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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화드라마는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수목드라마는 KBS <추노>가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며 앞서나가고 있는 반면, 월화드라마는 SBS <제중원>, KBS <공부의 신>, MBC <파스타>가 각기 다른 매력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도 SBS <제중원>은 메디컬 사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 <제중원>이 눈길을 끄는 또 한가지 요소는 바로 MBC <하얀거탑>(2007년 방영)의 이기원 작가가 대본 집필을 맡았다는 점이다. 과연 <제중원>은 '개화기 하얀거탑'이 될 수 있을까? 두 드라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봤다.... 기자주

[공통점 1] 김명민과 박용우- 주연 배우의 열연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주연배우 김명민이 20kg을 감량하자 언론은 그에게 '메소드 배우'라는 찬사를 보냈다. 극중 인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다는 뜻이다.

김명민의 메소드 연기는 이미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빛을 발한 바 있다. 간성혼수가 찾아온 장준혁(김명민 분)을 연기하기 위해 거꾸로 신문을 들고 읽는 설정을 직접 제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제중원>의 박용우(황정 역) 역시 백정이라는 배역을 위해 소 도축 연습을 하기도 했다. 백정 시절의 말투를 채 버리지 못한 설정 역시 양반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황정의 처지에 딱 들어맞는다.

출세에 눈이 먼 오만한 의사에게 수많은 시청자가 반해 버린 것은 장준혁이라는 캐릭터의 힘이었고, 또한 배우 김명민의 힘이었다. <허준> <대장금> 류의 사극을 통해 '의학을 통한 가슴 따뜻한 성공기'에 익숙해진 대중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황정이라는 캐릭터와 배우 박용우의 힘에 상당부분 달려있을 것이다.

[공통점 2] 두 남자 이야기- 라이벌 혹은 결핍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은 노민국(차인표 분)과 과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드라마 전체에서 실질적인 장준혁의 대칭점은 최도영(이선균 분)에 있었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출세보다는 연구와 치료에 관심이 있는 최도영은 환자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의사를 대변한다.

반면 수술을 게임처럼 여기는 장준혁은 사실 우리들의 출세하고 싶고, 권력을 쥐고 싶은 욕망을 대변한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장준혁 저 출세에 눈이 먼 녀석"하고 욕을 하고 있노라면 "너는 그렇지 않아?"라는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나뿐이었을까?

<제중원>의 두 주인공 박용우와 연정훈
 <제중원>의 두 주인공 박용우와 연정훈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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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의 두 남자, 황정과 백도양(연정훈 분) 역시 전혀 반대되는 배경과 성격의 인물이다. 양반 가문에서 자라난 도양은 자신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사형수 해부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반면 황정은 신분은 천하지만 겸손하고 정직하며, 타고난 손재주와 눈썰미를 지닌 인물이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주변 환경, 타고난 재능)을 서로 지니고 있는 두 남자가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지 지켜볼 만하다.

[공통점 3] 의학은 내 운명- 솔직하고 뻔뻔해진 주인공들

<하얀거탑>에서 잠시 등장하는 장준혁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이 있다. 한 그릇 밖에 없는 밥으로 아들의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끼니를 거르실까 봐 일부러 도시락을 집에 두고 나오는 어린 준혁의 모습. '명인대학교 의과대학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준혁의 동네. 짧은 회상 장면이지만 장준혁이 왜 그렇게 성공에 집착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장면이었다. 어린 준혁에게 의학은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었으리라.

<제중원>의 주인공들에게도 의학은 '빛'이다. 황정에게 의학은 천한 신분을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빛'이다. "백정인 주제에 넌 왜 글을 배운 거냐? 너도 솔직히 백정으로 살기 싫었던 거 아냐?"라는 친구의 말(1회)에서 황정 역시 백정이라는 운명 속에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감추고 있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것처럼 보이는 도양에게도 의학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빛'이다. 어린 시절 도양은 외가가 서학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집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때부터 도양에게 아버지는 극복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아버지의 뜻에 반해 성균관을 그만두고, '하필이면' 서양 의학에 관심을 갖는 도양의 행동은 단순한 젊은 혈기에서 나온 행동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연정훈, 한혜진, 박용우
▲ SBS <제중원>의 주인공들 사진 좌측부터 연정훈, 한혜진, 박용우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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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하얀거탑>이나 <제중원> 모두 의학드라마이기 이전에 인물들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성장해가는 'RPG(롤 플레잉 게임)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시청자는 온갖 역경을 감수하는 주인공을 보며 물음을 던진다. "넌 왜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은 거니?" "생명을 살리겠다"는 숭고한 의지도 좋지만, 시청자들이 '빙의'하고 응원해 주고 싶은 것은 "가난이 싫어서!"라고 말하는 솔직한 주인공의 모습이 아닐까?

[차이점 1] 여성캐릭터 '석란'의 존재- 새로운 시도?

<하얀거탑> 속 여성 캐릭터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평면적이었다. 장준혁의 내연녀 희재(김보경 분)는 드라마의 주된 갈등축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이윤진(송선미 분) 역시 의료소송을 둘러싸고 장준혁과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면서 유족 측 변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장준혁, 노민국, 최도영 세 사람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이다.
▲ MBC<하얀거탑> 인물관계도 장준혁, 노민국, 최도영 세 사람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이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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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중원>에서는 여성 캐릭터 유석란(한혜진 분)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내세웠다. 역관의 딸답게 영어에 능통하고 당찬 성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석란이라는 인물은 아직까지 전면에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조선 최초의 여의사가 된다는 설정을 감안하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석란이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삼각관계의 '꼭짓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얀거탑>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의학드라마=병원에서 연애한다'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깨버린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와 멜로 라인을 제한함으로써 철저하게 병원 내 권력암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정치드라마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제중원> 역시 인물들의 삼각관계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다보면 '메디컬 사극=옛날 병원에서 연애한다'는 또 하나의 공식을 낳게 될 것이다. 부디 <제중원>이 이야기의 중심을 잃지 않는 <하얀거탑>의 미덕에 유석란이라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더하기를 기대해 본다.

[차이점 2] 친일 논란... 제대로 된 시대극 될 수 있을까

<하얀거탑>과 <제중원>사이에는 10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제중원>은 방영 첫주부터 '친일 드라마' 논란에 휩싸였다. 백도양이 와타나베(강남길 분)에게 "대일본제국의 희파극랍저(히포크라테스)라고 불리는 분이 아니십니까?"라는 대사가 논란이 된 것. 이후에도 조선 이권 침탈에 앞장섰던 알렌을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제중원>에서 문제가 되었던 장면
 <제중원>에서 문제가 되었던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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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와 갑신정변을 다루는 시각, 당시의 무기나 의복에 대한 고증 문제 역시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로 제기되고 있다. 큰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자막에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적은 것 역시 논란을 낳을 만한 표기였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것은 예민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사료가 많은 만큼 상상이 개입할 여지도 적어지거니와, '친일'의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민감한 문제인 까닭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실제와 100% 동일한 고증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단순한 배경에 그치기보다는 주인공들의 운명과 긴밀한 연관을 맺는 하나의 극적 장치로서 보다 깊이 있게 다루어지길 기대한다.


태그:#제중원, #하얀거탑,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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