가 나올 법도 했다.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리마스터 게임기는 존재한다. 경미한 처벌 때문이다. 노원구청 홍보체육과 관계자에 따르면 체리마스터를 공급한 업주는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에 의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게임기를 설치한 당구장 업주는 처벌 기준이 다르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 ▲1차 경고 ▲2차 3일 영업정지 ▲3차 10일 영업정지의 처벌을 받는다. 당구장은 체육 시설로 분류되어 처벌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적발되었다 하더라도 주인들은 게임기를 재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기 수입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신고가 들어오면 단속을 한다. 그런데 약한 법규 때문에 단속의 실효성이 매우 낮다"고 밝히며 "당구장 주인들이 며칠 영업정지를 감수했으면 했지 게임기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포기할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막상 대대적인 단속을 나가도, 업주와 연락망이 연결되어 있어 모든 당구장을 단속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파출소와 경찰서에선 게임기가 설치된 당구장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오늘도 10시간 넘게 일하여 벌어온 택시기사의 돈, 토익학원을 다니려고 모아 둔 대학생들의 돈, 참고서를 사기 위해 부모님께 받은 청소년들의 돈, 당구를 치다 호기심에 투입한 단 돈 천 원까지 게임기에 쌓여 간다. 그리고 누구는 운이 좋게 돈을 딴다. 물론 그는 즐거워하며 당구장을 빠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딴 돈은 결국 아버지의 돈이고, 친구의 돈이고, 동생의 돈일 뿐이다. 서로의 돈을 뺏어먹기 위해 사람들은 지금도 체리마스터에 돈을 집어넣고 있다.

* 1월 3째주 1주일 동안 서울시 노원구 노원역과 산업대학교 부근을 돌아다녔다. 단속 때문에 많이 자취를 감췄다곤 하지만 게임기를 설치한 당구장 5∼6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그:#당구장, #사행성 게임, #체리마스터, #경미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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