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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0일 오후 3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PD수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6개월 만이다.
 
법원은 PD수첩의 보도 내용 중 일부 지엽적인 내용이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에 부합한다면 허위사실로 볼 수 없고, 따라서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PD수첩 변호인측은 "정부 정책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언론의 소명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즉각 항소 입장을 밝혀, 이번 무죄 판결로 검찰과 법원 간 갈등관계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검찰은 징역2~3년 구형, 법원은 "허위사실 아니다" 무죄 판결
 
PD수첩은 한미 쇠고기 수입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2008년 4월 29일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2주 뒤에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2'를 방영했다. 이 방송은 2008년 여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협상 주체였던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 미국산 쇠고기 수입판매업자 등이 각각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를 이유로 제작진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도적인 오역이나 왜곡 등으로 사실에 어긋나는 보도를 했다"며 조능희CP, 김보슬 PD, 김은희 작가에 각각 징역 3년을, 송일준PD, 이춘근 PD에게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인정되려면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주장과 달리 PD수첩의 방송 내용이 허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광우병 발병 우려를 두고 미국 내에서 취해진 조치나 광우병에 대한 학계 및 전문가의 의견 등을 종합해보면 보도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거나 일부 사실을 과장한 측면이 있을지언정 허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는 "주저앉은 소(다우너)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도한 것이나 미국 여성 아레사 빈슨의 사인에 관한 보도, 한국인이 유전자형으로 인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보도 등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을 허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허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적시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서 소가 주저앉은 것만 가지고 광우병을 판단할 수는 없으면 광우병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소가 광우병에 걸린 사건이 3건 발생했는 데 주저앉는 것 이외에는 특이증상이 없었다. 미국도 2004년 7월경 강화된 동물성 사료 입법을 추진하는 등 스스로 광우병 소에 대한 안전 통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아레사 빈슨이 '인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했거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 또한 허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밝혔다.
 
"검찰은 사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밝혔으나,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아레사가 MRI검사를 했을 때 인간광우병에 의심증상을 보였다라고 나왔고 아레사의 어머니도 인터뷰에서 인간광우병의 의심증상을 보였다고 여러차례 언급했다. 따라서 보도 내용은 허위사실이 아니다."
 
재판부는 오역 논란과 관련해서도 "피고인들의 번역 과정 흐름을 살펴보면 모두 감수 과정을 거쳤고, 영어 감수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번역을 변경, 수정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또 '제작진이 자막을 왜곡했다'는 번역가 정지민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증인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면서 "증인 정지민은 비타민 처방 등의 내용을 피고가 누락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정지민이 번역한 인터뷰나 그 밖의 인터뷰 어디에도 비타민 처방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나 수입협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만한 사유가 충분했고,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나름대로 근거를 갖춰 비판했다"며 "방송 때문에 정 전 장관 등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다고는 해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밖에 제작진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허위 사실이 있었거나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PD수첩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 대해 "방영 내용 가운데 일부가 사실과 달라 정정보도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민사상 정정보도 청구 소송의 경우 사소한 오류라도 바로잡도록 하는 것이 통상적인 판례다.
 
그러나 형사 재판의 경우는 범죄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부 지엽적인 내용이 사실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에 부합한다면 허위사실로 보지 않는다.
 
이와 관련 이날 재판부는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고 보도의 취지를 살펴볼 때 주요 부분이 사실과 일치한다면 세부 사항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는 이유만으로 허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밝혔다.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이며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PD수첩측 대리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관련 "언론의 자유를 위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정도로 허용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PD수첩 보도가 상당 부분 진실임을 증명하고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지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성관 판사 "판결 방해 없었으면"... 보수단체 "판사 옷 벗겨라"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문성관 판사는 임관 10년차로 그동안 비교적 합리적인 판결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재판 결과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PD수첩' 선고공판을 앞두고 법리를 반복해 검토하는 등 신중을 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 판사는 이날 선고에 앞서 자리를 가득메운 보수단체 회원들을 향해 "판결 행위에 방해를 하는 행동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재판장에 몰려온 100여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기자들과 자리싸움을 하거나, "판사가 빨갱이 아니냐", "강기갑 때문에 이 난리다" 등의 말을 주고 받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실제 판결 내용을 지켜보던 이들은 '무죄'가 확실시되자 "강기갑꼴 나겠구만", "악령이 씌였어" 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또 판결이 끝난 직후 복도에서 피디수첩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자, "이게 박수칠 일이냐", "판사 옷 벗겨라"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한편 검찰은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게 법정에서 나타난 증거자료를 봐도 명백히 인정되고, 일부 사실은 피고인들과 증인들도 시인했다"며 "그런데도 법원이 전부 사실로 인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해, 항소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민동석 전 정책관은 기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조능희CP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의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다. PD수첩은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라며 "정치검찰은 권력의 힘을 이용, 항소 등을 통해 끝까지 제작진에게 고통을 가하겠지만 그것이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인의 숙명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태그:#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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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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